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채혈하고 나서도 채혈대가 계속 움직였다
병원에서 채혈하고 나서도 채혈대가 계속 움직였다. 처음엔 내가 너무 예민한가 싶었는데, 그날 이후로 가끔씩 생각이 나면 손끝이 저려올 정도로 이상하게 남아 있어.
사건은 평범하게 시작됐어. 감기 기운이 계속 가서 피검사를 하러 갔고, 대기실에서 이름 부를 때까지도 별일 없었거든. 간호사 선생님이 “채혈하고 나면 조금만 눌러주세요”라고 말하면서 팔을 소독하더라. 나는 그 말대로 조용히 팔을 내밀었고, 주사 들어간 순간만큼은 보통이었어.
근데 채혈이 끝났다고 느끼는 타이밍이 달랐어. 보통은 바늘을 빼고 솜을 대고 끝인데, 그날은 바늘을 뺀 뒤에도 뭔가가 계속 돌아가는 소리 같은 게 들렸거든. “혹시 기계 소리인가?” 싶어서 고개를 들었는데, 내 팔 위에 달린 채혈대가 아주 미세하게, 하지만 분명히 움직이고 있었어. 손으로 누르는 것도 아니고, 누가 만지는 것도 아니었는데 그냥 천천히 흔들렸달까.
간호사는 내가 보나 싶었는지 아무 말 없이 솜을 더 얹고 테이프로 고정했어. 그래서 나는 “아, 혹시 테이프 붙이는 동안 미끄러졌나” 하고 스스로 납득하려 했지. 그런데 테이프를 붙이는 동작이 끝났고 간호사가 손을 뗀 다음에도 움직임이 남아 있었어. 그 흔들림이 팔을 타고 내려오는 느낌이 아니라, 채혈대 자체가 따로 살아 있는 것처럼 보였거든.
순간 웃음이 나올 만큼 어이없었는데, 그때 간호사가 내게 “어디가 불편하세요?”라고 물었어. 나는 “아니요… 그냥 이상하게 계속 움직이네요”라고 말했어. 그러자 간호사가 내 팔을 한번 더 확인하더니 “아, 이게 자동으로 잡아주는 타입인데요. 잠깐만요”라고 하면서 장치를 손으로 정리하더라.
근데 정리하는 손이 닿자마자, 움직이던 게 멈추는 게 아니라 더 또렷해졌어. 마치 누군가가 반대로 건드린 것처럼, 채혈대가 한 번 더 크게 흔들렸고 나는 그대로 몸이 굳어버렸어. 간호사는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며 다시 고정했고, 그제야 움직임이 멎었지. 하지만 멎은 순간에도 내 머릿속엔 ‘방금 전 그 동작이 왜 더 커졌지?’만 남아 있었어.
검사 결과를 받으러 갔다가도 이상한 기억이 되살아났어. 같은 병원, 같은 채혈실인데도 유독 그날만 조명이 다르게 느껴졌거든. 직원들이 바쁘게 움직이는데, 이상하게 채혈실 쪽 벽면에 걸린 안내문이 눈에 들어오더라. ‘채혈 후 압박은 5~10분’이라고 적혀 있었고, 그 밑에 작은 글씨로 ‘장치 착용 중 이동 주의’ 같은 문장이 있었어. 그 문장을 보는데 가슴이 서늘했어. 나는 그날 분명히 이동한 적이 없었거든. 그냥 가만히 앉아 있었는데 말이야.
집에 돌아와도 팔이 아픈 건 평소처럼 멍 드는 정도였지만, 손목 쪽 근육이 이상하게 뻣뻣했어. 샤워하면서 거울을 봤는데, 멍이 든 모양이 내가 평소에 겪던 채혈 자국이랑 좀 달랐어. 길쭉하게 눌린 흔적이 옆으로 이어져 있었고, 그 모양이 마치 장치가 미세하게 미끄러졌을 때 생기는 자국처럼 보였거든. 다시 말하지만, 나는 그때 팔을 움직이지 않았다고 믿고 있어.
며칠 뒤 밤에, 그날의 장면이 꿈처럼 떠올랐어. 누워 있는데도 팔 위에 무언가가 달린 느낌이 들면서, 실제로는 아무것도 없는데도 채혈대가 돌아가는 감각이 손끝에서 느껴졌지. 그때 내가 느낀 건 공포라기보다, 누가 내 팔을 ‘그대로’ 놓지 않은 채로 정리하려는 태도 같은 거였어. 그래서 더 이상했어. 내가 아픈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까지 ‘정리’가 필요했을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혹시 장치의 미세 작동이나 고정 상태 문제였을지도 몰라.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날의 움직임은 기계의 진동처럼 무작위가 아니었어. 누가 타이밍을 맞추듯 멈췄다가, 내가 말하자마자 다시 커졌던 것 같아. 그래서 가끔 병원에서 채혈할 일이 생기면, 솜을 붙이고 끝나기 직전의 그 잠깐 동안만은 눈을 피하지 못하겠어. 팔 위에 뭔가가 ‘끝났는데도’ 남아 있는 느낌이 들 때가 있거든. 그게 정말 착각인지, 아니면 내 기억이 그냥 이상하게 고정된 건지… 아직도 결론이 안 나서, 그날의 흔들림이 조용히 따라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