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집 지하 창고에서 찾은 오래된 비디오 테이프
시골집 지하 창고에서 비닐봉지에 쌓인 짐을 정리하다가, 벽 한쪽을 받치던 나무판자를 억지로 치웠거든. 그러니까 그날부터 기억이 어긋나기 시작했어. 판자 뒤쪽엔 습기 먹은 상자가 있었고, 그 안에서 오래된 비디오 테이프가 줄지어 나왔어. 겉라벨이 전부 지워져서 내용도 모르겠는데, 이상하게도 유난히 한 개만 더 새까맣고 반짝이더라.
처음엔 그냥 예전 가족사진 같은 거겠지 싶었지. 테이프에 손가락을 대자마자 표면이 미세하게 끈적였고, 냄새가 났어. 곰팡이 냄새랑 기계가 달궈진 플라스틱 냄새가 섞인 느낌. 창고는 해가 들어오지 않아서 어두운데, 그 테이프만 잡히면 손전등 불빛이 이상하게 떨렸어. 마치 화면 속 먼지처럼.
TV도 옛날 모델이긴 한데 거실에 아직 남아있어서, 테이프를 찾아보던 김에 거기다 틀어봤어. 전원을 켜자마자 화면이 잠깐 하얘졌다가, 곧바로 소리가 먼저 나왔거든. 처음엔 바람소리 같은 잡음이었는데, 한참 뒤에 사람 숨소리처럼 들리는 게 섞였어. 누가 가까이서 마이크를 숨 쉬고 있는 것처럼.
화면은 시작부터 검은색이었고, 자막도 없었어. 그런데 10초쯤 지나자 조그만 글씨가 아래쪽에 희미하게 떠올랐어. “지하에서 꺼내지 마” 그 문장이 너무 선명하게 보이길래, 나도 모르게 테이프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지. 그 뒤로는 아무것도 안 나오다가, 갑자기 카메라가 아래로 꺾이면서 누군가가 창고 바닥을 비추는 장면이 찍혔어.
영상 속엔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그 창고랑 똑같은 구조가 나왔어. 벽돌 사이로 곰팡이가 번져 있고, 나무판자를 받치던 흔적도 그대로였어. 다만 문제는 “촬영 시간대”가 이상하다는 거였어. 화면 구석에 찍힌 날짜는 분명히 몇 년 전인데, 창고의 공사 흔적이 그보다 훨씬 앞서 있잖아. 그러니까 누군가가 과거를 다시 찍어두었다기보단, 이미 존재하는 공간이 뭔가 방식으로 반복되는 것 같았어.
그 영상에서 제일 무서운 건 사람이 나오는 타이밍이었어. 처음엔 창고 입구 쪽만 비추다가, 갑자기 카메라가 멈춘 채로 정면으로 “고개를 든” 것처럼 움직였거든. 누가 카메라를 들고 서서, 화면 바깥을 바라보는 동작. 그리고 그 다음 순간부터는 화면 중앙에 먼지가 아니라, 손자국처럼 뿌연 자국이 생기더니 서서히 번졌어. 누가 렌즈 앞에 얼굴을 가까이 댄 것 같은 느낌이었고, 화면이 계속 숨 막히게 흔들렸어.
소리도 그때부터 달라졌어. 잡음이 사라지면서 아주 낮은 목소리가 들렸는데, 말은 분명하지 않지만 리듬이 반복됐어. “꺼… 내… 지…” 같은 식으로 끊어지는데, 이상하게도 그 끊기는 박자가 지금 내가 창고 문을 열고 닫을 때 나는 소리와 맞물리는 거야. 난 분명히 멈추고 테이프를 빼려고 했는데, 손이 이상하게 굳어버렸어. 손끝이 차가워졌고, 테이프가 돌아가는 소리는 더 또렷해지는데 정작 내 몸은 가만히 있는 느낌.
그때 거실 전등이 한 번 깜빡였고, 영상 화면에도 똑같이 전등 깜빡이는 장면이 들어왔어. 근데 내가 보고 있던 건 TV 화면일 텐데, TV 앞에서 전등이 깜빡인 것과 동시에 영상 속 창고에서도 똑같이 깜빡였거든. 이건 단순한 전기 문제로 보기엔 타이밍이 너무 정확했어. 나는 리모컨을 찾으려 했지만, 손은 리모컨 대신 내 주머니 쪽으로만 자동으로 움직이더라. 주머니엔 분명 아무것도 없었는데.
나중에 정신 차려서 테이프를 뺐을 때, 바닥엔 작은 종이쪽지가 떨어져 있었어. 창고 상자에서 꺼낸 것 같지도 않았고, 분명 비닐봉지엔 없던 거였지. 종이엔 글씨가 한 줄뿐이었어. “영상은 빼면 돌아와.” 그리고 종이 아래쪽에 내 이름이 적혀 있는데, 글씨체가 내가 예전에 적어둔 메모랑 똑같아. 그 메모는 오래전에 버렸다고 생각했거든.
그 후로도 며칠은 멀쩡했어. 그런데 밤이 되면 창고 쪽에서 ‘테이프 감기는 소리’ 비슷한 게 들렸어. 누가 거실에 앉아서 비디오를 돌리는 것 같은 주파수. 나는 전부 닫고, 문도 걸고, 심지어 창고 문 앞에 의자까지 밀어놨어. 그래도 소리는 가끔 들렸고, 들릴 때마다 내 귀에만 아주 약하게 “지하에서 꺼내지 마”라는 문장만 남았어. 지금도 그 테이프는 어딘가에 있을 텐데, 문제는 내가 뭘 찾아서 꺼냈는지 기억이 자꾸 흐려진다는 거야. 그래서 나는 가끔 생각해. 혹시 그 테이프가 오래된 게 아니라, 나를 오래되게 만들고 있는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