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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출입증이 갑자기 작동을 멈춘 날

2026-06-08 00:29:11 조회 7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회사 출입증이 갑자기 작동을 멈춘 날, 나는 그날따라 사소한 지각이 쌓이면 큰일 나는 느낌을 받았다. 아침에 리셉션 앞 출입문을 통과하려는데, 평소처럼 ‘삑’ 하고 초록불이 뜨는 게 아니라 잠깐 멈칫하더니 아예 반응이 없었다. 카드 리더기에 대고 한 번, 두 번. 손가락이 열쇠처럼 굳을 정도로 계속 문질렀는데도 화면은 그대로였다.

처음엔 내 탓인 줄 알았다. 출근길에 지갑을 정리하다가 다른 카드랑 섞였나 싶어서, 출입증만 따로 빼서 다시 찍었다. 그 사이 옆 사람들은 별일 아니라는 얼굴로 통과했다. 나는 문 앞에서 서서 한 박자 늦게 웃으며 “오늘 왜 이러지…” 같은 말을 혼잣말처럼 내뱉었고, 리셉션 쪽에는 누가 봐도 ‘대수롭지 않은 문제’처럼 보이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건, 카드가 아예 죽은 게 아니라는 점이었다. 가끔 아주 짧게 리더기가 깜빡이더니 곧바로 꺼졌다. 마치 누군가가 버튼을 눌렀다가 다시 놓는 것처럼, 반응이 들쭉날쭉했다. 나는 그 신호를 무시하고 보안팀에 연락하려고 했는데, 손에 들린 휴대폰 알림은 뜨지 않고 화면만 희미하게 반짝였다. 당장 중요한 일정이 있는 날이라 더 초조해졌다.

리셉션 직원이 “출입증 이상하신가요?” 하고 물었을 때, 나는 카드 화면을 보여주며 “혹시 배터리 문제일까요?”라고 묻는 척했다. 그런데 직원은 내 얼굴을 보자마자 말투가 달라졌다. “저희 쪽에서 확인해봐야겠어요. 잠시만요.” 그 한마디가 이상하게 길게 늘어졌다. 마치 내 이름을 부르기 직전의 누군가가, 혀를 굴리다 멈춘 것처럼.

보안팀으로 연결된다고 했던 연락이 끊기고, 직원은 곧장 백오피스로 데려가려 했다. 그때 복도 쪽 형광등이 아주 잠깐, 한 번 꺼졌다 켜졌다. 나는 그 순간 내가 들고 있던 출입증이 아니라, 손목의 시계가 먼저 울컥하고 멈춘 느낌을 받았다. 시계는 멀쩡했는데도 ‘그런 느낌’을 몸이 먼저 기억하는 게 무섭더라. 직원은 아무 일 없다는 듯 문을 열었지만, 문 여는 소리가 평소보다 낮았다.

백오피스에 들어가자, 컴퓨터 모니터에 뜬 화면이 보안규정 안내문이 아니라 이상하게 ‘출입이력’ 같은 로그 화면이었다. 직원은 마우스를 움직이지 않고도 화면이 스르륵 넘어갔다. 나는 그걸 보고 “자동으로 갱신되는 건가요?”라고 물었는데, 직원은 대답 대신 내 출입증을 리더기 위에 올려놓았다. 카드가 리더기에 닿는 순간, 화면 오른쪽에 아주 작은 글자로 내 이름이 떴다가 바로 지워졌다.

그때 직원이 조용히 말했다. “오늘… 출입증이 ‘정지’ 상태로 찍혔을 거예요.” 정지. 그 단어가 내 하루를 잡아당기는 고리처럼 느껴졌다. “누가 설정했죠?”라고 묻자, 직원은 잠깐 뜸을 들이더니 “설정한 사람이 있으면, 저희도 보이긴 해요. 근데 이건…” 말끝을 삼켰다. 화면엔 시간대가 비어 있거나, 대신 다른 누군가의 출입 기록이 잠깐 섞여 들어갔다. 마치 누가 내 자리를 빌려 쓴 뒤, 흔적만 덜어낸 것 같았다.

나는 그날 오전 내내 출입문 앞에서만 서서 기다리는 사람이 되었다. 점심시간엔 동료가 “너 오늘 왜 계속 바깥에 있어?”라고 했는데, 나는 사실 사무실 안에 있었다. 그런데 메신저 상태는 ‘부재중’으로 떠 있었고, 내 자리 컴퓨터는 잠금화면이 뜨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나는 내 업무를 이어가려 하면 키보드가 눌리지 않는 느낌이 들었고, 마우스만 움직였다. 보고 있던 화면이 내 의도와 다른 방향으로 살짝씩 넘어가는 걸 여러 번 봤다.

오후 늦게, 리셉션 쪽에서 다시 내 출입증을 찍어보라고 연락이 왔다. “그래도 안 되면 내일 발급받으셔야 할 것 같아요.” 그 말은 너무 평범해서 오히려 더 섬뜩했다. 나는 출입증을 들고 다시 문 앞에 섰다. 그때 문이 열리기 직전, 내 카드에서 작은 ‘삑’ 소리가 났는데, 소리가 이상하게 뭉개져 있었다. 누군가가 입을 가리고 웃는 소리 같은 느낌.

문이 열리고 나서야 알았다. 카드가 작동한 게 아니라, 출입문이 내 위치를 ‘허용’한 게 아니었다. 내 발이 이미 안으로 들어온 것으로 처리된 거였다. 나는 한 발을 들이밀었는데, 실제로는 출입문이 열려서 들어간 게 아니라 내 몸이 먼저 앞으로 옮겨진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나는 출입증을 찍을 때마다 가끔 리더기가 아주 짧게 멈칫한다. 마치 내 차례를 누가 대신 확인하고, 내가 지나가기 전에 다시 세어보는 것처럼. 아직도 그 멈칫하는 순간, 등 뒤가 한 번 차갑게 식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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