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회의실의 벽에 갑자기 생긴 검은 얼룩
회사 회의실의 벽에 갑자기 생긴 검은 얼룩이 처음엔 그냥 “누가 장난친 거겠지” 싶었어. 그런데 그날 오후, 회의 시작 5분 전부터 얼룩이 조금씩 번지는 것처럼 보이더라. 조명 아래에서만 더 또렷해지는 느낌이라, 다들 피곤해서 착각하는 거라고 넘겼는데… 문제는 그다음부터였어.
나는 인사팀이라 회의실 예약 확인만 하고 나오는 편이었는데, 그날은 팀장님이 급하게 “오늘 회의실 말끔하게 쓰라고” 했거든. 청소 담당이 쉬는 날이라서, 내가 직접 물티슈로 벽 쪽을 한 번 닦아봤어. 근데 닦이는 게 아니라, 닦자마자 얼룩이 더 짙어지는 것 같더라. 손가락으로 문지르는데도 경계가 선명해졌고, 딱지처럼 일어난 것도 아니었어. 그냥… 잉크가 번진 것처럼.
“새로 칠한 벽에 뭔가 묻었나?” 싶어 관리팀에 바로 연락했어. 그런데 관리팀 과장이 와서 확인하고는 아무 말 없이 한참 벽만 보더니, 말끝을 흐리면서 “일단 내일 다시 보자. 오늘은 그냥 진행하자”라고 했어. 이상하게도, 그 말이 끝나자마자 벽에서 아주 미세한 소리가 나는 것 같았어. 바람 부는 소리도 아니고, 긁히는 소리도 아니고… 딱, 젖은 천이 천천히 찢어질 때 나는 결 같은 소리.
회의가 시작되자 다들 신경을 끄려는 분위기였어. 근데 회의실은 벽이 U자 형태로 감싸고 있어서, 앉은 위치에 따라 검은 얼룩이 계속 시야에 들어오더라. 각도 따라 모양이 달라지는 것 같기도 했고, 어떤 사람은 “벽지 무늬가 저렇게 생겼나?”라고 웃었는데, 그 웃음이 오래 가지는 않았어. 팀장님이 펜을 놓고 한 번 벽을 보더니, 갑자기 말이 끊기듯 “아… 저게 늘 저래?”라고 물었거든.
그때부터 나는 이상한 걸 눈치챘어. 얼룩이 커지는 속도가 사람들의 반응에 맞춰지는 느낌이 들었어. 누가 “장난 같네”라고 말할 때는 퍼지는 모양이 급해지고, 누가 “그만 보자”라고 고개를 돌리면 경계가 멈추는 것처럼 보였거든. 회의실 안 온도도 미세하게 내려가는 것 같았고,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 방향과 상관없이 벽 쪽으로만 차가운 기운이 모이는 느낌이었어.
그래서 나는 조심스럽게 CCTV 위치를 확인하러 복도에 나왔어. 회의실 안이 아니라 복도 쪽이라서 벽에 대한 시야는 조금만 나와. 근데 기록을 확인하려고 하자 관리팀 과장이 바로 나를 막더라. “오늘은 확인하지 마. 어차피 내일 보수 처리 들어가면 끝이야.” 그 말투가 너무 단단해서, 내가 더 캐묻지 못했어. 대신 과장님이 내 손목을 살짝 잡고는, “젖은 거랑 같은 방식이야. 건드리지 마”라고만 남겼어.
그날 밤, 퇴근하고 집에 있는데도 자꾸 떠올랐어. 머릿속에서 얼룩 모양이 자꾸 바뀌는 것 같아서, 거울을 봐도 별 차이가 없는데도 이상하게 마음이 불편했거든. 다음 날 출근하자마자 나는 회의실 앞에서부터 멈칫했어. 어제 그 검은 얼룩이 벽 중앙에 그대로 있었는데, 더 놀라운 건 얼룩의 가장자리 형태가 “글씨”처럼 보인다는 거야. 실제로 읽히는 건 아니고, 획의 굵기와 방향이 마치 누군가가 천천히 눌러 쓴 흔적 같았어.
관리팀이 와서 벽을 덮개로 가리고 작업을 시작하려 했는데, 페인트를 칠하는 순간 검은 얼룩이 그 아래에서 다시 올라오는 것처럼 보였어. 흰색 페인트가 마르는 속도도 이상하게 느렸고, 작업자가 도중에 멈추더니 “이거… 물감이 아니라 잉크 같은데?”라고 중얼거렸어. 누가 장난을 친 거라면 이렇게까지 ‘반응’할 리가 없잖아. 그때 나는 문득, 어제 회의실에서 들렸던 미세한 찢어지는 소리가 떠올랐어.
그 후로 회사는 이상하게도 그 회의실을 당분간 쓰지 않았어. 회의가 다른 방으로 옮겨지고, 사람들은 그 방 근처를 피했지. 그런데도 잊히진 않더라. 며칠 뒤 나는 우연히 복도 청소를 하던 청소팀 분이 흘리듯 하는 말을 들었어. “벽지 뜯어보면 안 돼. 안에 뭐가 있어.” 그 말이 너무 빠르게 지나가서 누가 들었는지 모르겠는데, 그 분은 내 눈을 한 번 피하듯 보더니 물걸레를 더 세게 짜더라.
마지막으로, 그 검은 얼룩은 결국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어. 새 벽지로 덮긴 했는데도 조명이 바뀌는 시간대마다, 얇게 스며든 검은 그림자가 잠깐씩 보였거든. 누군가가 다시 쓰기 시작하면, 벽이 그걸 받아들이는 것처럼. 지금도 나는 회의실 예약을 잡을 때마다 그 방 번호를 피해서 다른 방을 찾게 돼. 가끔은 점심시간에 커튼 사이로 빛이 스치면, 검은 얼룩이 아주 천천히 “사람의 눈높이”로 정렬되는 느낌이 들어서… 그게 진짜인지, 내가 피곤해서 망상인지는 모르겠는데도, 이상하게 계속 신경 쓰이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