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 대행 기사님이 ‘이미 드린 번호’로 전화 오더라
배달 대행 기사님이 ‘이미 드린 번호’로 전화 오더라. 그날도 평소처럼 음식 주문하고, 가게에서 배정된 기사님이 오실 거라고 생각했는데, 전화가 딱 한 번 울리더니 남자 목소리가 “아, 그 번호요. 이미 드린 번호로 받으시면 됩니다”라고 말하는 거야. 난 분명 주문할 때 내 번호 그대로 적었고, 별도로 수정한 적도 없는데도 말이지.
처음엔 단순 착오겠지 싶어서 “네? 어떤 번호요?” 하고 되물었어. 그랬더니 기사님이 조금 짜증 섞인 톤으로 “아니요, 이미 드렸잖아요. 앱에 뜨는 번호 말고요. 제가 드린 그 번호로 전화를 받으셔야…”라고 하더라. 순간 등줄기가 서늘했어. 배달 기사님이 내 번호 말고 다른 번호를 ‘이미’ 줬다는 뉘앙스였거든.
나는 주문 내역을 확인했어. 앱에는 내 전화번호가 정확히 떠 있었고, 배달 관련해서 메시지로 남긴 것도 없었어. 그래서 “저는 방금 주문한 거고, 기사님이 전화로 번호를 드린 적은 없는데요”라고 했더니, 그 기사님은 한 박자 쉬고 “아뇨, 방금 드렸습니다. 다시 확인해보세요”라고 말했어. 통화 중인데도 불구하고, 내 폰 화면에는 뭐가 새로 뜨지 않았어.
그래서 혹시 스팸처럼 다른 번호가 저장돼 있나 하고 연락처 목록을 훑었는데, 거기엔 없었어. 그런데 이상하게도, 통화 연결음이 끝나고 나서 바로 알림이 하나 떴더라. 배달 앱에서 온 문자 같은 건 아니고, 통신사 알림 비슷한 형태였는데 내용은 “번호 변경 안내” 같은 식으로 짧게만 보였어. 누가 번호를 바꿀 수 있나 싶어서, 나도 모르게 손이 벌벌 떨리더라.
그때 갑자기 현관 쪽에서 문이 긁히는 소리가 아주 약하게 났어. 나는 이미 소파에 앉아 있었고, 창문은 닫혀 있었는데도 그 소리가 들리니까 기분이 확 꺼졌지. “배달 왔냐” 하고 목소리를 냈는데 대답은 안 들리고, 대신 계단 쪽에서 또 다른 사람 말소리 같은 게 아주 멀리서 섞여 들렸어. 이게 내 착각일 수도 있는데, 그 타이밍이 너무 묘했어.
나는 다시 앱으로 들어가서 기사님 상태를 봤어. ‘배달 완료’가 아니라 ‘접수 후 이동 중’으로 표시돼 있었어. 근데 화면 상단에는 “기사님 연락 시도 1회” 같은 문구가 떠 있었고, 방금 통화한 기록과 비슷하게 보였어. 그런데 통화 기록에는 내가 방금 받은 번호만 있었지, 그 번호가 “이미 드린 번호”라는 의미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는 없었어. 앱은 분명 내게 말해주고 싶은데, 정작 설명은 비어 있는 느낌이랄까.
기사님에게 다시 전화하자마자, 이번엔 자동응답처럼 짧게 끊겼어. 그리고 메시지 알림이 하나 왔는데, 내용은 단 두 줄이었어. “받으실 수 있죠” “이미 드린 번호로 연락 주세요”. 누가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너무 문장 자체가 사람 감정 없이 딱딱했어. 나는 손가락이 굳어서 입력을 못 하겠더라. 그냥 “무슨 번호요?”라고 쓰는 것도 마음이 안 맞아서, 대신 현관 인터폰을 확인했지.
인터폰 화면에는 아무도 안 보이는데, 바깥 스피커 쪽에서는 아주 낮게 숨 쉬는 소리 같은 게 들렸어. 그리고 바로 옆에서 내 휴대폰이 또 진동했어. 이번엔 배달 앱이 아니라, 낯선 앱 알림이었고 “인증 요청” 같은 문구가 뜨더라. 로그인은 내가 하고 있던 게 없는데도 말이야. 나는 그 알림을 보고도 바로 누르지 못했어. 뭔가를 누르면, 그들이 원하는 다음 단계로 넘어갈 것 같은 느낌이었거든.
결국 나는 경찰이랑 통신사, 그리고 배달 앱 고객센터에 순서대로 신고를 걸었어. 다행히 큰 피해로 이어지기 전 단계에서 멈춘 건지, 계정 쪽에서 비정상 로그인은 바로 차단됐다는 답이 왔어. 그런데 웃기게도, 기사님 번호는 계속 “부재중”만 뜨고, 통화는 연결조차 되지 않았어. 내가 받은 그 목소리, 그 말투는 분명히 사람 같았는데, 화면 속에서는 현실이 없는 것처럼 사라졌다는 느낌이 들었어.
배달이 언제 도착했는지, 음식이 왔는지 같은 건 솔직히 중요하지 않았어. 문제는 그가 말한 “이미 드린 번호”가 어디서 생긴 건지, 그리고 왜 내 폰이 그 타이밍에만 반응했는지였거든. 지금도 가끔 생각하면, 그 통화 끝나고 현관 쪽 긁히던 소리가 제일 먼저 떠올라. 누군가는 내 번호를 알고 있었던 게 아니라, 내 마음이 먼저 흔들리게 만들려고 ‘이미 알고 있는 척’ 했던 걸지도 몰라… 그날 이후로는 아무리 바쁜 날이어도 전화는 받기 전에 한 번 더 확인하게 됐고, 그 습관이 아직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