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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창문 너머로 보인 알 수 없는 형체

2026-06-03 08:29:13 조회 11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밤 근무 끝나고 복도 청소를 하던 날이었어요. 그때 병원 4층, 재활치료실 쪽 복도 끝 창문에서 뭔가가 움직이는 게 보였습니다. 유리 너머라서 처음엔 조명이나 그림자겠거니 했는데, 그 형체는 그림자처럼 흐르지 않고 사람처럼 ‘자리를 잡고’ 서 있더라고요. 시야를 고정하자 더 또렷해졌고, 이상한 건 그게 창문에 반사된 게 아니라 유리 앞쪽에서 움직이는 느낌이었어요.

병원 창문은 다들 알겠지만 밤에는 밖이 훨씬 어두워서 안이 잘 보이잖아요. 그런데 그날은 반대였어요. 창문 너머로는 어둠이 깊은데, 그 알 수 없는 형체는 밝게 윤곽이 드러났어요. 마치 누군가 휴대폰 화면을 켜 놓고 그 빛으로 몸의 윤곽만 비추는 것처럼요. 저는 “야, 여기 바깥에 설치한 조명 고장났나?” 싶어서 창문 쪽으로 걸어갔고, 걸음을 멈추는 순간 형체도 동시에 멈추는 걸 봤어요.

처음엔 제 착각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건 너무 동기화되어 있었어요. 제가 몸을 살짝 옆으로 기울이면 형체도 똑같이 각도를 맞췄고, 고개를 숙이면 그쪽도 고개를 숙인 것처럼 보였어요. 병원에서는 늘 환자들이 창가 쪽을 바라볼 때가 있어서, 혹시 누가 밖에 서 있나 싶었죠. 그래서 저는 창문 손잡이를 잡고 바깥을 확인하려고 했는데, 그때 유리에서 아주 얇은 서리가 손끝 닿는 느낌으로 스르르 번졌습니다.

서리라고 하기엔 뜨겁고 차갑고가 동시에 느껴졌어요. 손잡이에 닿기 전엔 분명 차가운 금속인데, 닿는 순간엔 피부가 ‘비닐 위에 물을 묻혔을 때’처럼 미끄럽게 감기는 느낌이더라고요. 저는 손을 떼고 뒤로 물러났어요. 그제야 복도 천장 조명이 깜빡이더니, 형체가 있던 위치의 윤곽이 한 번에 찌그러지듯 사라졌습니다. 사라진 게 아니라, 창문 안쪽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어요.

다음 날 근무를 시작하고 나서도 계속 그 장면이 떠올랐어요. 그래서 저는 재활치료실 선생님한테 “혹시 창문 바깥에 뭐 설치돼 있어요?” 하고 물었는데, 선생님은 웃으면서 “여긴 원래 다 막혀 있는데요. 바깥은 주차장도 아니라 관리동이라 사람 드나들 일이 없지.”라고 하더라고요. 그래도 저는 “그럼 전날 밤에 뭐가 움직인 거죠?”라고 물었고, 선생님이 제 표정을 보더니 잠깐 말을 끊었어요.

그 선생님이 한 말이 아직도 기억나요. “창문 너머로 뭔가 보이는 날이 있어요. 근데 그때마다 그 방에서 근무 교대할 사람이 바뀌거나, 환자가 갑자기 상태가 안 좋아지는 경우가 있었어요.” 그러면서 “장난처럼 넘기지 말고, 그 구역은 왠지… 손대지 않는 게 좋아요.”라고 덧붙였습니다. 저는 그 말을 믿고 싶진 않았지만, 제 손에 남아있던 미세한 서리 자국이 다음날 아침까지도 희미하게 남아있던 게 걸렸어요. 손끝을 만져보면 뭔가가 아주 얇게 긁힌 듯한 느낌도 있었고요.

그날 밤, 저는 일부러 확인해 보기로 했습니다. 감시카메라가 있긴 한데 복도 끝은 각도가 애매해서, 보통은 확실하게 안 잡히거든요. 그래서 저는 창문과 반대편 벽, 커튼 뒤에 서서 ‘형체가 다시 나타나면’ 기록할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기다리는 동안 이상하게도 소리가 줄어들더라고요. 병원은 늘 어딘가에서 기계 소리나 바람 소리 같은 게 있는데, 그 구역만 조용해졌어요. 마치 소리가 창문 너머로 새는 것처럼요.

정확히 새벽 2시 17분쯤이었을까요. 복도 끝 창문에서 다시 윤곽이 떠오르는데, 이번엔 제가 서 있는 위치와 맞춰서 나타나지 않았어요. 창문 너머 형체가 처음엔 구석에 있다가, 아주 천천히 중앙으로 이동했어요. 그리고 그 다음엔, 유리 안쪽으로 손자국 같은 게 번지듯 생겼습니다. 손자국은 여러 개였는데, 사람처럼 손가락 마디를 따라 또렷한 게 아니라, 흐릿하게 ‘손이 닿은 흔적’만 남는 느낌이었어요. 그 상태에서 창문 너머에 있던 형체가 갑자기 고개를 돌리듯 방향을 바꾸더니, 제 쪽을 향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때 저는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났고, 동시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어요. 창문 너머의 어둠이 단순히 어두운 게 아니라, 마치 누군가 숨을 쉬고 있는 것처럼 미세하게 팽창했다가 줄어드는 게 보였거든요. 그리고 제 등 뒤에서 문이 ‘조용히’ 열리는 소리가 났어요. 발소리가 없는데도 문틈으로 바람이 들어왔고, 그 바람이 창문 쪽이 아니라 제 목 뒤를 스치듯 지나갔습니다. 저는 돌아보지 못했어요. 돌아보는 순간, 제가 보고 있는 게 창문 밖인지, 아니면 창문 안쪽인지가 뒤집힐 것 같아서요.

며칠 뒤, 인수인계 때 들은 말이 또 걸렸습니다. “4층 재활치료실 쪽 창문은 원래 몇 년 전부터 이상하게 서리가 자주 낍니다. 유리 필름이 잘못 붙었나, 단열이 안 되나 했는데 계속 같더라고요.” 누가 웃으면서 넘기는데, 제 귀엔 그 말이 농담처럼 들리지 않았어요. 저는 그날 이후로 창문을 똑바로 보지 않으려고 했고, 손잡이도 만지지 않았습니다. 근데 어떤 날 밤엔, 복도에서 지나가다 유리 표면에 제 얼굴이 비치기 직전에 누군가 먼저 고개를 든 것 같은 각도가 스치고 사라져요. 아직도 그 창문 너머에 무언가가 ‘서 있다’는 느낌이 남아 있어서, 병원에서 새벽만 되면 유난히 문득문득 숨이 얕아지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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