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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화장실에서 본 누군가의 그림자

2026-06-06 04:29:13 조회 10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군대 화장실에서 본 누군가의 그림자

그날은 병영 생활에서 흔한 날이었는데, 이상하게 기억이 선명해. 새벽 점호 끝나고 당직이 슬슬 풀릴 무렵, 나는 세면대 물을 잠깐 틀러 가느라 훈련동 화장실 쪽으로 걸어갔어. 복도 형광등은 한 칸씩 깜빡였고, 화장실 문은 평소처럼 살짝 삐걱거렸지. 그런데 문을 밀고 들어가는 순간, 물소리도 숨소리도 아닌 “한 번 스르륵” 하는 소리가 들렸어. 마치 누가 젖은 손으로 벽을 스친 것 같은 느낌이랄까.

화장실 안은 생각보다 넓지 않은데, 조명은 천장 가운데 하나만 켜져 있어서 모서리 쪽은 늘 어둡거든. 나는 손을 씻고 나오려던 참이었어. 그때 변기 옆 타일에 비친 그림자가, 내 몸과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더라. 나는 분명히 화장실 가운데 쪽에 서 있었는데, 벽에 걸린 그림자는 문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고, 천천히 길어지면서 마치 누군가가 고개를 숙이는 모양으로 꺾였어.

처음엔 내가 조명 때문에 착각한 줄 알았지. 형광등이 깜빡이면 그림자가 흔들리니까. 그런데 그 그림자는 단순히 흔들리는 게 아니었어. 내 앞에 있는 세면대 거울이 아니라, 물이 고여 있는 바닥 타일 쪽으로 그림자가 “정확히” 붙어 가는 것처럼 보였거든. 나는 몸을 돌려 확인하려고 했고, 그 순간 그림자가 한 발자국 옆으로 미끄러지듯 옮겨졌어. 소리 없이, 그냥 위치만 바뀌는 느낌.

나는 괜히 겁 먹는 내 자신이 더 싫어서 일부러 휙 고개를 돌렸어. 화장실 칸막이 사이엔 누구도 없었고, 세면대 아래 환풍구 쪽에도 움직일 만한 건 없었어. 문도 잠겨 있었고, 바깥 복도에서 들어오는 사람도 보이지 않았지. 근데 이상하게 “있다”는 확신이 들었어. 눈에 보이는 사람이 아니라, 내가 보지 못하는 위치에서 누군가가 나를 보고 있는 느낌. 그래서 손을 멈추고 가만히 서 있는데, 그림자가 다시 변기 쪽으로 길어졌어.

그림자는 사람 모양 같았어. 정확히 말하면 사람의 윤곽이 아니라, 사람이 서 있는 방식이 보였달까. 어깨가 있고, 팔이 있고, 무게가 실리는 위치가 그대로 타일에 찍혀 있었어. 그런데 그 윤곽의 끝이 이상했어. 형광등에서 나오는 밝은 빛이라기보다, 어둠이 형태를 따라 모인 것처럼 경계가 흐릿했거든. 나는 본능적으로 뒤로 한 걸음 물러났고, 그 순간 그림자는 내 발자국만큼 정확히 따라 움직였어. 마치 “나도 같이 한 칸” 한 것처럼.

난 그때부터 멍해졌어. 혹시 누군가가 문 밖에서 내 모습을 비추는 각도일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화장실 안은 문을 닫아도 복도 빛이 거의 안 들어오는 구조였어. 그래서 도저히 설명이 안 됐지. 그 후로는 내 귀가 더 예민해졌어. 변기 물이 내려갈 때 나는 소리도 없는데, 아주 작은 마찰음이 들렸어. 타일 틈을 손가락으로 더듬는 듯한 소리. 나는 시선을 내리지 않으려 했지만, 자꾸 바닥 타일 쪽으로 시선이 끌렸어.

바닥 물기 위로 비친 그림자가, 내 그림자와 잠깐 겹쳤다가 다시 갈라졌거든. 그 찰나에, 내가 본 건 “누군가가 서 있는 자세”가 아니라, “누군가가 몸을 낮추는 동작”이었어. 고개를 숙이는 것처럼 머리 쪽이 내려오는데, 그 움직임이 너무 부드럽고 느려서 오히려 더 현실감이 없었어. 그리고 그 그림자가 사라지는 게 이상했어. 보통은 빛이 약해지면 흐려지잖아? 근데 이건 그냥 ‘끝’이 잘린 것처럼 사라졌어. 마치 누가 화면을 꺼버린 것처럼.

나는 숨을 삼키고 문을 열어 복도로 나왔어. 다행히 복도는 평온했어. 다른 병사도 없었고, 당직실 쪽에서도 아무 소리 없었지. 그럼 내가 본 게 뭔가—사실 그 뒤로도 한동안 설명하려고 계속 생각했어. 조명이 흔들렸나, 내가 서 있는 위치가 이상했나, 혹시 누가 화장실 밖에서 손전등으로 비춘 건가. 근데 그 생각들이 다 막히는 이유가 하나 있었어. 화장실 안에 비치는 그림자는 ‘한 방향’의 빛으로 생겨야 하는데, 내 그림자와 겹치고 갈라지는 타이밍이, 내가 움직인 타이밍이랑 너무 정확히 맞았다는 거야.

며칠 뒤 훈련동 배치 바뀌면서, 그 화장실이 통째로 점검 들어갔다는 소문이 돌았어. “환풍기 고장” “배수관 문제” 이런 말은 흔하지만, 이상하게 사람들 표정이 조금 굳어 있었지. 나는 괜히 더 캐묻지 않았어. 대신 세면대 옆 타일에 손가락으로 금이 간 자국이 있는 걸 봤는데, 그게 전에 없던 곳처럼 느껴지더라. 물론 착각일 수도 있지만, 그날 이후로 나는 화장실에 들어가기 전에 늘 문고리를 한번 더 확인하고, 바닥을 오래 보지 않게 됐어. 군대 화장실에서 본 누군가의 그림자는 사람을 직접 보지 않아도 사람의 존재감을 남긴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어. 그리고 아직도 가끔 복도 불이 깜빡일 때, 타일에 남아 있는 경계선이 다시 선명해지는 것 같아서… 그게 제일 무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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