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최신글
자유/잡담 괴담 추천 0

배달 오토바이 뒤에 붙어 있던 수상한 낙서

2026-06-02 08:29:12 조회 13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배달 오토바이 뒤에 붙어 있던 수상한 낙서가 아직도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그날도 주문이 밀려서 새벽 배차를 타고 뛰고 있었는데, 신호를 기다리던 그 짧은 정차 순간에 오토바이 뒤편에서 뭔가가 눈에 확 들어왔다. 처음엔 별일 아닌 줄 알았다. 근데 그 낙서는 내가 출발하고 나서도 자꾸만 내 눈을 붙잡았다.

내가 타고 있던 건 중고로 산 배달 오토바이였고, 원래는 회사 스티커랑 주문 스캔용 작은 안내판만 붙어 있었다. 그런데 그날은 비닐 끈이나 자잘한 잔흔도 없었는데, 뒷부분 흙받이 쪽—바퀴 바로 위—에 이상한 글씨가 덧그려져 있었다. 검은 펜 같은 걸로 그린 글씨였는데, 선이 너무 급해서 획이 떨려 보이면서도 모양은 또렷했다.

낙서는 “너 오늘도 늦지 마”라고 적혀 있었다. 근데 이상한 건 문장 끝이 한 번 더 덧칠된 듯이 두꺼워져 있었고, 그 뒤로 작은 화살표가 아래를 가리키고 있었다. 화살표가 가리키는 곳은 내 오토바이 번호가 있는 스티커 옆, 그러니까 딱 내 배달 경로랑 이어질 만한 지점이었다. 나는 그냥 장난일 거라 생각하면서도, 손잡이를 잡는 손바닥이 조금씩 축축해지는 게 느껴졌다.

신호가 바뀌어 출발하고 나서도 계속 거울처럼 뒤를 확인하게 됐다. 뒤에서 달리는 차가 없으면 괜찮겠지 싶었는데, 내가 정차할 때마다 낙서가 더 또렷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조명이 바뀌는 탓인지, 펜이 젖어 번지는 탓인지 모르겠지만 글씨가 마치 따라오는 것 같았다. 그때부터 ‘혹시 누가 내 오토바이를 보고 누군가한테 이런 말을 남긴 건가’ 같은 생각이 들었다.

다음 배달지로 가서도 그 문장이 계속 입 안에서 굴러다녔다. “너 오늘도 늦지 마.” 나 같은 배달 기사 입장에선 원래 늦으면 안 된다. 하지만 그 말투가 너무 개인적이었다. 회사에서 쓰는 안내문처럼 딱딱한 게 아니라, 누군가가 내 시간을 알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밥이나 커피를 마실 때도 습관처럼 번호 스티커 주변을 문질러 보게 됐는데, 덧칠된 듯한 자국이 생각보다 깊게 박혀 있어서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그러다 두 번째로 이상한 걸 봤다. 낙서 아래쪽에 아주 작은 글씨가 더 있었는데, 멀리서는 안 보이고 가까이 가야 보였다. 마치 “뒤—문—열지 마” 같은 단어 조각만 겨우 형태를 만들고 있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웃음이 나올 뻔했다. 장난도 이런 장난이 있나 싶어서. 근데 그때, 정확히 내 배달 화면에 뜬 주소가 새로 바뀌는 걸 보자 웃음이 멎었다. 내가 지금 가려던 건 오래된 원룸 단지였고, 지하로 연결된 출입구가 따로 있는 곳이었다.

그 단지에 도착하자마자 건물 구조가 머릿속에 박혔다. 엘리베이터가 느려서 보통은 계단으로 올라가는데, 누군가가 자꾸 “지하로 내려가면 바로 문이 있어” 같은 말을 했던 기억이 났다. 그 문장과 낙서의 화살표가 겹치는 순간,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나는 주문 메모를 다시 봤다. 특이사항은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현관 쪽 벨이 아니라, 지하로 연결된 출입문 쪽 번호가 먼저 깜빡이듯 신경 쓰였다.

문 앞에서 전화를 하려는데, 뒤쪽에서 오토바이 시동 소리가 뚝 끊기는 느낌이 들었다. 실제로 내 오토바이가 꺼진 건 아니었는데도, 귀가 아니라 심장이 먼저 멈칫한 것처럼 반응했다. 나는 급하게 뒤를 봤다. 누가 내 오토바이를 만지거나 가져가진 않았다. 대신 낙서가 바뀌어 있었다. 분명히 같은 위치인데, 펜으로 덧그린 듯한 새 획이 생겨 있었다. 처음엔 “늦지 마”였는데, 지금은 “늦으면 안 돼”로 끝이 바뀐 것 같았다. 그리고 화살표도 방향이 약간 틀어져 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진짜로 사고가 날까 봐, 주문을 빨리 끝내고 바로 철수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문득 생각이 들었다. 누가 내 오토바이를 손댄 걸까. 단순히 누군가가 지나가다가 낙서를 한 걸 수도 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내가 지금 이 단지로 가는 걸 어떻게 알고 이런 말을 바꿔 썼을까. 더 소름은 그 낙서가 지워질 기미가 없었다는 거다. 비 오는 날도 아니었고, 내 장비 상태로 봐도 누가 펜을 바르는 시간이 없었는데도 말끔하게 고정돼 있었다.

마지막으로 집에 가서, 나는 혹시나 싶어 낙서가 있던 부분을 젖은 천으로 조심스럽게 닦아봤다. 얼룩만 남고 펜 자국은 거의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닦고 나서야 확인한 게 있었다. 처음엔 없던 아주 희미한 흔적—마치 예전에 누군가가 지우려다 실패한 듯한 더 옅은 글자—가 밑에 겹쳐 있었다. 글씨는 정확히 읽히진 않았지만, 단어의 리듬이 같았다. “너 … 늦지 마”의 같은 박자. 그 순간 확신이 들었다. 이 낙서는 누군가가 장난으로 한 번 남기고 끝낸 게 아니라, 내 시간이 닿는 순간마다 같은 말을 ‘다시 써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날 이후로 나는 배달 중에 유난히 뒤를 더 자주 보게 됐고, 밤길 신호가 길어지면 괜히 속으로 먼저 한 번씩 중얼거리게 된다. “늦지 마.”

이 글 반응 남기기
추천과 비추천은 회원당 1회만 가능하며, 다시 누르면 취소됩니다.
추천 0 · 비추천 0
글 신고 안내
같은 회원은 같은 글이나 댓글을 1회만 신고할 수 있으며, 누적 신고가 5회 이상이면 자동으로 숨김 처리됩니다.
현재 글 신고 0회

댓글

댓글 작성은 로그인 후 가능합니다.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