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최신글
자유/잡담 괴담 추천 0

중고거래로 받은 책갈피에 손글씨가 남아 있더라

2026-06-20 04:29:12 조회 3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중고거래로 받은 책갈피에 손글씨가 남아 있더라. 솔직히 별거 아닐 거라고 생각했는데, 택배 상자에서 책갈피가 먼저 보이면서부터 기분이 이상해졌다. 판매자가 “책 상태 괜찮아요, 같이 드려요”라고 적어둔 게 들어 있었는데, 봉투 안쪽에 얇은 종이 책갈피가 끼워져 있었고 그 위에 분명 글씨가 보였다.

책갈피는 하얀 종이였는데 모서리가 조금 누렇게 변해 있었고, 가운데에 손글씨가 한 줄 적혀 있었다. 프린트가 아니라 연필이나 볼펜으로 천천히 쓴 느낌. 글씨는 또박또박했는데 이상하게도 내 이름이 아니었고, 어떤 날짜랑 장소가 같이 적혀 있었다. “OO서점 3층, 7시, 다음 권까지” 같은 식으로, 정확히는 기억이 나진 않지만 방향을 알려주는 문장 구조였다.

처음엔 그냥 누가 쓰다 만 메모인가 싶었다. 책갈피를 만든 사람이 자기만의 습관으로 남겨둔 흔적일 수도 있으니까. 근데 문제는 책에 끼워진 위치였다. 내가 산 책은 소설이었고, 책갈피가 들어가 있던 페이지가 정확히 내가 펼쳐서 읽고 있던 장면이랑 맞물렸다. 페이지가 맞는다는 게, 그냥 우연이라고 하기엔 묘하게 티가 났다.

책갈피를 꺼내서 글씨를 더 자세히 보려는 순간, 종이 아래쪽에 아주 작게 다른 글자도 보였다. “읽고 나면 다시 넣어둬”라고 쓰여 있었는데, 그 문장이 누가 봐도 부탁처럼 느껴졌다. 부탁인지, 아니면 지시인지 애매했는데… 그 문장 톤이 이상하게 ‘기다리고 있다’는 느낌이 났다. 나는 그 자리에서 잠깐 손이 멈췄다.

판매자에게 메시지를 보낼까 하다가도, 괜히 민폐일 것 같아서 그냥 책을 계속 읽었다. 그런데 읽다 보니 책갈피가 가리키는 페이지마다 글이 더 잘 들어오는 것 같았다. 물론 책 자체가 잘 쓴 작품이기도 했지만, 마치 누군가가 읽는 흐름을 조절해 둔 것처럼 장면 전개가 ‘그때 그 자리’에서만 선명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다음 날, 나는 또 중고거래 기록을 뒤져봤다. 판매자 프로필 사진은 평범한 풍경이었고, 글도 많지 않았는데, 이상하게도 같은 책을 ‘이전에도’ 올렸던 흔적이 보였다. 날짜가 꽤 있었고, 거래 완료 댓글에 “사람이 남긴 것 같은 게 같이 왔어요” 같은 문장이 보였다. 누가 먼저 비슷하게 느꼈다는 말이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싶으면서도, 동시에 더 찝찝해졌다.

그래서 이번엔 조심스럽게 판매자에게 물어봤다. “혹시 책갈피에 적힌 손글씨가 원래 들어 있던 건가요?”라고만 보냈는데, 답장은 생각보다 빨리 왔다. “그건 제가 넣은 게 아니고요. 원래 있던 것 같아요. 이상하죠? 그냥 두셔도 돼요.”라는 말이 전부였다. ‘두셔도 돼요’라는 표현이 자꾸 머릿속에 남아서, 마치 내가 뭔가를 건드린 것처럼 느껴졌다.

그날 밤, 책갈피를 책에서 빼서 책상 서랍에 넣었는데도 자꾸 떠올랐다. 손글씨의 방향이 지금의 내 행동을 따라오는 것 같아서, 잠깐씩 눈이 떠졌다. 괜히 검색을 해봤는데, OO서점 3층이라는 단서가 오래된 지점명이라서 쉽게 안 나왔다. 그런데 희미하게, 예전에 누군가가 “그 자리에서 누가 책을 넘기고 있었다”는 식의 글을 남긴 적이 있는 것 같았다. 확실하진 않았지만, 어쩐지 그 글이랑 감정 결이 같았다.

며칠 뒤 나는 결국 결심해서, 책갈피를 다시 원래 그 책의 같은 위치에 끼워 넣었다. 이번엔 아무 생각 없이 넣었는데도, 종이가 책장 사이로 스며들 때 뭔가 ‘딱’ 걸리는 느낌이 났다. 글씨가 보이는 방향도 어쩐지 정확히 맞춰져 있었다. 그리고 한 번 더 들춰보니, 책갈피 아래쪽에 없던 아주 옅은 자국이 생겨 있었다. 새로 쓴 건 아닌데, 마치 누가 연필로 덧댄 것처럼 선이 더 진해져 있었다.

마지막 문장을 읽는 순간,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다음 사람은 미리 찾지 말고, 읽는 동안만 기다려” 같은 말이었는데, 이게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중고거래는 물건을 주고받는 행위인데, 그 종이 하나가 누군가의 기다림을 같이 건네받은 것처럼 느껴졌다. 그 이후로 책을 펼칠 때마다, 나는 꼭 마지막 장까지 넘기기 전에 잠깐 숨을 죽이게 된다. 혹시… 다음 책장 넘어갈 때까지도, 누군가가 정말로 ‘기다리고’ 있는 걸까.

이 글 반응 남기기
추천과 비추천은 회원당 1회만 가능하며, 다시 누르면 취소됩니다.
추천 0 · 비추천 0
글 신고 안내
같은 회원은 같은 글이나 댓글을 1회만 신고할 수 있으며, 누적 신고가 5회 이상이면 자동으로 숨김 처리됩니다.
현재 글 신고 0회

댓글

댓글 작성은 로그인 후 가능합니다.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