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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뒷좌석에 놓여 있던 낯선 가방의 내용물

2026-06-09 12:29:16 조회 8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택시 뒷좌석에 놓여 있던 낯선 가방의 내용물

그날도 늦게까지 일하고 택시에 탔는데, 기사님이 “대금은 카드로 하실 거죠?” 같은 말을 하면서 출발하자마자 뒷좌석을 한번 툭 보더라고요. 저는 그냥 승객이다 보니 신경 안 쓰려 했는데, 등받이 옆에 가방 하나가 반쯤 시야에 걸려 있었어요. 생각보다 크지도 않고, 그렇다고 작지도 않은 천가방이었는데 손잡이가 안쪽으로 접혀 있어서 마치 누가 일부러 숨겨둔 것처럼 보였습니다.

처음엔 “아, 혹시 기사님 짐이구나” 싶었어요. 그런데 이상한 건, 기사님이 거울로 가방 쪽을 계속 확인했다는 점이에요. 출발하고 몇 분쯤 지나서 정체가 풀리길 기다리는데, 제 옆자리(그러니까 제 무릎 바로 옆)에서 아주 미세한 소리 같은 게 났습니다. 바스락, 하고는 다시 조용해지고요. 저는 이어폰을 끼고 있다가도 그 소리가 너무 규칙적이라 결국 고개를 돌려 봤어요.

가방은 잠겨 있지도 않았고, 지퍼가 반쯤만 닫혀 있는 상태였어요. 천을 잡아당기면 열릴 정도로 느슨했는데, 그걸 굳이 열어보는 건 무섭고도 민망해서 그냥 가방을 피해 앉으려 했죠. 근데 손을 뻗는 순간, 천 냄새가 아니라 오래된 종이 냄새 같은 게 확 올라왔습니다. 눅눅한데 마르지도 않은, 눌어붙은 듯한 습기 냄새요. 이상하게 그 냄새가 “이건 가방 안에 뭐가 있다”가 아니라 “시간이 안쪽에 들어있다” 같은 느낌을 줬어요.

기사님이 신호 대기 중에 잠깐 손을 놓고 계기판을 보길래, 저는 무의식적으로 입을 열었어요. “기사님, 뒷좌석에 가방… 혹시 손님 거예요?” 그러자 기사님이 웃지도 않고, “네?” 하고 되묻더니 핸들을 더 꽉 잡았습니다. 그리고는 아주 낮게 “그건 아니에요”라고만 하더라고요. 그 말이 너무 단정적이라, 오히려 제가 더 확인해야 하나 싶은 기분이 들었어요.

다음 신호에서 기사님이 잠깐 사이드미러로 가방을 봤는데, 그때는 분명 지퍼가 그대로였거든요. 그런데 차가 다시 출발하자마자, 제가 보기엔 가방의 지퍼가 조금 더 열려 있었습니다. 누가 손대지 않으면 그럴 수가 없잖아요. 저는 등골이 서늘해지면서도, 기사님이 이미 알고 있는 듯한 반응을 보여서 더 따지진 못했어요. 대신 목적지를 말하고는, 혹시 몰라 뒷좌석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지려고 몸을 옮겼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바스락 소리는 계속 났어요. 마치 가방 안에서 누가 손가락으로 종이를 넘기는 것 같은, 아주 얇은 소리. 저는 “장난감이나 서류겠지”라고 스스로 달래려 했는데, 그 소리가 점점 일정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저는 참지 못하고 가방을 살짝만 살짝 들여다봤어요. 지퍼 틈 사이로 보인 건 종이가 아니라, 비닐 봉투에 넣어진 종이 뭉치였어요. 봉투가 투명해서 글자처럼 보이는 것들이 섞여 있었는데, 가까이 보려는 순간 기사님이 갑자기 “내리세요”라고 말했어요.

“네? 여기요?” 제가 묻자 기사님은 대답 대신 계기판을 가리켰습니다. 분명 제가 말한 목적지와는 다른 도로였어요. 저는 급히 창문 쪽으로 몸을 돌리며 “기사님, 목적지 아닌데요”라고 말했는데, 기사님이 한마디도 더 하지 않고 속도를 줄이더니 가방을 보지도 않은 채 문을 열어줬습니다. 그 순간 저는 깨달았어요. 기사님이 모르는 게 아니라, 알고 있는데도 모른 척한 거라는 걸요. 제 손이 문 손잡이에 닿는 찰나, 가방 안쪽에서 아주 작은 ‘톡’ 소리가 났습니다. 마치 누군가가 종이 위에 뭔가를 내려놓는 것처럼요.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저는 기사님 번호와 차량 번호를 확인하려 했어요. 그런데 계기판 쪽 사진을 찍으려던 제 손이 이상하게 떨리더라고요. 멍하니 가방을 바라보는데, 가방은 그냥 거기 그대로 있었는데도 이상하게 “지금은 비어 있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들었어요. 천이 조금 부풀어 있던 모양이 갑자기 납작해진 것 같은 느낌. 그리고 저는 비닐봉투 안에서 보였던 것들이 종이가 아니라… 사진 같은 거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불길한 상상이라 애써 떨쳐냈지만, 그때부터 귀 안이 먹먹해지고 숨이 얇아졌어요.

집에 돌아와서야 저는 택시 안에서 내렸다는 사실이 제대로 정리되지 않았습니다. 배차 앱을 확인했는데, 이상하게도 탑승 기록이 ‘완료’로 떠 있고, 결제는 제 카드로 됐는데 경로는 제가 기억하는 길과 달랐어요. 게다가 고객센터에 문의하려고 차량 번호를 찾는데, 제 사진첩에는 택시 번호판이 찍히지 않았더라고요. 대신 찍힌 건 뒷좌석의 가방… 그 가방의 옆면 천결만 선명하게 남아 있었어요. 더 놀라운 건, 그 사진을 확대해 보니 천결 사이로 희미한 글씨가 보이는 것 같았다는 점이에요.

글씨는 분명하게 읽히진 않았는데, 이상하게도 제가 어렴풋이 아는 단어랑 닮아 있었어요. “반납” “회수” 같은 느낌의 단어요. 저는 그제야 생각이 났어요. 택시 기사님이 왜 가방을 ‘그건 아니에요’라고 했는지, 왜 제가 확인하려 하면 멈추게 했는지. 그 가방은 누가 버린 게 아니라, 어딘가로 넘어가야 했던 물건일 수도 있겠다고요. 그리고 그 다음날, 제 직장으로 전화가 한 통 왔습니다. 상대는 “그날 택시에서 뭔가… 찾으신 거 있으세요?”라고 물었는데, 저는 당황해서 “아니요”라고 했더니 잠깐 정적이 흐르고는 “그럼 다행이네요. 저희가 찾고 있던 건 그쪽이 아니었거든요”라고 말했어요.
그 말이 지금도 계속 남아 있어요. 택시 뒷좌석에 있던 그 낯선 가방이, 결국 사람을 정하는 게 아니라 사람에게 ‘순서’를 주는 물건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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