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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시장에서 만난 친근한 상인과 대화한 시간

2026-06-12 08:14:12 조회 9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동네 시장에서 장 보러 나갔다가, 이상하게 기분이 풀리는 대화를 하고 돌아온 날이 있어요. 비가 살짝 그친 다음이라 바닥은 촉촉했고, 신호등에 맞춰 사람들 발걸음이 느려지는 시간대였거든요. 저는 장바구니를 들고 과일 코너부터 돌려고 했는데, 그때 누군가 제 이름을 부르듯 “어, 왔네”라고 말하는 목소리가 들렸어요.

처음엔 그냥 아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게 동네에서 과일이며 반찬을 도맡아 파는 상인이었어요. 가게 앞에 걸린 작은 전광판에는 오늘 시세가 적혀 있었고, 상인은 제가 지난번에 샀던 귤을 오래 보관하느냐고 물었던 게 기억났는지 말을 꺼내더라고요. 저는 “그때는 금방 먹느라요”라고 대답했는데, 상인은 웃으면서 “그러면 다음엔 덜 익은 걸로 골라줄게. 덜컥딱딱하면 맛이 덜하거든” 하며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갔어요.

그냥 시세나 서비스 얘기 정도겠지 했는데, 상인이 귤을 고르는 손놀림을 보여주면서 제 손을 잠깐 멈추게 하더라고요. 껍질을 한번 살짝 만져보고, 향이 올라오는 방향을 보더니 “이건 집에 가져가서 2~3일만 두면 최고로 맛있어”라고 말했죠. 그 말이 너무 구체적이라, 저는 괜히 “어떻게 그렇게 아세요?” 하고 묻게 됐어요. 상인은 “사람들마다 먹는 타이밍이 다르니까”라고 대답하면서, 자기 손에는 매일 손님들의 표정이 남는다고 했어요.

저도 덩달아 이야기가 붙어서, 요즘은 집에서 뭘 자주 해 먹는지 말해줬어요. 저는 평소에 간단히 해 먹다 보니 채소는 자주 못 사고, 과일도 대충 먹는 편이라고 했거든요. 그랬더니 상인이 “채소는 오래 걸리면 힘들어. 대신 오늘은 작은 걸로 가자. 냉장고에 오래 두지 말고, 하루에 한 번만이라도 손이 가게 만들면 돼”라고 말해주셨어요. 그 말이 되게 현실적이라, 저는 괜히 고개를 끄덕였고요.

그러면서 반찬 코너로 저를 데려가진 않았지만, 필요한 재료를 “이 조합으로 하면 실패가 없다”는 식으로 설명해줬어요. 예를 들면, 상추는 너무 많이 사지 말고 양을 줄이되 소금에 살짝 절였다가 물기만 빼서 먹으면 덜 질긴다든지, 오이도 얇게 썰어두면 씹는 맛이 좋아진다든지요. 저는 “이 정도면 요리 강의 아닌가요?”라고 농담을 했고, 상인은 “강의는 돈 받고 하고, 나는 그냥 동네라서”라고 말했어요. 그 한마디에 괜히 마음이 따뜻해졌어요.

구매는 생각보다 길어졌어요. 저는 원래 과일만 사려고 나왔는데, 상인이 권한 사과랑 방울토마토까지 장바구니에 들어가더니, 옆집에서 방금 만든 젓갈 한 종도 추천받았어요. 처음에는 ‘괜히 더 사는 건가’ 싶었는데, 상인이 계산대 옆에서 작은 메모를 꺼내더라고요. 오늘 날씨가 습해서 금방 물이 생길 수 있으니, 젓갈은 냉장고 맨 안쪽에 넣으라고 적어둔 거였어요. 저는 그 메모를 받으며 “이런 건 어디서 배워요?”라고 또 물었고, 상인은 “손님이 묻는 걸로 배운다니까요”라고 웃었습니다.

이야기가 점점 더 자연스러워지면서, 상인이 요즘 동네 분위기 얘기도 살짝 꺼냈어요. 어떤 분은 예전엔 시장을 자주 왔는데 요즘은 배달로 바뀌었고, 또 어떤 분은 혼자 살아서 장을 줄여 오다 보니 과일을 고르는 기준이 달라졌다는 식이었죠. 저는 그걸 듣고, 시장이 단순히 물건 파는 곳이 아니라 사람들의 생활 패턴이 모이는 장소라는 걸 느꼈어요. 그때 상인이 “배달이 편한 건 맞는데, 여기 오면 하루가 덜 외로워져요”라고 말했는데, 저는 그 문장이 유난히 오래 남았어요.

결국 전 과일과 반찬을 꽤 담아 계산을 하고 나왔는데, 막상 돌아서는 길에 또 한 번 “다음엔 또 언제 오냐”는 질문을 받았어요. 저는 정확한 날짜를 못 박긴 어렵다고 했더니 상인이 “오면 오고, 안 오면 또 오고. 시장은 결국 다시 만나게 돼요”라고 말하더라고요. 저는 “어, 그럼 다음에 뵐게요. 귤은 아마 2~3일 뒤에 제일 맛있겠네요”라고 대답했고, 상인은 “그때 표정이 맛있어야 돼요” 같은 말을 덧붙였죠.

집에 와서도 그 대화가 계속 떠올랐어요. 냉장고에 넣어두는 위치, 과일을 두는 타이밍 같은 사소한 것들까지 신경 쓰게 되더라고요. 보통은 장 보고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날은 시장에서 누군가랑 나눈 짧은 시간 덕분에 하루가 조금 더 정돈된 느낌이었어요. 동네 시장에서 상인 한 분의 말이, 제 생활을 바꿔놓을 만큼 다정할 수 있다는 걸 새삼 알게 됐고요. 아직도 그날의 ‘다음엔 또’라는 뉘앙스가 귀에 걸려서, 다음 장 보러 갈 날을 은근히 기대하게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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