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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복도에서 들리는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는 한숨

2026-06-06 16:29:11 조회 6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병원 복도에서 들리는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는 한숨. 그날 밤, 나는 응급실 쪽 유리문 앞에서 서류를 정리하고 있었는데, 복도 끝에서 아주 얇은 숨소리가 들리더라. 바람도 아닌 것 같고, 누군가가 힘을 주어 참는 소리 같았는데 이상하게도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 사이로만 끼어들었어. 뒤돌아봐도 환자도 없고, 간호사도 지나가지 않는데 그 한숨만 계속 이어졌어.

처음엔 내 착각인 줄 알았어. 병원은 늘 소리가 많잖아. 모니터 알람, 휠체어 끄는 소리, 멀리서 들리는 전화 벨. 근데 그 한숨은 그런 것들하고 결이 달랐어. 알람처럼 뚝뚝 끊기는 게 아니라, 마치 누가 “여기까지는 참고 버텨봤는데…” 하고 포기하는 것처럼 길게 늘어졌지.

나는 복도 쪽 조명을 켜진 상태로 확인하려고 천천히 걸었어. 유리문 옆에 있는 안내 표지판, 벽면의 소독제 냄새, 하얀 바닥의 반사광까지 다 평소랑 똑같았는데, 이상하게도 그 한숨의 방향만은 고정돼 있더라. 내 귀가 아니라 복도 어딘가, 그러니까 ‘공간’에서 나는 느낌. 스피커에서 새는 소리처럼, 근데 스피커가 없었어.

한숨이 다시 들릴 때쯤, 복도 끝 문이 아주 조금 열렸다 닫히는 소리가 났어. 그 문은 소모품 보관실 쪽이라, 보통 그 시간에는 누구도 열지 않아. 그래도 나는 습관처럼 “누구세요?” 하고 물었지. 당연히 대답은 없었어. 대신, 한숨이 더 가까워진 것처럼 들렸는데, 그게 제일 소름이었어. 대답을 안 하는 건 그렇다 쳐도, 소리의 위치가 내 쪽으로 미끄러져 오는 느낌이었거든.

나는 손전등 없이도 복도를 잘 볼 수 있었어. 조명이 워낙 하얗게 깔려 있어서. 그때 바닥 타일 틈 사이로 희미한 김 같은 게 보였는데, 냉장고 문틈에서 나는 서리랑 비슷한 거. 근데 공조가 정상이라면 그럴 리가 없지. 나는 무의식적으로 뒤로 한 걸음 물러섰고, 그 순간 한숨이 딱 멈췄어. 마치 내가 움직인 걸 누군가가 체크한 것처럼.

그날 근무표를 확인해보니, 내 옆 병동은 야간에 2명만 교대 근무였고, 보관실 출입 기록도 없더라. 그래서 나는 간호사에게 물었어. “복도 끝에서 소리 들렸는데 보관실 문 열릴 일 없죠?”라고. 간호사는 한참 웃다가, 피곤한 목소리로 “야, 그런 건 그냥… 귀가 예민해져서 그래요. 밤엔 소리 섞여 들리는 경우 많아요.” 하고 넘겼지. 근데 내가 보기엔 ‘예민’이 아니라 ‘맞춰지는’ 느낌이었어.

한숨은 다음 날도 이어졌어. 같은 시간, 같은 위치. 처음엔 서류 정리하다가 들리는 줄 알았는데, 점점 일정이 생겼어. 복도에 의료용 카트가 지나간 직후, 아니면 호출벨이 멈춘 직후에만 얇게 들려. 마치 누가 “이제 들킬 시간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그리고 그 한숨이 나오면 유독 복도 끝의 공기가 더 서늘해졌어. 피부가 먼저 반응하는데, 몸은 늦게 따라오는 느낌이랄까.

어느 날은 내가 참다 못해 녹음기를 켜고 복도 중앙으로 서봤어. 휴대폰 화면에 남은 배터리는 충분했고, 마이크도 정상이라 뜨더라. 그런데 녹음해놓고 재생하니까 소리 자체가 안 잡혔어. 내가 직접 들은 그 결, 그 길이, 그 ‘숨이 벽 안으로 스며드는’ 감각은 그대로였는데 파일에는 아무것도 없어. 그래서 나는 더 헛웃음이 나왔어. 누군가에게도, 장비에게도 들리지 않는 한숨이라니… 내 귀만 바보인 건가 싶었거든.

마지막으로 그 한숨이 가장 크게 들린 날은 새벽 2시 17분쯤이었어. 이상하게도 병원 전체가 조용했는데, 환자도, 직원도, 문 여닫는 소리도 거의 없었어. 그 틈에서 복도 끝이 한 번 숨을 들이마신 것처럼 정적이 찌그러지더니, 바로 이어서 한숨이 길게 새어 나왔어. 그리고 그 한숨 사이로 아주 미세한 문장 같은 게 끼어 있었는데, 정확한 말은 아니었어. 다만 형태만 느껴졌어. ‘부르지 말아…’ 같은, 입김이 아니라 생각이 떨어지는 느낌.

그 뒤로는 더 이상 한숨이 안 들렸어. 대신 복도 끝 보관실 문이 평소보다 자주 열리더라. 그런데 열어보면 아무도 없어. 종이상자 하나만 비어 있고, 바닥에는 손톱만 한 먼지 자국이 얇게 남아 있어. 나는 그 자국을 청소하긴 했는데, 이상하게도 다음 날이면 자국 위치가 조금씩 바뀌어 있더라고. 그래서 요즘도 밤에 복도를 지나갈 때, 일부러 일부러 숨을 크게 쉬지 않게 돼. 내가 들리게 될까 봐, 아니면 누군가가 내 쪽을 바라볼까 봐… 병원 복도엔 소리보다 먼저 한숨이 먼저 도착하는 시간이 있는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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