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 거울에 비친 나는 늘 반 걸음 늦었다
아파트 엘리베이터 거울에 비친 나는 늘 반 걸음 늦었다. 처음엔 장난처럼 느껴졌어. 문이 닫히는 순간, 나도 모르게 한 박자 늦게 눈을 깜빡인 것 같았고, 손을 들고 버튼을 누르면 내 손이 “조금 늦게” 거울 속에서 따라오는 거야. 솔직히 그 정도는 피곤하면 생기는 착시라고 넘겼지. 그런데 어느 날부터 그게 단순한 착시가 아니라, 내가 아니라 ‘거울 속의 나’가 먼저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퇴근 시간에만 유독 심했어. 엘리베이터에 타면 늘 같은 사람들이 같이 타는데, 나만 유독 거울 속에서 반 박자 늦게 보였거든. 나는 휴대폰을 보고 있었고, 거울 속 나는 폰을 내리는 타이밍이 빠르더라. 내가 “뭐지?” 하고 고개를 들면, 거울 속 나는 이미 나를 뚫어지게 보고 있는 것처럼 굳어 있었다. 처음엔 방향 감각이 꼬인 건가 싶어 거울을 자세히 보려 했는데, 얼굴 표정이 바뀌는 게 아니라 표정이 ‘먼저’ 고정되는 느낌이라 소름이 돋았다.
그날 이후로 난 엘리베이터 타는 걸 조금씩 피했어. 계단을 이용하거나, 일부러 한 층 더 올라간 뒤 돌아서 올라가기도 했고. 하지만 결국 동선이 겹치면 다시 엘리베이터를 탈 수밖에 없잖아. 문제는 매번 거울 속 내가 한 박자 느리게 따라온다는 점이 아니라, 그 ‘반 걸음’이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는 거였어. 며칠 뒤에는 버튼을 누르기도 전에 거울 속 내 손가락이 이미 눌려 있는 것처럼 보였고, 문이 닫힐 때쯤이면 거울 속 나는 고개를 약간 돌려서 밖을 보는 듯한 자세를 하고 있더라.
난 한 번 확인해보고 싶어서 일부러 일부러 행동을 바꿔봤어. 예를 들어, 문이 닫히기 직전에 한 손을 등 뒤로 숨기고 반대 손으로 얼굴을 만지듯이 행동했는데, 거울 속 나는 그 행동을 내 타이밍보다 더 정확하게 “미리” 맞췄다. 마치 거울 속 나는 내가 하려는 걸 보고 먼저 준비하고 있는 것 같았어. 그리고 그 준비가 끝나면, 내 몸이 뒤늦게 따라오는 느낌이 들었지. 거울 앞에서 ‘내가 따라가고 있다’고 생각하면 더 이상해져서, 결국 나는 거울을 정면으로 보지 않으려고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고개를 숙이는 순간부터 다른 이상함이 시작됐어. 거울 속의 나는 여전히 정면을 보고 있는데, 내가 고개를 숙이면 거울 속 나는 오히려 더 또렷하게 눈을 마주치는 느낌이었거든. 화면을 꺼버린 스마트폰처럼 시선이 끈적하게 고정되는 느낌. 나는 숨을 삼키고 천천히 고개를 돌려 거울을 봤는데, 거울 속 내 눈빛이 내 눈빛보다 더 차분했어. 기분 탓이라고 하기엔 너무 반복적이었고, 무엇보다 “반 걸음 늦는다”는 게 속도 문제가 아니라 내가 늦어지는 방향이 정해져 있다는 느낌이 강해졌어.
어느 날 밤엔 엘리베이터가 잠깐 멈춘 적이 있어. 층수를 바꾸는 도중에 아주 짧게, ‘딱’ 하고 정지하는 그 느낌. 그 순간 거울도 함께 멈춘 것처럼 보였는데, 거울 속 내 모습만 살짝 더 앞으로 다가온 것 같았어. 물론 실제로 엘리베이터가 움직이지 않았던 건 맞는데, 거울 속 내 비율이 왜곡되듯 커지는 타이밍이 있었거든. 문이 다시 열리고 나와서 확인하려고 했지만, 거울 표면은 평소처럼 아무 문제도 없었고, 난 손바닥을 대 봤다가 급히 물러섰어. 손끝에서 차가움이 전해졌는데, 그 차가움이 ‘유리’에서 오는 게 아니라, 내 손을 ‘붙잡는’ 느낌 같았거든.
그 뒤로 나는 엘리베이터 거울을 완전히 피하는 방법을 찾았어. 벽 쪽을 보고 서서 거울 반사 각도가 최소가 되게 몸을 돌렸지. 그런데도 문제는 계속됐어. 거울이 보이지 않는 각도에서도, 거울 속 내 움직임이 ‘먼저’ 일어나는 순간이 들켰다. 예를 들면, 문이 닫힐 때 등 뒤에서 “딱” 하는 느낌이 들면서 거울 속 나는 고개를 끄덕이듯 움직이고, 그 다음에 내 몸이 똑같이 따라했어. 난 그게 눈속임이라고 생각하려 했는데, 스스로도 모르게 따라 하는 타이밍을 계속 놓치고 있었어. 마치 내 몸이 ‘거울 속 순서’를 따라가고 있다는 걸 인정하기 싫어서, 계속 다른 순서를 찾고 있었던 거지.
며칠 후엔 엘리베이터에 혼자 타게 된 날이 있었어. 그때가 제일 무서웠다. 사람이 없으면 착시도 덜하다고들 하잖아? 근데 혼자일 때 오히려 더 선명했어. 문이 닫힐 때, 난 가만히 서 있었고 아무 행동도 안 했는데 거울 속 나는 먼저 숨을 들이쉬는 것처럼 가슴이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어. 난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고, 내 숨도 멈춘 건 아닌데, 거울 속 나의 호흡이 먼저 리듬을 잡는 느낌이었어. 그리고 정지된 듯한 시간 끝에, 내 눈꺼풀이 늦게 내려앉았어. 정말로 ‘반 걸음’이라는 말이 맞을 정도로, 내 신체 리액션이 거울 속보다 뒤늦게 따라오더라.
그날 밤, 집에 와서도 계속 엘리베이터 거울을 떠올렸어. 거울 속 내 모습이 왜 먼저인지, 왜 나는 늦어지는지 생각이 멈추지 않았거든. 그런데 더 찝찝한 건, 내가 늦어질수록 거울 속 내 표정이 점점 더 편안해진다는 거였어. 마치 기다리던 사람이 마침내 내 자리를 완성하는 것처럼. 다음 날 아침, 엘리베이터 거울을 일부러 힐끗 보지 않으려 했는데도 눈이 먼저 끌리더라. 거울 속 나는 분명히 나와 같은 자세로 서 있었고, 반 걸음 늦지 않았어. 대신 아주 작은 차이를 알아차렸지. 거울 속 내 눈이 나보다 먼저, 내가 도망치려는 마음을 보고 미소 짓고 있었다는 걸.
그날 이후로 나는 엘리베이터를 계단으로만 오르려고 해. 근데도 가끔, 계단 중간쯤에서 문득 생각이 들어. 혹시 거울 속 나는 엘리베이터에만 있는 게 아니라, 내가 ‘반 걸음 늦는’ 그 타이밍 자체에 붙어 있는 건 아닐까. 그리고 언젠가, 계단에서도 내 뒤꿈치가 먼저 따라오고, 내 몸은 뒤늦게 도착하게 될까 봐 무섭다. 엘리베이터 거울 속의 나는 여전히 똑같은 자리에 서 있을까, 아니면… 내 쪽으로 한 걸음 더 옮겨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