엘리베이터가 멈춘 순간 나타난 하얀 얼굴
엘리베이터가 갑자기 멈췄다. 딱히 진동이나 이상한 소리도 없었는데, 화면에 ‘운행 정지’라는 빨간 글자가 뜨면서 완전히 멈춘 거다. 그 순간, 나는 갑자기 느껴지는 싸한 기운에 온몸이 얼어붙는 기분이 들었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나 혼자였다. 평소에도 이 빌딩 엘리베이터가 약간 낡아서 가끔 멈추는 일이 있었지만, 오늘은 뭔가 다르게 느껴졌다. 문이 열리지도, 닫히지도 않고 어두컴컴한 공간에 갇힌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때였다. 갑자기 엘리베이터 벽 한쪽 구석에서 눈부시게 하얀 얼굴이 나타났다. 너무 밝아서 주변이 묻힐 정도로 뜬눈처럼 빛나는데, 사람 얼굴 같기도 하고 뭔가 형체를 잡기 어려운 모습이었다.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서려 했지만, 엘리베이터가 워낙 좁아서 거의 움직일 곳이 없었다.
그 하얀 얼굴은 입을 열지 않았지만, 분명 무언가를 말하려는 것 같았다. 그 순간 내 심장이 터질 듯 뛰었고,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 머릿속에는 찰나에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지만, 그 어떤 말도 나오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걸까…” 혼잣말이라도 해보려 했지만, 내 목소리는 기계음처럼 메아리쳤다. 혹시 나만 보는 환상인가 싶어 눈을 깜빡였는데, 그 하얀 얼굴은 계속해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뭔지 모를 슬픔과 절박함이 묻어나는 눈빛이었다.
몇 분이 지났을까. 갑작스러운 전기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벽에 달린 불빛도 서서히 밝아지면서 나는 가까스로 현실로 돌아왔다. 문이 열리고 급하게 밖으로 나왔을 때도 등골이 오싹해 쉽게 몸을 가누지 못했다.
그때부터 계속 머릿속에서 그 하얀 얼굴이 떠나지 않았다.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익숙함이 있었지만, 도무지 기억나지 않았다. 혹시 그 얼굴이 내게 무언가 전하려던 메시지였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며칠 후 우연히 인터넷에서 ‘같은 빌딩 엘리베이터에서 하얀 얼굴을 봤다’는 사람들의 글을 발견했다. 아무도 이유를 알지 못하는 상태였고, 누군가는 오래전 이곳에서 무언가 안 좋은 일이 있었다는 소문만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 하얀 얼굴이 누군지, 왜 나에게 나타났는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다만 그 순간만큼은 내가 혼자가 아니었고, 그 얼굴이 내게 뭔가를 전하려 했다는 확신만은 지울 수 없다. 엘리베이터가 멈춘 그 짧은 순간, 아마 평범한 일상 너머에 있는 무언가가 스쳐갔던 게 아닐까 싶다.
가끔 엘리베이터에 탈 때면 그 얼굴이 다시 나타날까 두렵기도 하고, 동시에 다시 보고 싶다는 묘한 감정이 교차한다. 어쩌면 그 하얀 얼굴은 나만 볼 수 있는 ‘미완의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생각에 소름이 돋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