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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응급실에서 자꾸 사라지는 환자 기록

2026-06-04 20:29:14 조회 8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응급실 야간 근무를 서면, 제일 먼저 확인하는 게 환자 기록이랑 호출 목록이잖아요. 근데 그날은, 체크 끝내고 컴퓨터 화면을 다시 보는 순간부터 뭔가가 계속 “비어” 있었습니다. 제가 본 건 환자 이름이 사라진 게 아니라, 접수번호랑 메모칸이 통째로 지워진 것처럼 보였어요. 마치 누가 손으로 종이를 찢어낸 것처럼요. 처음엔 시스템 오류려니 했는데, 그 오류가 매번 같은 방식으로 반복되니까 결국 겁이 나더라고요.

사건은 새벽 두 시쯤 시작됐어요. 응급실에 실려 들어온 환자 하나가 “가슴 답답함”으로 접수됐고, 담당 간호사가 바로 활력징후 측정 들어가면서 제가 기록 정리도 같이 했습니다. 그런데 처치가 끝나고 나서 전산 입력을 확인하려고 화면을 보는데, 방금 전까지 있던 접수번호가 목록에서 통째로 빠져 있었어요. 환자는 여전히 의자에 앉아 있었고, 간호사도 “방금 그 환자 맞죠?”라고 저를 봤는데, 제 키보드만 반응이 묘하게 늦었습니다. 마치 다음 입력을 누르면 뭔가가 바뀔 것 같은 느낌이요.

그런데 이상한 건 그 환자만이 아니었어요. 오전에 또 비슷한 일이 한 번 더 터졌습니다. 교통사고로 들어온 환자 이름이 기록에 찍히기 직전에, 제 화면에서 해당 줄이 하얘지더니 아무것도 없는 빈칸처럼 변했어요. 간호사는 “접수는 됐고, 의사 선생님이 처치 중이야”라고 했는데, 제가 확인하려고 검색하면 결과가 안 나옵니다. 병원 전산은 보통 삭제가 안 되잖아요. 로그가 남는 구조고요. 그런데 그때는 로그 자체가 뜨지 않았어요. 마치 애초에 없었던 것처럼요.

처음엔 제가 잘못 본 건가 싶어서, 근무 끝나고 다른 날의 기록을 대충 훑어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날의 기록만 유난히 구멍이 많았어요. 같은 시간대에 여러 환자에 대한 “요약 메모”가 전부 비슷한 형태로 사라져 있었습니다. 어떤 건 증상이 반쯤 남아 있고, 어떤 건 의사 서명 직전에서 끝이 끊겨 있었습니다. 특히 이상했던 건, 사라진 부분을 복구하려고 백업을 확인해보면 백업에도 흔적이 없다는 점이었어요. 백업에 없다는 건 누군가가 실제로 지웠다는 뜻인데, 누가 지우는지 생각하면 답이 안 나왔습니다.

그날 새벽, 근무실에서 선배 간호사가 저한테 “그거 보이면 말하지 마”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농담인 줄 알았는데 표정이 너무 진지해서 웃지도 못했습니다. 선배가 말한 건 간단했어요. “응급실에 오면 기록이 먼저 와. 근데 어떤 환자는 기록이 먼저 사라져. 그럼 뒤에 사람도….” 말끝을 흐리는데, 손가락이 계속 테이블 모서리를 쓸고 있더라고요. 저는 “환자가 사라진다”는 말을 듣고도, 그냥 ‘전원’이나 ‘퇴원’ 같은 걸 돌려 말하는 건가 했습니다.

근데 다음 날, 전원이나 퇴원은 아니었습니다. 새벽에 다시 한 번 호출이 울렸고, 복도에서 “몇 번 침상”이라고 누군가가 소리쳤는데, 제가 확인하러 나가 보니 침상은 비어 있었어요. 간호사들 사이에서는 잠깐 멈칫하는 분위기가 돌았고, 누가 “방금 그 환자, 들어오자마자 검사 들어갔어요”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전산에는 그 호출 번호가 없었어요. 제가 그 상황에서 괜히 기록을 더듬어 찾다가, 화면 오른쪽 아래에 작은 안내창이 뜨는 걸 봤습니다. 글자가 또렷하게 보이진 않았는데, 내용은 대충 “확인 불가 데이터” 같은 느낌이었어요. 그때 심장이 갑자기 내려앉았습니다.

저도 결국 용기 내서, 병원 전산 담당자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봤습니다. “삭제 흔적이 없는 데이터가 밤마다 특정 시간대에 빠집니다”라고만 했고, 구체적인 이름은 빼고요. 전산 담당자는 한참을 듣더니 “권한 문제는 아닌데, 그런 패턴이 있으면 자동 정리 프로세스나 보안 정책을 의심해야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근데 그 정책 로그를 보여달라고 했더니, 그 시간대 로그는 또 이상하게 비어 있었습니다. 전산 담당자 얼굴이 하얘지더니, 결국 “야간에만 뜨는 오류라면… 그냥 그쪽에서 조심해”라고 말하고 더는 얘기를 안 하더라고요.

사실 그때부터 저는 환자 기록을 만질 때마다 손목이 차가워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전산을 켜고 목록을 펼치면, 어떤 항목들은 분명히 있어야 할 자리인데 비어 있고, 그 빈칸 옆에 마치 다른 항목이 “끼어든” 것처럼 보였습니다. 예를 들면 접수번호 자리 옆 메모칸에 이유가 모를 문장 조각이 붙어 있는 거예요. 저는 대충 “오류 복구 중” 같은 문구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면 사람 이름처럼 보이는 단어가 섞여 있었습니다. 제 눈이 그렇게 적힌 걸 원한 걸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 단어가 지워지고 나면 똑같이 화면이 매끄럽게 정리돼 버렸어요. 마치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지워서, 흔적이 없게 만들고 있는 것처럼요. 그 다음부터는 ‘기록이 먼저 사라진다’는 말이 그냥 소문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마지막으로 그날, 저는 제가 맡은 환자 기록을 다 입력하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창가 쪽 거울을 봤습니다. 거기 비친 제 얼굴은 피곤한 사람 같았는데, 눈 아래쪽에 손등으로 문지른 듯한 자국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누가 저를 만진 건 아니었는데요. 그리고 화면을 다시 열었을 때, 아까 그 “기록이 없던” 접수번호가 다시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입력된 내용은 제가 본 적 없는 문장으로 채워져 있었어요. 환자의 증상도 아니고, 간호 메모도 아니고, 설명할 수 없는 문단처럼 이어져 있었습니다. 저는 그걸 읽으려다 손을 멈췄습니다. 읽으면 뭔가가 고정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요. 그날 이후로, 응급실에는 새로운 환자가 오면 기록부터 확인하라는 원칙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기록이 먼저 사라지는 날이 가끔씩 찾아옵니다. 그때마다 저는 생각해요. 사람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기록이 살아남기 위해’ 사람을 밀어내는 건 아닐까. 마지막으로 남는 건, 전산 화면의 빈 칸과… 새벽 복도에서 누군가가 침상 번호를 부르다 말고 삼키는 숨소리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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