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집 마루 밑에서 발견한 이상한 그림
시골집 마루 밑에서 발견한 이상한 그림
어느 날 장마가 지나고 나서야, 우리 집 마루가 한번 삐걱대는 소리를 냈다. 작은 집이라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밤이 되자 바람도 아닌데도 마루 밑에서 아주 규칙적인 두드림이 들렸다. 톡, 톡. 손톱으로 두드리는 것처럼 얇고 빠른 소리였어. 잠을 깨서 거실 쪽을 보니 불은 켜져 있지 않은데, 마루 위로 얇은 그림자만 흔들리는 것 같았다. 그날 새벽, 나는 결국 마루 밑을 열어보게 됐다.
집이 워낙 오래돼서, 마루 한 칸은 못만 잘 풀면 들리는 구조였다. 달빛이 비치는 쪽이라 도구도 대충 챙겼다. 못을 빼고 나서야 알았는데, 마루 밑에는 먼지 말고도 뭔가가 단단히 쌓여 있었다. 오래된 신문지 같은 것들이 눌린 채로 있었고, 그 위에 종이 한 장이 반쯤 접혀 끼어 있었다. 손으로 뽑는 순간 종이가 바스락이 아니라, 얇은 막을 벗기는 소리처럼 말랑하게 움직였다. 이상하게 축축했다.
그 종이를 펼치자 그림이 나왔다. 연필로 대충 그린 낙서 같은데, 자세히 보니 사람의 뒷모습이 반복해서 그려져 있었다. 마치 누군가를 여러 번 같은 포즈로 세워놓고 따라 그린 듯했다. 그런데 이상한 건 배경이 계속 바뀐다는 점이야. 한 칸씩 옮겨가면서 방 구석, 창문, 마루의 위치가 달라지는데, 인물은 매번 똑같은 각도에서 그려져 있었다. 그림마다 같은 얼굴이지만, 눈만 조금씩 다르게 그려져 있어서 계속 쳐다보게 만들었다.
처음엔 누가 아이들 장난으로 그려뒀겠거니 했어. 그런데 그림 아래쪽에 작은 글씨가 아주 촘촘히 적혀 있었다.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또렷하진 않았는데, “내일도 올까” 같은 문장과 날짜가 번갈아가며 반복됐다. 날짜는 오래전처럼 보였고, 연필 자국이 유난히 진한 부분이 있었다. 그 진한 부분이 꼭 손가락이 문지른 자국처럼 보여서 소름이 돋았다. 누가 종이에 손을 대고, 그 위치만 계속 되풀이한 것 같았거든.
나는 그림을 더 찾기 위해 마루 밑을 조금 더 파봤다. 그때 먼지 사이에서 비슷한 종이들이 더 나올 것 같았는데, 막상 더 파보니 종이는 딱 하나 더 있었다. 그건 그림이 아니라, 마치 도면처럼 보이는 스케치였다. 우리 집 구조를 대충 적어둔 것 같았는데, 이상하게도 현재 우리 집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벽이 없는 자리에 벽이 있다고 표시되어 있었고, 창문 위치가 한 뼘쯤 틀려 있었다. 그리고 도면 한가운데에 동그라미가 쳐져 있는데, 그 위치가 바로 ‘내 방 아래’였다.
그날 이후로 집이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냥 소리였는데, 며칠째 되자 마루 위에서 뭔가가 움직이는 느낌이 들었다. 걸을 때 나는 소리처럼 쿵— 하는 게 아니라, 종이를 펴거나 접는 소리 같았어. 특히 새벽 2시쯤이면 꼭 그 시간에 똑, 똑 하고 두드림이 이어졌다. 나는 그림을 숨겨두고도 자꾸 생각이 났다. 그림이 내 방 아래를 가리킨 것 같아서, 괜히 내 침대 위치를 바꾸게 됐다.
그러고 나서 이상한 꿈을 꿨다. 꿈에서 나는 마루 밑으로 내려가 있었는데, 손전등을 비추면 먼지가 아니라 얇은 실들이 떠다니는 것처럼 보였어. 실들은 그림 속 인물의 옷자락처럼 보였다가, 내 목덜미를 따라 내려오는 것처럼 이어졌다. 그런데 그 장면에서 제일 찝찝했던 건, 인물이 한 번도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는 점이야. 뒷모습만 계속 보이는데, 마치 “지금은 아직”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끝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꿈에서 깼을 때는 목이 뻣뻣했고, 손바닥에 연필가루 같은 게 묻어 있었어.
그래서 결국 낮에 집 뒤쪽 창고에 있던 오래된 공구들을 뒤져봤다. 마루 밑에서 못을 풀었던 기억 때문에, 집 구조를 확인하면 뭐가 나올 줄 알았거든. 그런데 놀랍게도, 도면에 표시된 동그라미 위치 아래에는 이전에 없던 작은 판자가 하나 더 있었다. 누군가가 일부러 숨겨둔 것처럼 가장자리만 깔끔하게 정리돼 있었고, 누가 손으로 몇 번이고 떼었다 붙였다 한 듯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 판자를 열면 뭐가 나올지 알면서도 손이 떨렸다.
판자를 열자, 종이 뭉치가 한겹 더 있었다. 그런데 이번 종이들은 그림이 아니라, 마루가 울리는 방식과 관련된 것 같았다. 종이마다 “왼쪽이면 늦고, 오른쪽이면 빠르다” 같은 문장이 줄줄이 적혀 있었고, 그 아래에 작은 동그라미와 선들이 반복됐다. 선들은 마치 두드리는 순서 같았고, 그 순서가 내가 밤에 듣던 톡, 톡과 거의 맞아떨어졌다. 다만 마지막 줄에는 “그림은 찾는 사람을 그린다”라고 적혀 있었다. 읽는 순간, 등 뒤가 서늘해져서 종이를 놓치려 했다.
나는 그 뒤로 마루 밑을 다시 건드리지 않기로 했다. 그림은 그대로 두거나 버리기엔 너무 정교했고, 그렇다고 태워버리면 더 불안해질 것 같아서 그냥 서랍 깊숙이 넣어뒀다. 그런데도 가끔, 바람이 없는 날이면 집 안에서 아주 미세한 종이 마찰 소리가 난다. 누군가가 아주 조심스럽게 그림을 넘기는 소리처럼. 그리고 어느 날은, 내가 방에 들어오기도 전에 내 침대 아래에서 연필심이 깎이는 듯한 ‘사각’ 소리가 들렸다.
지금도 생각하면, 그 그림 속 인물은 분명 같은 뒷모습이었는데… 이상하게도 매번 그 사람이 조금씩 더 가까워진 것 같아. 내가 마루 위에 서 있는 순간만큼은, 마루 밑에서 그려지고 있는 게 ‘누군가’가 아니라 ‘나’라는 느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