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집 마당에서 발견된 오래된 흑백 사진
시골집 마당에서 오래된 흑백 사진이 처음 나온 날은, 비가 그친 직후였어요. 대문 앞 빗물받이 옆에 진흙이 한 바퀴처럼 쓸려 있었고, 그 안쪽 흙더미를 손으로 파보니 종이 한 장이 젖은 천처럼 달라붙어 있더라고요. 웬만한 낡은 서류겠거니 했는데, 펼치는 순간 사진 표면이 손바닥에서 차갑게 식으면서 제 손톱 끝이 살짝 따끔했어요.
사진은 흑백인데도 인물들이 유난히 선명했어요. 마당 한가운데에 사람이 서 있고, 뒤로는 그 집과 비슷한 담장과 창문이 보였죠. 문제는 사진 속 사람들의 얼굴이 어딘가 흐릿한데도, 자세는 너무 정확하다는 거예요. 누가 일부러 각도를 맞춘 것처럼 서 있었고, 인물들 사이의 거리까지 현실처럼 딱 맞아 보였어요. 게다가 한쪽에는 커다란 우물뚜껑이 보였는데, 우리 집 마당에는 그런 게 없거든요.
저희 집은 원래 우물이 있던 자리만 남아 있고, 뚜껑은 오래전에 메웠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사진을 보는 순간 머리가 멍해졌어요. 사진 속 우물은 지금의 메운 흔적과 달리, 테가 반듯하고 뚜껑이 온전히 자리 잡아 있더라고요. 저는 사진을 들고 거실로 들어가서 할머니한테 보여줬어요. 할머니는 보자마자 표정을 굳히더니, “그거 어디서 났냐”고만 물었어요.
“마당 흙더미에서요.”라고 말하자 할머니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어요. 그러다 “그 사진은 바깥에서 못 나오는 거다” 같은 말을 하더니, 손으로 사진 모서리를 조심조심 눌러서 펴려 했어요. 그런데 종이가 너무 잘 펴져요. 젖어 붙었다던 것 치고, 주름이 마치 기억을 잊은 것처럼 사라지는 느낌이었죠. 할머니는 그걸 보자마자 “아, 또 그랬구나” 하고 낮게 중얼거렸어요.
저는 솔직히 장난인가 싶어서 사진을 자세히 봤어요. 인물들 뒤편 창문에 작은 커튼이 드리워져 있는데, 그 커튼 무늬가 우리 집 창문에서 본 적 없는 패턴이었어요. 그런데 다음 날 아침에 베란다 창문 커튼을 보니까, 정확히 같은 무늬로 바뀌어 있더라고요. 물론 내가 어젯밤에 바꿨을 리는 없었어요. 세탁해서 걸어둘 만한 시간도 아니고, 우리 집에 그런 커튼이 애초에 없었거든요.
그날 밤, 사진을 책장 맨 위에 올려놨는데도 자꾸만 시선이 끌렸어요. 특히 사진 속 우물 옆에 서 있는 남자 한 명이요. 얼굴이 흐릿해서 눈이 어디로 향하는지 분간이 안 되는데, 이상하게도 제가 움직이면 남자의 시선도 따라오는 느낌이었어요. 창문 커튼이 바뀐 걸 생각하면, 그게 그냥 기분 탓이라고 치부하기가 어려웠죠. 저는 잠결에 사진을 다시 꺼내서 뒤를 봤어요.
사진 뒷면에는 글씨가 있었는데, 손글씨라기보다 마치 누군가가 누른 듯한 흔적이었어요. 처음엔 아무것도 안 보이다가 불빛을 비추면 서서히 드러나는 타입이더라고요. 글씨는 “마당에 두지 마라”라고 쓰여 있었고, 그 아래로 날짜처럼 보이는 숫자들이 나열돼 있었어요. 날짜는 우리 집에 이사 왔던 해와 비슷했는데, 이상하게도 계절은 안 맞았어요. 사진 속 사람들은 여름 옷차림처럼 보였거든요.
그 다음 날, 할머니가 마당 쪽으로 나오더니 흙더미가 있던 자리를 다시 봤어요. 그리고는 아무 말 없이 삽을 가져와서 그 자리만 도려냈어요. 그런데 도려낸 흙에서 사진과 똑같은 종이 조각들이 계속 나오는 거예요. 한 장이 아니라 여러 장이요. 모두 흑백인데, 인물들의 위치가 조금씩 달랐고, 우물뚜껑의 상태도 조금씩 달라졌어요. 어떤 사진에서는 우물가에 아무도 없고, 어떤 사진에서는 누군가 손을 뻗은 듯한 동작이 잡혀 있었어요. 다만 얼굴만은 공통으로 흐릿했어요.
저는 그때서야 이해가 됐어요. 사진이 ‘찍힌 것’이 아니라, 마치 어떤 일이 일어났던 자리에 다시 재생되는 것처럼 보였다는 걸요. 흙을 파내면 사진이 더 나오고, 사진을 책장에 두면 집 안의 물건이 조금씩 사진의 상태로 맞춰지는 것 같았어요. 지금 생각하면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그 당시엔 너무 자연스러워서 오히려 더 무서웠어요. 마치 집이 “맞춰졌다”는 걸 확인하고 넘어가는 것처럼요.
마지막으로 할머니는 사진들을 한데 모아 마당 한가운데에 다시 놓아두고는, 아무렇지 않게 물을 한 바가지 부었어요. 순간 바닥의 흙이 얇게 가라앉더니, 사진 가장자리가 마치 숨을 쉬듯 오그라들었어요. 저는 소리라도 지를 뻔했는데, 할머니가 “이제 들어가라”고만 말했거든요. 그날 이후로 저는 마당을 볼 때마다, 눈에 잘 안 들어오는 곳에서 누군가가 기다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아요. 사진 속 우물은 여전히 메워져 있는데도요. 가끔은, 마당의 비가 그친 뒤에 또 흙더미가 생길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고, 그 생각을 하면 이상하게도 집안의 커튼이 먼저 한 번 흔들리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