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룸 부엌에서 혼자 움직이는 냄비 뚜껑
원룸 부엌에서 냄비 뚜껑이 혼자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날 밤, 나는 늦게까지 야근을 하고 집에 막 들어왔는데, 부엌에서 뭔가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처음엔 그냥 내가 뚜껑을 잘못 놓았나보다 생각하고 무시했는데, 소리가 점점 또렷해지고 심지어 뚜껑이 슬금슬금 움직이는 게 보였다.
부엌 쪽으로 다가가 천천히 살펴보니, 아무도 없는 부엌 한복판에서 냄비 뚜껑이 마치 누군가의 손에 이끌리듯 살짝살짝 미끄러지듯 움직였다. 뚜껑을 올리고 닫는 것 같은 소리도 간헐적으로 들렸고, 기이하게도 누구의 숨소리도 없었다.
처음엔 바람 때문인가 싶었지만, 창문도 모두 닫혀 있었고 에어컨도 꺼둔 상태였다. 바닥도 깨끗해서 뚜껑이 미끄러질 만한 경사도 없었고, 주변에 진동을 줄만한 기계도 없었다. 나는 불안한 마음에 휴대폰으로 동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한 10분 정도 찍으며 지켜봤는데, 뚜껑은 가끔씩 부엌 싱크대 쪽으로 천천히 움직였다가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영상 속 뚜껑은 분명 아무도 만지지 않았는데도 일정한 패턴을 가지고 움직였다.
다음 날, 혹시 내가 너무 피곤해서 착시를 본 건 아닐까 하며 친구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그 친구가 옛날에 비슷한 경험을 한 적 있다고 했다. "원룸 부엌에선 가끔 손없는 뚜껑이 움직인대"라는 동네 괴담 같은 이야기였다.
그 얘기를 듣고 나서부터는 왠지 모르게 원룸 부엌을 지날 때마다 시선이 뚜껑에 가 있었다. 그리고 며칠 후, 또 그 현상이 재현됐다. 이번엔 뚜껑이 싱크대 쪽으로 움직이다가 갑자기 확 뒤집혀서 바닥에 툭 떨어졌다.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무서운 마음에 인터넷에 관련된 글들을 찾아봤다. ‘혼자 움직이는 그릇’이나 ‘부엌 귀신’과 관련된 이야기가 꽤 많았다. 그중 한 글에서 원룸 등 좁고 오래된 공간에서 예전 일들을 완전히 잊었을 때, 잔상이 남아 이런 현상을 일으킨다는 얘기가 있었다.
그 후로는 가급적 부엌에 오래 머무르지 않으려 했고, 뚜껑은 아예 다른 곳에 치워두었다. 하지만 밤이 깊으면 부엌 쪽에서 다시 그 달그락거림이 간헐적으로 들려왔다. 이게 내 착각인지 진짜인지 헷갈리는 순간들이었다.
어쩌면 그 뚜껑이 움직이는 건, 누군가 끝내지 못한 이야기가 여전히 여기 있다는 신호인지도 모르겠다. 아직도 가끔 부엌 조명을 켜놓고 있는데, 그때 뚜껑이 스스로 움직여 나를 부르는 것만 같으면 등골이 오싹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