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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룸 베란다에 자꾸 나타나는 검은 깃발

2026-06-12 12:29:11 조회 6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원룸 베란다에 자꾸 나타나는 검은 깃발은, 내가 처음엔 그냥 누가 장난치는 줄 알았어. 그런데 장난치 치고는 위치가 너무 일정했고, 날이 바뀌어도 매번 똑같이 그 자리에 걸려 있었거든. 밤에 불 끄고 잠들려는데, 베란다 쪽 창문 틈으로 바람 소리가 이상하게 새어 들어오면서 검은 천이 살짝 펄럭이는 게 보여. 그때부터였어.

처음 발견한 건 3월 중순쯤이야. 베란다 난간에 까맣게 접힌 깃발 같은 천이 걸려 있었는데, 태극기처럼 막대에 붙어 있는 건 아니고 그냥 얇은 줄에 매달린 형태였어. 크기는 손바닥만 했고, 가까이 가서 확인하려고 창을 열면 바람이 한 번 훅 하고 밀려오면서 줄이 미세하게 흔들렸지. 냄새는 없는데, 이상하게도 젖은 종이 같은 냄새가 아주 옅게 났어.

그래서 다음 날 아침에 바로 떼어 버렸어. 누가 지나가다 떨어뜨린 걸 내가 주워서 내다버리면 되지 뭐, 싶었거든. 그런데 버린 지 반나절도 안 돼서 다시 같은 형태로 나타났어. 이번엔 내가 둔 위치가 아니라, 내가 청소할 때 손이 닿았던 쪽 난간 끝으로 조금 옮겨져 있더라. 마치 “이번엔 여기”라고 알려주는 것처럼.

나는 처음부터 관리사무소에 신고할 생각이 들었는데, 내가 좀 성격이 급한 편이라 먼저 CCTV를 확인했어. 내 방 창문을 정면으로 볼 수 있는 각도는 아니지만, 복도 쪽 동선은 대충이라도 찍히거든. 그런데 이상한 게 있어. 밤 11시에서 새벽 1시 사이에만, 복도 전등이 아주 잠깐씩 깜빡이는 거야. 그 짧은 찰나에 누군가가 내려다보는 듯한 실루엣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어. 영상은 선명하지 않아서 자꾸 헷갈리는데, 그때마다 베란다엔 어김없이 깃발이 걸려 있었어.

그 다음부터 나는 행동을 조심했어. 깃발을 만지면 더 빨리 돌아올 것 같아서, 창문을 열 때도 최대한 조심했고 커튼도 완전히 내리지 않았어. 그런데 신기하게도, 내가 커튼을 반쯤 열어두면 깃발이 더 크게 펄럭였고, 커튼을 닫으면 바람이 잠잠해졌어. 마치 내 시선을 기다리는 것 같아서, 그때부터는 내가 무슨 실험 대상이 된 느낌이 들더라. 그래서 결국엔 커튼을 닫아두고 자봤는데, 문제는 그 다음이야.

어느 날 새벽, 잠결에 들린 소리가 있어. “딱, 딱” 하는 소리인데, 베란다 난간을 손톱으로 두드리는 느낌이더라. 나는 벌떡 일어나 창문 쪽을 봤고, 그때 검은 깃발이 바람 없이도 일정한 간격으로 떨리고 있었어. 이상하게도 떨릴 때마다 창문 유리가 아주 미세하게 서걱거렸는데, 그 소리가 복도 쪽에서 나는 게 아니라 내 방 안에서 울리는 것처럼 느껴졌어. 그리고 그 순간, 깃발 아래로 얇은 줄이 하나 더 생긴 것 같은 착각이 들었어. 실제로 보인 건 아니고, “그럴 것 같다”는 감각이 강했지.

며칠 지나니까 주변 사람들도 이상한 걸 느끼는 것 같더라. 같은 건물 사는 지인이 술 마시다 내 얘길 듣고는, “나도 예전에 봤어. 원룸들 베란다에 까만 천이 걸리는 날이 있더라”라고 하더라고. 그 지인은 “어느 집은 밤에 잠깐 보이고, 어느 집은 아예 안 보인다”면서, 자기 집엔 전혀 없었다고 했어. 그 말을 듣고 나서 더 서늘했어. 내가 특별해서 나타난 건지, 아니면 내가 계속 보고 있기 때문에 더 자주 오는 건지, 그 경계가 흐려졌거든.

결국 나는 한 번 진짜로 결론을 내려보기로 했어. 깃발이 걸리면 그냥 떼어내는 게 아니라, 줄까지 찾아서 흔적을 없애고 싶었거든. 그래서 베란다에 작은 손전등을 켜고, 창문을 열어놓은 채로 깜깜한 시간을 버텼어. 새벽 두 시쯤, 바람이 다시 들어오면서 검은 천이 난간 위로 스르륵 올라오는 게 보였고, 그 순간 손전등 빛을 받아 천이 아주 잠깐 하얗게 보였어. 근데 그 하얀 건 먼지나 얼룩이 아니라, 천 자체가 아니라 “다른 무언가의 표면” 같은 느낌이었어. 길게 빛나진 않았고, 빛이 닿는 방향에서만 잠깐 드러나는 것 같았지.

그리고 다음 날, 나는 그걸 끝낼 생각으로 난간을 물걸레로 닦았어. 물이 마르는 속도까지 유난히 빨랐고, 닦고 나서도 남는 자국이 없는데도 손바닥이 자꾸 차가워지는 느낌이 있었어. 그날 이후로 깃발은 한동안 안 보였어. 나는 안도하려고 했는데, 2주 뒤에 이상한 일이 다시 생겼어. 베란다엔 깃발 대신, 난간 끝에 아주 얇은 검은 실 같은 게 매달려 있더라. 깃발이 사라진 게 아니라, 형식만 바뀐 것 같았어. 그날 밤에도 나는 커튼을 닫았는데, 바람이 없어도 창문 틈으로 누군가 숨 쉬는 것 같은 기척이 들어왔고, 그 실이 아주 미세하게 당겨지는 걸 느꼈어. 지금도 가끔은 그 검은 실이 더 길어질까 봐, 베란다 쪽 창을 열어보는 게 겁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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