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주차장 환기구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데 방향이 거꾸로야
지하주차장 환기구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데 방향이 거꾸로야.
처음엔 그냥 건물 소리겠거니 했어. 새벽 두 시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딱, 딱” 하는 둔탁한 소리가 올라오는데, 문제는 그게 계단을 오르는 소리랑 결이 달랐다는 거야. 환기구 쪽—그러니까 벽을 뚫고 바깥으로 이어지는 그 작은 격자 옆에서 소리가 뚜렷하게 나는데, 이상하게도 바람 흐름이랑 반대로 움직이듯 박자가 바뀌더라. 나는 그날도 그냥 귀가 예민한가보다 했고, 알람 끄듯 고개만 돌리고 다시 누웠지.
근데 다음 날 낮에 확인해봤어. 그 소리는 밤에만 들리는 줄 알았는데, 점심쯤에도 한 번 스치듯 들려. 주차장 한가운데 주차해 둔 차 위로 바람이 지나가는 느낌이 있는데, 그 바람이 환기구 방향으로 빨려 들어가는 날이 있잖아? 그날이 딱 그랬어. 그런데 발자국 소리는 반대로 시작됐어. 누군가 환기구 쪽에서 시작해서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는” 느낌. 격자를 통해 들려서 더 기묘했지. 발소리가 벽을 타고 굴러오는 것도 아니고, 마치 철제 관 안에서 누가 뛰는 것처럼 일정한 리듬으로 퍼져 나왔거든.
나는 관리사무소에 말할까 하다가, 괜히 떠들면 민망할 것 같아서 그냥 시간대를 체크했어. 새벽 2시 07분, 2시 19분, 2시 31분… 비슷한 간격으로 “딱, 딱”이 반복돼. 그리고 매번 방향이 같아. 내가 환기구를 향해 귀를 대면 소리가 가까워지는데, 정작 격자 바깥에서 바람이 역으로 불어오는 날에는 소리가 더 멀어져. 예를 들면, 환기구 밖이 확 뚫린 듯한 느낌이 강할 때는 발소리가 반대로 끊겨. 그 순간엔 내 등 뒤가 서늘해지는데, 이상한 건 무서워서 소리를 안 듣는 게 아니라, 계속 듣고 싶어져. 확인하고 싶달까.
일주일쯤 지나고 나서는 패턴이 더 선명해졌어. 발자국이 한 번에 끝나지 않고, 항상 “멈춤”이 있어. 딱딱 소리가 격자를 기준으로 일정 거리까지 오다가, 아주 짧게—숨 참고 있는 것처럼—정적이 생기는 거지. 그리고 다시 시작할 때는 그 정적 직전의 자리에서 바로 이어지는 게 아니라, 마치 반대편에서 타이밍을 맞춰 들어오는 것처럼 시작돼. 나는 그걸 ‘거리 재는 동작’ 같다고 느꼈어. 관 안쪽에서 누가 길이감을 재고, 그 다음에 한 칸씩 옮기는 느낌. 그래, 상상하지 않으려 해도 상상이 계속 붙어버리더라.
어느 날은 관리사무소 CCTV 확인을 요청하는 대신, 내가 직접 환기구 바로 옆을 손전등으로 비춰봤어. 격자 틈 사이로 어둠이 보이고, 내부는 뭐랄까… 생각보다 길어. 바람이 들어갈 정도의 공간이면 대충 끊겨 있을 줄 알았는데, 빛이 빨려 들어가서 끝을 찾기 어려웠어. 그리고 그 순간, 진짜로 소리가 뚝 멈췄어. 내가 비춰서 놀라서 멈춘 건지, 내가 비출 때 맞춰서 숨는 건지 모르겠는데, 적어도 ‘관찰’이 소리를 바꾸는 건 확실했어. 그 다음날부터는 내가 가까이 가면 소리가 더 빨리 시작되고, 반대로 멀어지면 늦어졌어.
그래서 나는 결국 차를 빼고, 환기구 라인을 따라 천천히 걸어봤어. 주차장 바닥에 줄이 그어져 있고, 그 줄을 따라가면 환기구 위치가 대략 직선이거든. 소리가 시작되는 지점이 항상 같은데, 문제는 발자국이 직선으로 ‘다가오는’ 게 아니라 ‘엇갈리는’ 것 같다는 거야. 예를 들어 처음에는 1번 환기구 쪽에서 들리다가, 내가 2번 환기구를 지나갈 때는 1번 쪽이 멀어지는 게 아니라 가까워져. 그런데 실제 바람은 반대야. 그날 이후로 나는 확신 비슷한 걸 가지게 됐어. 누군가 내부에서 내 위치를 기준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환기구 관의 구조를 이용해서 방향을 바꿔버리는 것 같다고. 아니면—소리가 나는 쪽이 ‘걷는 방향’이 아니라 ‘도달하는 방향’일지도 몰라.
마지막으로 더 소름 돋았던 건, 어느 새벽엔 소리가 “거꾸로” 들렸다는 느낌이 아니라, 소리의 끝이 먼저 와버린 거야. “딱, 딱” 중간에서 갑자기 마지막 박이 먼저 찍히는 것처럼 들렸고, 그 뒤에야 나머지 박이 따라오는 기분이 들었어. 내 귀로는 분명히 순서가 바뀌었는데, 시간이 지나 생각해보면 그건 소리가 아니라 ‘도착’이 바뀐 거였던 것 같아. 내가 환기구 앞에 서면 소리가 나한테 맞춰지는 게 아니라, 반대로 소리가 나를 향해 와서 먼저 닿고 나서야 뒤늦게 배경이 따라오는 느낌. 그래서인지 그날은 문 잠그는 소리도 유난히 크게 들리고, 현관문 손잡이를 만질 때마다 손끝이 찌릿했어.
그 뒤로는 결국 관리사무소에 말했어. “환기구에서 발소리처럼 들리는데, 주로 새벽에요”라고만 했고 구체적으로 ‘방향이 거꾸로’라고까지는 못 말했지. 직원은 웃으면서 “바람 소리거나 설비 진동일 거예요”라고 했고, 확인한다며 접수는 해줬어. 그런데 이상하게도 접수하고 나서부터는 소리가 완전히 사라졌어. 대신 가끔은 환기구 주변에서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만 남는데, 그 바람이 부는 방향이 매번 ‘내가 기대하는 반대’더라. 나는 아직도 그 발자국이 어디에서 시작됐는지 모르겠고, 더 무서운 건 그게 관 안에서 걷는 사람 때문인지, 아니면—내가 듣는 방식 자체가 거꾸로 고정된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오늘도 새벽이 오면, 환기구 격자 너머로 아주 작은 정적이 먼저 찾아오다가, 그 다음에야 소리가 따라오는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