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기사님이 내 이름 말고 ‘호수’만 불렀던 날
배달기사님이 엘리베이터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이상하게도 내 이름을 부르지 않았어요. “호수!” 딱 한 번, 마치 저를 찾는 게 아니라 아파트 어딘가의 호수를 호출하듯이요. 저는 아무 말도 못 하고 현관 쪽으로 걸어갔고, 기사님은 봉지를 들고 있는데도 표정이 너무 무덤덤해서 더 찜찜했어요. 그날은 비 오는 날이었고, 복도 조명이 조금 어둡게 깜빡이던 날이라 제 손끝이 먼저 불안해졌습니다.
“주문하신 분, 맞죠?” 기사님이 물었지만 눈은 제가 아니라 현관 앞에 붙은 작은 호수 표시에 가 있었어요. 저는 “네, 302호인데요”라고 대답하려다가, 제 입에서 제 이름이 나올 틈이 없었어요. 평소엔 배달 올 때마다 기사님들이 꼭 한 번은 저 성을 부르거나, 최소한 “OOO님 맞으세요?” 같은 확인을 하거든요. 그런데 그날은 정말로 ‘호수’만 불렀습니다. 주문 내역에도 이름이 분명히 적혀 있는데요.
봉지를 받으면서 저는 조심스럽게 “기사님, 제 이름은 아세요?” 하고 물어봤어요. 기사님은 잠깐 멈칫하더니 “아뇨, 저는 그냥 호출한 대로요”라고 했습니다. 이어서 “가끔 고객님 이름을 안 쓰는 분들도 있어서요. 앱에서 주소만 떠요” 같은 말을 했는데, 그 말이 너무 매끈하게 나와서 오히려 더 이상했어요. 저는 앱에서 주소 말고 이름도 분명히 보이는데, 기사님은 그걸 보지 못하는 걸까요, 아니면 일부러 모르는 척하는 걸까요.
집에 들어와서 앱 확인을 했어요. 주문 내역에는 제 이름이 그대로 떠 있었고, 배송지에는 302호가 붙어 있었죠. 그런데 ‘배달 완료’ 알림이 뜬 시각을 보면, 기사님이 저희 건물에 도착한 시간과 엘리베이터를 탄 시간 사이에 딱 30초 정도 공백이 있었습니다. 그 짧은 틈에 기사님이 어디를 보고, 어떻게 확인했는지 상상하니까 등골이 서늘하더라고요. 저는 그날 밤, 배달기사님이 남긴 “호수”라는 말만 계속 되뇌었습니다.
다음 날, 저는 혹시 오배송인가 싶어서 고객센터에 문의를 넣었어요. “기사님이 제 이름 대신 호수만 불렀는데, 데이터가 이상한 건가요?”라고 물었죠. 상담사는 “고객님 주문 정보는 정상입니다. 기사님이 호출할 때 이름이 아닌 주소 기반으로 읽히는 경우가 있을 수 있어요”라고 답했어요. 그런데 그 답변이 너무 뭉뚱그려서, 저는 더 캐묻지 못했어요. 상담사는 친절했지만, 그날 제 마음속 찝찝함은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일주일쯤 지나서, 또 같은 앱으로 배달을 시켰습니다. 그때도 기사님이 오셨는데, 이번엔 당연히 제 이름을 부르더라고요. “OOO님, 맞으세요?” 하고요. 저는 순간 안심하면서도, 동시에 묘하게 비교가 됐습니다. 왜 첫날만 ‘호수’였지? 저는 주문할 때마다 똑같이 이름을 적어놨는데도요. 그 짧은 차이가 제 머릿속에서 자꾸만 한 방향으로만 굴러갔어요. ‘첫날 그 기사님이 뭔가를 잘못 본 건가, 아니면 일부러 그렇게 한 건가’라는 생각이요.
그날 밤, 전 이상하게도 현관 앞 택배함이 신경 쓰였어요. 평소엔 잘 안 보는데, 저는 우산을 들고 나가서 택배함 안을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거기엔 제 이름으로 온 적 없는 종이 하나가 끼어 있었어요. 정확히 말하면 종이라기보단 작은 안내 메모처럼 접혀 있었고, 글씨는 누가 봐도 손글씨였는데, 내용은 반쯤만 보였어요. ‘호수’라는 단어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고, 그 아래에는 숫자가 하나 적혀 있었는데 선이 너무 진해서, 마치 급하게 눌러 쓴 것처럼 보였습니다.
저는 그 메모를 읽는 순간, 방 안의 공기가 달라진 느낌을 받았어요. 혹시 누가 장난을 친 걸까, 아니면 이전에 누군가 잘못 넣고 가져가지 못한 걸까 같은 생각이 들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종이는 택배함 깊숙한 곳에 있어서 누군가 일부러 밀어 넣은 것 같았거든요. 그리고 더 이상한 건, 그 메모가 뜯겨 있지 않고 아주 깔끔하게 접혀 있었다는 점이었어요. 누가 급하게 넣었다고 보기엔 너무 정돈되어 있었고, 누가 일부러 표시하려고 했다고 보기엔 너무 조심스러웠습니다.
다음날 다시 배달이 오기 전까지, 저는 앱 설정을 전부 점검했어요. 이름이 공개되는 방식, 주문 확인 문구, 주소 표기 방식까지 전부요. 그런데도 이상한 건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날 이후로는 기사님들이 모두 제 이름을 불렀고, 별다른 사고도 없었죠. 그래서 시간이 지나며 저는 그날 일을 ‘그냥 피곤해서 들린 착각일지도’라고 스스로 달랬습니다. 그런데도요, 이상하게도 배달기사님의 목소리는 잊히지 않았어요. “호수.” 그 한 단어가 자꾸만 제 귀 안쪽을 긁는 것처럼 남아 있었거든요.
오늘도 가끔, 누가 초인종을 누를 때면 저는 먼저 제 이름이 아니라 ‘우리 집 호수’부터 떠올립니다. 그날 비 오던 복도 조명이 깜빡이던 순간, 기사님이 저를 보지 않고 표지판을 보던 눈빛, 그리고 택배함 안에 남아 있던 종이의 접힌 모서리까지요. 아무 일도 더 일어나지 않았는데도, 이상하게 마음 한구석은 아직도 그날의 질문을 품고 있습니다. 왜 하필 제 이름이 아니라, 호수만 불렀을까요. 그게 실수였는지, 아니면 누군가가 저를 ‘사람’이 아니라 ‘위치’로만 기억하고 있었던 건지… 저는 아직도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