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복도에서 들리는 종소리가 항상 내 방 번호로 끝났다
병원 복도에서 들리는 종소리가 항상 내 방 번호로 끝났다. 처음엔 그냥 방송 착오인 줄 알았다. 근데 이상하게도 그 종소리는 딱 정해진 시간마다 울리고, 마지막에 꼭 내 번호처럼 또렷하게 끊겼다. 밤에도, 새벽에도, 보호자들이 멀어질 때도—항상 내 귀로만 도착하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5층 재활병동에 입원해 있었고, 내 방은 513호였다. 입원 첫날 간호사가 “벨 울리면 바로 오라고요”라고 했지만, 솔직히 그게 무슨 뜻인지도 잘 몰랐다. 그러다 첫 주 중반쯤, 복도 천장에서 은은하게 종이 울리는데 마지막이 ‘오—삼—칠…’ 하는 식으로 끊기면서 마치 누군가 내 번호를 천천히 읽어주는 것처럼 들린 거다. 정확히는 513, 그 숫자 사이 박자가 이상하게 맞아떨어졌다.
처음엔 내가 피곤해서 그렇게 들린다고 생각했다. 병원 특유의 공기, 벽지의 패턴, 커튼이 살짝 흔들리는 소리까지 겹치면 뭔가가 더 크게 들리는 법이니까. 근데 다음 날도 똑같았다. 오후 식사 시간 지나고 한참 조용해질 때쯤, 어김없이 종이 울리고 끝은 또 내 방 번호에서 멈췄다. 다른 방 환자들이 보통 시간 맞춰 이동하거나 호출벨을 누르는데, 그때만 유독 조용했다.
내가 간호사 호출 버튼을 눌러 확인해보려 했을 때, 어르신 한 분이 먼저 말해줬다. “그거 들리면, 오늘은 창문 쪽 보지 마요.” 그분은 내 쪽을 보지도 않고 담요 끝만 만지작거렸다. 나는 “무슨 종이요?”라고 물었는데, 그분은 “종소리가 숫자를 먹어요. 먹히면… 밤에 복도에 사람이 많아져요.”라고만 했다. 농담처럼 들렸지만, 표정이 너무 진지해서 그냥 웃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나는 스스로 합리화했다. 병원 시스템이 원래 그런가보다, 아니면 어떤 자동 안내의 끝부분이 내 번호처럼 들리는 거겠지. 그래서 종이 울릴 때마다 종소리가 끝나는 순간을 기록했다. 시간은 비슷했고, 끝나는 숫자는 거의 변하지 않았다. 513이 맞았다. 정확히 내 방 번호가 맞는데, 문제는 내가 종소리를 듣는 순간마다 침대 매트리스가 아주 약하게 ‘쿵’ 하고 울리는 거였다. 바닥이 아니라 내 몸 쪽에서 진동이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그 진동은 한 번만이 아니었다. 종이 울리기 시작하면 침대 위 휴대폰 화면이 잠깐 흔들리고, 그 다음 끝에서 ‘삐-’ 소리가 끊길 때마다 창문 너머로 복도 불빛이 잠깐씩 어두워졌다. 간호사 선생님이 “정전이라도 났냐”라고 묻길래 아니라고 했는데, 선생님도 그때는 웃으며 “층마다 조명 들어갔다 꺼졌다 그래요”라고 넘겼다. 그런데 그 조명 꺼짐이 종소리랑 정확히 붙어 있었다.
어느 날은 낮에 종이 울렸다. 사람들이 이동하는 시간이라 혹시 누가 전화를 잘못 걸었거나 직원 호출 장난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복도 쪽 커튼이 살짝 들리더니 금방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때 간호사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고, 누군가 급히 걸어가는 발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발소리는 복도 끝에서 멈췄다가, 다시 되돌아오는 것처럼 느렸다. 종소리는 여전히 내 방 번호로 끝났고, 그 끝이 나한테 ‘지금 당장’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결국 나는 밤에 확인하러 일어났다. 문을 열기 전엔 그냥 확인 정도였는데, 문틈 사이로 복도를 보자마자 숨이 멎는 기분이 들었다. 복도는 텅 비어 있었고, 단지 천장 스피커 쪽에서 아주 희미하게 하얀 김 같은 게 퍼지고 있었다. 종소리가 한 번 울릴 때마다 그 김이 숫자처럼 갈라지는 것 같았다. ‘오… 삼…’ 하고 이어지다가 마지막엔 내 방 앞에서 딱 멈췄다. 그 순간, 복도 바닥에서 반사된 내 그림자가 정상보다 한 뼘 늦게 움직였다.
다음 날 아침, 간호사에게 물었다. “복도에서 종소리 들리잖아요. 그거… 제 번호로 끝나는 것 같은데요.” 간호사는 잠깐 멈추더니, 종이 울리는 시간을 아예 물어보지도 않고 내 시선을 피했다. 그리고는 “밤에 잠이 부족하신가 봐요. 그런 건 시스템이… 그냥 소리 반향이에요.”라고만 했다. 근데 그날부터 종소리가 더 이상 내 번호로 끝나지 않았다. 대신, 자주 나를 보던 간호사들이 이상하게 조용해졌고, 내가 질문을 하면 다들 같은 말—“반향입니다”—을 반복했다.
그 후로도 가끔 종소리는 들렸다. 다만 끝이 바뀌었다. 내 번호는 아니고, 다른 방 번호처럼 들릴 때가 있었다. 그런데 내가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볼 때마다, 복도에서 누군가가 내 방문 손잡이를 천천히 만지는 소리가 났다. 손잡이는 잠겨 있었고, 내가 확인하려고 일어나면 소리는 멈췄다. 종소리는 여전히 어딘가에서 울리는데, 그 끝이 언제나 내 쪽으로 돌아올까 봐… 나는 지금도 병원 복도에서 종소리 나는 꿈을 꾸면 먼저 숫자를 세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