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최신글
자유/잡담 괴담 추천 0

병원 병동 복도 끝에서 서성이는 흰 옷 남자

2026-06-08 08:29:13 조회 8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병원 병동 복도 끝에서 서성이는 흰 옷 남자, 처음엔 그냥 퇴근 못 한 사람인가 싶었어요. 야간 교대 첫날이라 병동이랑 익숙해지지도 않았는데, 휴게실에서 담배 대신 커피를 마시고 돌아오는 길에 복도 맨 끝, 문 닫힌 공간 앞에서 누군가 서 있더라고요. 흰 가운 같은 옷이었는데, 병원 특유의 형광등 아래서 유난히 하얗게 보여서 시선이 자꾸 그쪽으로 갔어요.

그 남자는 고개를 들지도 않고, 벽을 향해 등을 보인 채로 천천히 왔다 갔다 했어요. 걸음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았는데, 딱 일정하게 움직이는 느낌이랄까. 발소리가 나는 것도 아니고, 복도 전체가 조용한데도 이상하게 “그 사람만” 소리 없이 존재하는 것 같았어요. 저는 얼른 눈을 돌려야 한다는 생각에 간호사실 쪽으로 걸음을 재촉했죠.

그날 밤, 제가 맡은 건 환자 호출 응대랑 라운딩 보조였어요. 근데 복도 끝 쪽을 볼 때마다 가슴이 서늘해졌습니다. 커튼이 쳐진 병실들이야 원래 조명이 어둡긴 한데, 유독 저 끝만 밝기가 다르게 느껴졌거든요. 형광등이 깜빡이는 것도 아닌데, 남자가 서 있는 쪽만 공기가 조금 층진 것처럼 보였어요. 제 동선이 그쪽을 스치기만 해도 손바닥에 땀이 났고요.

새벽 두 시쯤, 호출 벨이 울려서 복도 끝쪽 병실로 향했어요. 병실 문은 잠겨 있었는데 간호사 호출은 저쪽에서 제일 먼저 울릴 때가 많았거든요. 문 앞에서 키를 찾는 동안, 등 뒤에서 아주 옅게 “사각” 하는 소리가 났어요. 돌아보니 남자가 제 뒤에 서 있었는데, 너무 가까워서 놀라기보단 멍해졌어요. 그런데 웃지도, 말을 걸지도 않고 그냥 복도 끝을 다시 바라보더라고요.

그때 저는 뭔가 잘못됐다는 걸 직감했어요. 병원 사람들은 보통 환자나 보호자랑 시선이 마주치면 적어도 인사라도 하잖아요. 근데 그 남자는 마치 복도 끝에 무언가가 있고, 그걸 확인하러 온 사람 같았어요. 저는 얼떨결에 “여기… 누구세요?”라고 물었는데, 대답 대신 남자의 손끝이 가운 자락에 닿았다가 떨어졌어요. 움직임이 너무 작아서, 손이 아니라 그림자가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죠.

그날 이후로는 동료들이 “그 구역은 새벽에 사람이 서성인다고들 하더라” 같은 말들을 슬쩍 하더라고요. 솔직히 장난처럼 들릴 수도 있는데, 그 말을 하는 표정이 매번 똑같아서 믿음이 생겼어요. 그 병원은 오래된 건물이었고, 리모델링하면서 한 구역을 임시로 폐쇄했대요. 폐쇄된 통로는 안전 문제로 접근하면 안 된다고 했는데, 밤만 되면 누군가 그쪽을 오가거나 멈춰 서 있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할 때마다 누가 “흰 옷”이라고 꼭 덧붙였어요.

저는 결국 관리자에게 물어봤어요. “저기 복도 끝에 누가 서 있던데요.”라고 말했더니, 돌아오는 답은 더 이상했어요. 관리자는 잠깐 말끝을 흐리더니 “그 구역엔 근무자 출입이 없습니다. 야간에는 더요.”라고 했어요. 그런데 제가 봤던 건 분명 사람 형태였고, 걸음도 분명히 있었고, 무엇보다 가운의 주름이 형광등 빛을 받아 움직이는데요. 관리자는 ‘그걸 봤다’는 말 자체를 처음엔 농담인 줄 알았다는 듯한 표정이었어요. 그러고는 “혹시 폐쇄 구역 문 근처까지 가셨어요?”라고만 물었고, 저는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날부터 제가 복도 끝을 보지 않으려고 노력한 건, 단순히 무서워서가 아니었어요. 이상하게도 남자가 있는 방향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순간, 제 머릿속에 다른 장면이 떠오르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환자 차트가 펼쳐진 손, 누군가 이름을 부르는 소리, 그리고 누군가 “여기서 기다리라”는 말을 속삭이는 듯한 감각. 물론 실제로 그런 말이 들린 건 아니었지만, 눈을 감으면 잔상이 먼저 생기는 게 계속 신경을 건드렸습니다. 저는 결국 그 병동 야간 일을 더는 못 맡겠다고 말했고, 며칠 뒤엔 다른 병동으로 이동했어요.

근데 이상하게도 이동한 다음 날, 낮 시간인데도 꿈에서 그 복도 끝이 나왔어요. 꿈속에서는 남자가 제 앞에 오지 않고, 항상 복도 끝에만 서 있었고, 그 자리에 서 있는 시간이 멈춘 것처럼 똑같은 자세를 유지했어요. 그리고 꿈에서 깨어나면 손목이 먼저 시큰거렸습니다. 마치 누군가가 제 맥을 재듯이 짧게 잡아당긴 것처럼요. 저는 손목을 확인해도 멍 같은 건 없었는데, 그 느낌만은 계속 남아 있었죠.

지금도 가끔 그 병원을 지나치면, 정차하지도 않았는데도 유리창 너머로 복도 끝이 스쳐가요. 그때마다 저는 흰 가운의 실루엣을 떠올리게 돼요. 누가 도망가듯 서성였는지, 아니면 누가 서서 기다린 건지—그 구분이 자꾸 흐려집니다. 병원은 보통 사람을 치료하러 가는 곳인데, 그 복도 끝은 치료가 아니라 ‘확인’하러 가는 자리 같았어요. 그리고 그걸 깨닫는 순간, 왜인지 모르게 다음 야간에 누군가 또 그 복도 끝에서 같은 걸음을 시작할 것 같아 더 무섭습니다.

이 글 반응 남기기
추천과 비추천은 회원당 1회만 가능하며, 다시 누르면 취소됩니다.
추천 0 · 비추천 0
글 신고 안내
같은 회원은 같은 글이나 댓글을 1회만 신고할 수 있으며, 누적 신고가 5회 이상이면 자동으로 숨김 처리됩니다.
현재 글 신고 0회

댓글

댓글 작성은 로그인 후 가능합니다.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