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거래한 가전제품에서 나오는 낮은 여성 목소리
중고거래한 가전제품에서 나오는 낮은 여성 목소리, 그게 진짜로 시작된 건 내가 에어프라이어를 받던 날이었어. 택배 기사님이 문 앞에 놓고 가는데 박스가 생각보다 묵직했고, 비닐이 조금 찢어져 있었지. “이상 없겠지” 하고 박스를 풀었는데, 겉은 멀쩡하더라. 그런데 전원을 꽂는 순간, 기계 소리 사이로 아주 낮고 느린 목소리가 스쳤어. 남자 목소리도 아니고, 광고 방송도 아니고, 그냥… 여자처럼 낮게 깔린 말소리.
처음엔 내 귀가 잠깬 줄 알았어. 전자제품에서 잡음이 섞여 나올 때가 있으니까. 그래서 바로 전원을 뺐다가 다시 켰지. 이번엔 더 또렷했어. “받…았…니…” 같은 식으로, 단어가 끊겨서 들렸는데 분명히 사람 목소리 톤이었어. 팬 돌아가는 소리, 히터 켜지는 소리 사이에 얹혀서 들리는데, 기계가 흉내 낸 것처럼 자연스럽지 않고, 오히려 누가 말하다가 멈춘 것 같은 느낌이었어.
판매자한테 바로 연락했어. 사진에서 본 모델이었고, 상태 설명도 괜찮다고 적혀 있었거든. 근데 연락을 확인한 시간은 늦게 뜨고, 답장은 이상하게 짧았어. “고장 아니에요. 소리 들리면 환불하실 때 보내주세요.” 이 말이 너무 건조해서 더 신경이 쓰였어. 나는 그때까지도 “전자기기 잡음이겠지”라는 생각을 붙잡고 있었는데, 그 목소리가 계속 반복된다는 걸 알게 되면서부터는 핸드폰 화면이 더 어두워 보였어.
며칠 뒤부터 목소리가 특정 상황에서만 들렸어. 예를 들면, 사용 설명서처럼 버튼을 누를 때나, 자동 조리 모드로 들어갈 때. 처음엔 “받았니” 정도였는데 점점 문장처럼 이어졌거든. “돌려…줘” “꺼…줘” 같은 단어가 들리는 것 같았어. 근데 중요한 건, 스피커에서 나오는 방식이 아니라 기계 내부 어딘가에서 진동으로 울리는 느낌이었어. 귀에 대고 듣는 게 아니라, 그냥 방 안 공기를 타고 들어오는 느낌. 그래서 TV 소리도 끄고 조용히 해봐도 사라지지 않았어.
사실 난 중고거래를 자주 해. 미개봉 냉장고 같은 건 아니더라도, 생활가전은 성능만 맞으면 괜찮다고 생각했거든. 그래서 더 이상했어. 구매 페이지에는 “소리 조금 있습니다”라고 딱 한 줄만 있었거든. 근데 그게 고장 소리 수준이 아니었어. 목소리는 계속 바뀌었어. 어떤 날은 조용히 한 글자처럼 들리고, 어떤 날은 가까이서 속삭이는 것처럼 번져. 그때마다 내 등에 소름이 먼저 올라왔고, 나는 자꾸 확인하고 싶어져서 결국 영상으로 녹음까지 했어.
녹음본을 들어보면, 내가 들었던 목소리가 절반은 남고 절반은 사라졌어. 기계음만 또렷하고, 목소리는 잡음처럼 뭉개져서 잘 안 들렸거든. 그래도 운 좋게 몇 초 구간은 분명하게 잡혔는데, 거기서 들린 게 “그 사람…” 이라는 말이었어. 누군가를 지칭하는 것 같았고, 끝이 잘려서 의미가 완전히 이어지진 않았지만, 이상하게 내 머리는 그 문장 뒤를 상상하게 됐어. 마치 누가 “그 사람” 다음을 말하려다 멈춘 것 같은 공백.
이상한 건, 목소리가 에어프라이어에서만 들린 게 아니라는 거야. 처음엔 내 방에서만 들렸는데, 어느 날은 거실에서도 비슷한 저음이 들렸어. 나는 다른 가전은 건드리지 않았는데, 전기 콘센트 주변에서 “으음…” 하며 낮게 울리는 느낌이었지. 그리고 다시 에어프라이어로 다가가면 그 목소리가 또렷해졌어. 마치 본체를 잡았을 때만 통신이 되는 것처럼. 그때부터는 환불을 넘어 “이 물건이 왜 이런 상태로 넘어왔지”를 따지게 됐어.
판매자에게 재차 물어봤더니 이번엔 말투가 바뀌더라. “그건 제가 받은 그대로예요. 귀찮게 하진 말아주세요.” 짧은 답장 후에 차단된 것처럼 연락이 끊겼고, 거래는 이미 완료 처리였어. 나는 택배 포장부터 다시 뜯어보며 확인했는데, 이상하게도 포장지 아래쪽에 아주 희미한 종이조각이 붙어 있었어. 누가 급히 써서 붙인 것처럼 “전원 오래” “문 닫기” 같은 글씨였는데, 잉크가 번져서 정확하진 않았어. 근데 그 종이를 보는 순간, 목소리가 내 귀 옆에서 “닫…아” 하고 한 번 크게 울린 것 같아.
그 이후로 나는 그 가전으로 요리를 거의 안 했어. 전원을 꽂아두면 목소리가 조금씩 올라오는 게 느껴져서, 차라리 콘센트를 뽑고 벽에서 떨어져 있으려고 했지. 그래도 가끔은 자꾸 생각이 나. 분명 누군가가 이걸 사용하던 사람일 텐데, 왜 하필 내 집에 와서 말을 남겼을까. 밤에 잠들기 전에 들리는 낮은 여성 목소리가, 기계 소리와 섞여서 마치 내 이름을 잘못 부르는 것처럼 느껴졌거든. “받았니”에서 시작해서 “돌려줘”로 끝나는 말이 반복되는데, 끝내는 문장이 완성되지 않는 공백이 계속 남아. 그 공백이, 내가 아직 답을 하지 못한 것처럼 느껴져서… 오늘도 가끔 전원을 켜는 손이 멈칫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