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로비에서 나만 출입증이 인식이 안 되는 날들
어느 날부터였는지 잘 모르겠는데, 회사 로비에서 딱 나만 출입증이 인식이 안 되는 날이 있었다. 아침에 게이트 앞에 섰을 때는 그냥 “오늘 카드 컨디션이 별로인가?” 싶어서 한 번 더 찍었다. 그런데 두 번째, 세 번째에도 빨간불이 뜨고, 직원이 “혹시 분실하신 거 아니세요?” 하고 멀뚱히 쳐다보는 표정이 너무 자연스러웠다. 그날은 결국 경비실로 가서 신분증을 확인하고 들어갔는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처음엔 정말 별일 아닌 줄 알았다. 출입증은 종종 비닐 케이스에 넣어 다니는데, 그날은 주머니에서 구겼던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다음날도 똑같이 찍어봤다. 결과는 또 빨간불. 신기하게도 내 출근 시간대엔 로비가 평소처럼 붐볐고, 다른 사람들 출입증은 정상적으로 인식됐다. 나는 게이트 앞에서 계속 화면만 쳐다보다가, 결국 경비실에 가서 “어제도 그랬다”고 말했어야 했다.
경비 아저씨가 출입 시스템을 한참 들여다보더니, 웃지도 않고 “입력은 맞는데, 인식이 안 잡히는 날이 가끔 있어요”라고 했다. 그 말이 좀 이상했어. 가끔이라는 표현이 마치 고장 설명이 아니라, 누군가의 행동을 완곡하게 포장한 느낌처럼 들렸다. 그리고는 내 출입증을 반납하듯이 내밀면서 “잠깐만 저희 쪽에서 테스트해볼게요”라고 했다. 나는 거절할 틈도 없이 출입증을 넘겼고, 잠시 뒤에 다시 받을 수 있었다. 그때 손에 쥔 출입증은 멀쩡했는데, 이상하게도 손바닥이 서늘해지는 느낌이 있었다.
그 뒤로 패턴이 생겼다. 비가 오거나 날씨가 꿀렁거리는 날에 더 자주 실패했고, 실패한 날은 로비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먼저 들렸다. 정확히 “○○님” 하고 누가 부르는 건데, 소리의 방향이 늘 게이트가 아니라 로비 천장 쪽, 스피커 같은 데서 났다. 나는 그게 착각인가 싶어서 걸음을 늦췄다. 그런데 누가 지나가다 “아, 저분 찾으시는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면, 그게 내 차례였다. 게이트 앞에서 같은 빨간불, 같은 멈칫, 같은 확인 절차.
문제는 그 다음에 생겼다. 출입증이 인식 안 될 뿐 아니라,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를 때도 이상하게 반응이 없었다. 내가 1층, 3층, 7층 같은 버튼을 눌러도 한 번은 무응답이 뜨고, 그제야 다시 눌러야 작동했다. 분명 회사 시스템인데, 마치 내가 “권한”을 가진 사람으로 취급되는 게 아니라 “잠깐 확인이 필요한 사람”으로만 저장되는 느낌이었다. 출근한 뒤에도 메신저가 이상했다. 누군가가 내 메시지를 보내면, 나는 답장을 했는데도 상대가 “방금 전송이 안 됐대요”라고 말하는 일이 잦아졌다.
그래서 나는 해결책을 찾으려고 행동했다. 출입증을 새로 발급받으려 했고, 휴대폰에 있는 사원증 기능도 같이 써봤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날은 휴대폰으로도 인식이 안 됐다. “유심 문제?” 같은 말이 나왔지만, 다른 사람들은 다 잘 됐고 내 것만 계속 실패했다. 그제야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뭔가를 잃어버린 게 아니라, 시스템이 나를 “사람”이 아니라 “오류”로 분류하는 날이 있는 거구나, 하고.
어느 주엔 연달아 세 번 실패했다. 실패한 날마다 로비에 들어서는 순간, 아주 조용한데 귀에 잡히는 종류의 소리—정확히는 종이 마찰 같은 소리—가 났다. 그리고 게이트가 빨간불을 띄우기 직전, 내 출입증의 화면이 아주 잠깐 깜빡였다. 나는 본 적 없는데, 누군가가 내 출입증을 먼저 만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경비실에 갔을 때도 아저씨의 표정이 달랐다. “오늘도요?”라고 말하는데, 그 말투가 “또”가 아니라 “이미 알고 있었는데 확인만 하는” 쪽에 가까웠다.
그날 퇴근길에 나는 일부러 로비를 천천히 걸어봤다. 엘리베이터 쪽으로 가는 동선이 아니라, 게이트 옆 안내판 뒤를 스치듯 지나갔다. 그리고 그 순간, 안내판 유리 반사에 내 얼굴이 보이는데… 이상하게도 내 뒤로 한 사람이 더 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 처음엔 그림자라고 생각했는데, 그림자는 내 실루엣과 반대로 움직여야 하거든. 나는 뒤를 돌아봤지만 아무도 없었다. 대신 게이트 쪽에서 “삑” 하고 인식 성공 소리가 났다. 내 출입증이 아니라, 누군가의 출입증이.
며칠 뒤, 그 현상이 멈춘 날이 있었다. 출근하면서도 나는 더듬거리듯 주머니를 만졌고, 게이트 앞에서 평소처럼 찍었다. 이번엔 초록불.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날은 로비가 평소보다 덜 시끄러웠다. 사람들의 대화가 멀게 들리고, 스피커에서 내 이름이 불리는 소리도 없었다. 나는 안도하면서도, 동시에 뭔가를 놓친 느낌이 들었다. 초록불이 들어온 건 내가 정상으로 돌아온 게 아니라, 누군가가 내 자리를 다른 누군가에게 넘겨준 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지금도 가끔 그날들을 떠올리면 손바닥이 먼저 시리다. 회사 로비는 늘 똑같이 밝고, 게이트는 늘 똑같이 작동하는데, 그 “빨간 날들”이 사라진 이유만큼은 아직도 확실히 설명이 안 된다. 내 출입증이 고장 난 적도 없고, 새로 발급해도 소용없었던 걸 생각하면 더 그렇다. 언젠가 다시 실패할지도 모르지만, 그때는 빨간불보다 먼저 내 이름이 스피커에서 울릴 것 같은 예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