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기사님이 내 뒷좌석을 힐끗 보면서 말을 멈췄다
택시 기사님이 내 뒷좌석을 힐끗 보면서 말을 멈췄다. 그날 밤, 비가 막 그친 골목에서 나는 늦게 약속 장소에 도착해야 해서 택시에 바로 올라탔다. 기사님은 라디오를 듣다가 내 표정만 보고는 “네, 알겠습니다” 같은 말도 없이 핸들을 쥔 채 조용히 출발했다.
처음엔 내가 피곤해서 그랬나 싶었는데, 차가 가속할 때마다 기사님 시선이 자꾸 백미러 아래, 그러니까 내 뒷좌석 쪽으로 옮겨갔다. 손님이 타면 보통 짐이 어디 있는지 확인하잖아? 근데 그 힐끗은 확인하는 느낌이 아니라, 딱 한 번 보고는 다시 입을 다무는 그런 타이밍이었다. 나는 “기사님, 어디까지 갈게요”라고 말도 먼저 꺼냈고, 기사님은 “네” 한 마디만 했다.
나는 뒷좌석에 별다른 게 없었다. 가방 하나, 얇은 쇼핑백 하나, 그리고 물병. 솔직히 택시 타자마자 가방을 바닥에 내리고 정리했으니까 뭔가 튀어나와 있을 리도 없었다. 그런데도 기사님은 신호에서 멈출 때마다, 브레이크를 밟는 동시에 눈만 살짝 아래로 내렸다. 그 순간마다 라디오 볼륨이 미세하게 꺼진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분위기가 달라졌다.
중간쯤 도로가 막히자 기사님이 잠깐 한숨을 쉬었다. “밤길이라… 조심하세요.” 이상하게 말끝이 흐려졌다. 내가 “무슨 일이라도 있어요?” 하고 묻자 기사님은 손을 크게 젓지 않고, 그냥 정면을 보면서 “아뇨. 그냥…” 하고 말았다. 그리고는 그 다음부터는 내 질문을 들은 척도 없이, 계속 차선을 따라가면서도 뒷좌석 쪽만 의식하는 것처럼 행동했다.
나는 그제야 내 머릿속이 괜히 바빠졌다. 혹시 내 가방 안에 뭔가 떨어진 건가, 아니면 쇼핑백에 무슨 포장이 찢어져서 보이는 건가. 그래서 나는 조용히 가방을 내려다봤다. 근데 거기엔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가방 옆면에 붙어 있던 작은 라벨이 비에 젖어 반들반들했고, 그 빛이 차 안 조명에 반사될 때마다 마치 다른 물체가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그럼에도 찝찝했던 건, 기사님이 그 라벨 때문이라고 보일 정도로 시선이 길지 않았다는 거다. 잠깐 힐끗하고 바로 고개를 고정했다. 그리고 운전대 위에 올려둔 오른손이 아주 미세하게 떨렸다. 나는 혹시 무서운 사람을 태운 것도 아닌데 왜 저렇게까지 긴장하지 싶어서, “기사님, 괜찮으세요?”라고 더 조심스럽게 물었다. 기사님은 대답 대신, 미터기를 한 번 더 확인하듯 화면을 보더니 갑자기 말을 잘라버렸다.
그때, 뒤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아니, 물건이 떨어지는 소리라기보다는 천이 스치는 소리? 나는 깜짝 놀라 숨을 삼켰고, 기사님도 동시에 차선 변경을 멈춘 채 잠깐 속도를 줄였다. 그리고 이번엔 정말로, 백미러로 내 얼굴을 본 게 아니라 뒷좌석을 본 채로 시선을 굳혔다. 그 눈빛은 “지금 보지 마”라고 말하는 사람처럼 차갑고 단단했다. 나는 본능적으로 더 아래를 보지 않으려고 고개를 정면에 붙였다.
한 정거장 정도 더 가자 기사님이 갑자기 “여기서 세우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목적지는 아직 멀었는데도. 나는 “조금만 더 가 주세요. 제가 타야 할 곳이…”라고 말하려다 멈췄다. 기사님 표정이 너무 진지해서, 장난치듯 말이 아닌 게 확실했거든. 그는 현금을 받을 때처럼 손을 조심히 내렸다가, 다시 운전대를 잡으면서 “뒷좌석은 확인하지 마세요”라고 낮게 덧붙였다.
순간 내 등골이 서늘해졌다. 내가 뭘 확인하려는 생각을 하기도 전에, 기사님은 이미 내가 하려는 걸 알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 나는 그냥 “네… 알겠습니다” 하고 내리기만 했다. 비가 그친 길은 축축했고 가로등 아래 물웅덩이가 반짝거렸다. 기사님은 내릴 때조차 미러를 보지 않고 바로 출발했는데, 이상하게도 차가 떠난 방향으로 한참을 돌아보게 됐다.
집에 도착해서야 가방을 열어 확인했다. 아무 이상 없었다. 그런데 가방 안쪽, 내가 넣어둔 적 없는 낡은 종이 한 장이 접혀 있었다. 누가 끼워둔 것처럼 구겨져 있었고, 종이에는 필기체로 짧은 글씨가 적혀 있었다. “다음 기사에게도 보여주지 말 것.” 나는 그 문장을 읽고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다가, 휴대폰 화면을 켰다. 택시 호출 기록엔 분명히 ‘정상 운행’이라고 떠 있었고, 기사님 통화나 메시지 기록은 왜인지 전부 비어 있었다. 그날 밤, 나는 한동안 뒷좌석을 떠올릴 때마다 거울 아래 어딘가를 누가 보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지금도 생각하면 이상한 게 하나 더 있다. 기사님이 내 뒷좌석을 힐끗 보면서 말을 멈춘 건, 내가 뭘 숨겼기 때문이 아니라—내가 아직 몰랐던 걸 이미 보고 있었던 것 같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종이 한 장, 누가 넣었는지 모르는데도 왜 하필 “다음 기사”라는 말이 붙어 있었는지… 그 문장만 떠올리면, 어떤 밤엔 택시 문을 닫는 소리가 너무 크게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