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복도에서 자꾸 마주치는 같은 복장의 중년 남자
병원 복도에서 자꾸 마주치는 같은 복장의 중년 남자. 처음엔 그냥 “아, 저 사람 또 오나 보다” 하고 넘겼는데, 이상하게도 그날 이후로도 계속 마주쳤다. 접수 창구 옆을 지나면 꼭 같은 걸음으로 나타나고,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면 또 그 자리에서 서 있었다. 내가 병원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그 남자는 내 동선에 맞춰진 것처럼 따라붙었다.
나는 건강검진 때문에 며칠 연속으로 같은 병원을 찾았다. 첫날은 오후라 병원이 한산했고, 복도는 형광등이 길게 늘어선 듯 밝았다. 검진 안내대로 방을 찾아가던 중, 복도 끝에서 중년 남자가 걸어오는 게 보였다. 흰 가운도 아니고 환자복도 아닌, 딱 병원 직원이 입을 법한 단정한 검정 정장에, 구겨지지 않은 회색 셔츠. 무엇보다 얼굴을 오래 보지 않으려 해도 눈에 남는 건, 늘 같은 표정으로 내가 지나가는 걸 훑어본다는 느낌이었다.
“어? 저기요.” 내가 방 번호를 확인하려고 잠깐 멈추는 순간, 남자도 속도를 줄였다. 그리고는 아주 짧게, 마치 길을 알려주려는 사람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나는 방 번호를 찾고 다시 걷기 시작했는데, 그 남자는 반대 방향으로 안 돌아서고 그대로 따라오더니, 내 옆을 지나 복도 반대편에 있는 또 다른 진료실 앞에서 멈춰 섰다. 그 진료실은 내 일정과 상관없는 곳이었다.
둘째 날도 똑같이 시작됐다. 오전에 접수하고 나서, 채혈실이 있는 쪽 복도를 지나가는데 또 그 남자가 있었다. 이번엔 더 가까웠다. 나는 일부러 시선을 낮추고 걸음을 빨리하려 했는데, 남자는 내 발소리에 맞춰서도 아닌데 정확히 내 옆을 스치듯 지나가더니, 엘리베이터 버튼 앞에서 멈췄다. 엘리베이터는 내가 탄 뒤에 도착했어야 했는데, 이상하게도 그 남자가 기다리는 순간 바로 “딩” 하고 열렸다. 나는 순간 손등이 서늘해져서, 그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걸 멍하니 바라봤다.
그 다음엔 같은 복도, 같은 벽면, 같은 안내 표지판. 나는 병원 내부 동선을 외우는 편이라 “이건 우연이어도 너무 우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료실 문 옆에 붙은 종이 안내문이 하루가 지나면 조금씩 바뀌기도 했는데, 남자는 그 차이를 신경 쓰지 않는 듯 늘 같은 방향으로 걸었다. 게다가 손에는 늘 작은 서류철 하나를 들고 있었고, 서류철 모서리는 닳아 있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들고 다닌 물건처럼.
마침내 내가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던 태도가 깨진 건, 셋째 날 야간 접수 시간 근처였다. 야간이라 복도가 더 조용했고, 휠체어 소리 같은 게 멀리서 들리다가 사라졌다. 나는 약 처방 확인 때문에 2층으로 올라가야 했는데 계단 대신 엘리베이터를 택했다. 그런데 엘리베이터 안이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다. 문이 열리자마자, 그 남자가 이미 안쪽에서 서 있었고, 나는 반사적으로 뒤로 한 발 물러섰다. 그는 내 얼굴을 보고도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아주 천천히 고개를 들어, 마치 “왔네”라는 말을 표정으로 하는 것 같았다. 그때 소름이 목 뒤로 훅 올라왔다.
혹시 직원이거나, 특정 검사 일정이 겹치는 건가 싶어서 내가 접수처에 물어봤다. “저 복도에서 보이는 중년 남자, 같은 시간대에 계속 오던데… 직원인가요?” 접수 직원은 잠깐 웃더니, 내 질문을 이상하게 받아들이는 기색이 없었다. 다만 목소리가 아주 건조해졌다. “여기 정장 입고 다니시는 분은 없어요. 직원은 대부분 명찰이랑 가운을 입고…” 그 말이 끝나기 전에, 내 머릿속엔 그 남자의 서류철만 남았다. 명찰이 없었단 걸 뒤늦게 떠올렸는데, 그게 더 불길했다.
이후로 나는 최대한 눈에 띄지 않으려 노력했다. 복도를 지날 때는 일부러 반대편을 보거나, 잠깐 화장실 쪽으로 숨듯 방향을 틀었다. 그런데도 그 남자는 “숨는 방향”을 먼저 아는 것처럼 나타났다. 어느 날은 화장실 문 앞에서, 어느 날은 엑스레이 대기실 앞에서. 항상 같은 복장, 같은 자세, 같은 서류철. 심지어 내가 회의실처럼 보이는 작은 대기 공간에 들어가 문을 살짝 닫고 기다렸을 때조차, 창문 너머 복도에서 그의 그림자가 한 번 흔들렸다. 마치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안쪽 시간을 계산하는 사람 같았다.
검진이 끝나는 날, 나는 마지막으로 결과지를 들고 병원을 나왔다. 오후 햇빛이 유리창에 부딪히며 반짝였고, 사람들도 제법 오가고 있었다. 그런데 출구 쪽 복도 끝에서, 그 남자가 또 서 있었다. 이번엔 내가 먼저 시선을 들었다. 그는 내 눈을 피하지 않았다. 대신 입을 열지 않고, 손에 든 서류철을 아주 얇게 정리하더니 한 걸음만 옆으로 비켰다. 마치 내가 지나갈 자리를 내준 것처럼. 그 짧은 동작 때문에 생각이 꼬였다. 내가 병원에 “끝”을 찍으러 나온 게 아니라, 누군가의 기록에 “다음”을 적히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날 밤, 나는 결과지를 다시 확인하려고 봉투를 열었다. 종이 사이에 얇은 쪽지가 하나 끼어 있었는데, 내 이름과 날짜가 적혀 있었다. 그리고 필체는 내가 병원 복도에서 봤던 서류철의 모서리처럼, 오래된 습관이 묻어난 글씨체였다. 쪽지에는 한 줄만 있었다. “복도에서 다시 뵙겠습니다.” 나는 그 문장을 보고 한참 동안 손을 못 뗐다. 병원은 끝나도 복도는 남는다고, 그 남자가 말한 건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