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최신글
자유/잡담 괴담 추천 0

원룸 창문에 누가 젖은 손으로 선을 그어놨다

2026-06-22 04:29:11 조회 4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원룸 창문에 누가 젖은 손으로 선을 그어놨다. 그날은 비가 막 그치던 새벽이었는데, 창문을 닦으려고 커튼을 젖히는 순간부터 뭔가가 이상했다. 유리 위에 손자국이 남아 있는 것도 아니고, 물기가 번져 있는 흔적도 애매하게만 번져 있었다. 대신, 창문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듯 아주 또렷한 선이 몇 줄로 그어져 있었다.

처음엔 그냥 빗물이 튄 자국이겠거니 했어. 근데 그 선이 ‘자국’처럼 흐릿하지 않았다. 물기가 마르는 과정에서 생기는 번짐이라기엔 각이 너무 정확했고, 간격도 일정했다. 누가 연필로 긋다 만 것처럼, 유리 위에서 멈춘 흔적처럼 보였다. 나는 잠결에 눈을 비비고 손을 뻗었다가, 그 선이 손톱만큼 얇게 긁힌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창문 틈으로 바람이 들어오긴 했는데, 그 선은 실내 쪽에서 그어진 것처럼 보였다. 바깥에서 물을 뿌려도 저렇게 반듯하게 내부로 이어지진 않을 텐데, 이상하게도 유리 안쪽에서 닿은 느낌이 강했다. 게다가 선 옆에 짧은 점들이 몇 개 찍혀 있었는데, 그냥 흘러내린 자국 치곤 배열이 너무 ‘의도’ 같았다.

나는 한 번 더 확인하려고 조심스럽게 커튼을 다시 젖혔다. 그때야 제대로 보였는데, 선들이 단순한 낙서가 아니라 창문 프레임을 기준으로 각도와 길이가 맞춰져 있었다. 마치 창문을 바라보는 사람의 시선 높이에서, 특정 거리만큼만 표시해 둔 것 같은 모양. 그리고 그 선 끝부분이 아주 작게 휘어 있었는데, 그 휘어진 방향이 내 문 쪽으로 향해 있었다.

그날 아침에 관리실에 연락하려다가 말았다. 괜히 소문 나면 부담일 것 같고, 설령 누가 장난친 거라면 창문에 뭘 묻힌 게 아니라면 증거도 없잖아. 대신 나는 닦아내기로 했어. 휴지로 문지르는데, 물기가 거의 없는데도 유리가 살짝 끈적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젖은 손이 닿은 뒤 오래 지나지 않은 것처럼.

닦고 나서도 완전히 지워지지 않는 자국이 남아 있었다. 얇게 남은 선은 지워졌는데, 그 아래에 더 얇은 층이 있는 것처럼 투명한 잔흔이 남았다. 불빛을 옆에서 비춰보면 보이는 정도였는데, 그게 더 소름이 돋았다. 누가 일부러 ‘보이지 않게’ 해둔 것 같아서. 그렇게 생각하니까,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이 한 박자 늦게 움직이는 느낌이 들었다.

퇴근하고 돌아왔을 때, 나는 더 확실히 확인했다. 그 선이 다시 생겨 있었던 건 아니었는데, 유리 중앙에 얇은 물기 얼룩이 새로 번져 있었다. 그리고 그 물기 얼룩의 모양이, 내가 어제 닦아낸 선이 있던 위치와 거의 겹쳤다. 그러니까 어제 누가 선을 그어놨고, 오늘은 지워도 다시 남게끔 뭘 해둔 거야. 그 ‘다시 남게끔’이 단순한 우연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날 밤, 나는 방문을 잠그고 조용히 불을 끈 채로 창문을 바라봤다. 커튼 틈 사이로 가로등 빛이 새어 들어와서 방 안이 완전히 어둡진 않았는데, 유리는 오히려 거울처럼 반사돼서 시선이 계속 유리 쪽으로 빨려 들어갔다. 한참을 보다가, 바람도 없는데 창문에 손가락 하나만큼 되는 물기가 아주 천천히 번지는 걸 봤다. 그게 손자국처럼 퍼지진 않고, 선을 만들기 위한 ‘시작점’처럼 조용히 맺혔다.

그 순간, 뒤에서 문이 ‘툭’ 하고 아주 가볍게 울렸다. 누가 노크한 것도 아니고, 바람 때문에 걸쇠가 흔들린 소리도 아니었다. 딱 손바닥만큼의 가벼운 충격 같은 소리. 나는 숨을 삼키고 멈췄는데, 창문 쪽에서 그 물기 시작점이 길게 이어지지 않고 멈춰 있었다. 마치 “지금은 여기까지”라고 정해둔 것처럼, 선의 다음 단계가 나오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엔 관리실에서 확인을 하러 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들은 창문을 닦아보거나 유리 표면을 만져보는 데만 관심이 있었고, 내 말처럼 ‘젖은 손으로 긋는 느낌’ 같은 건 전혀 입에 올리지 않았다. 밖에서 본 흔적만 문제 삼는 태도였다고 해야 하나. 나는 그때 처음으로 확신 비슷한 걸 느꼈다. 누군가가 나를 겁주려는 게 아니라, 나만 알아채길 바라는 방식으로 계속 선을 남기고 있다는 느낌.

그 후로도 가끔씩, 비 오는 밤이면 창문 한가운데 선이 아주 희미하게 되살아났다. 잘 안 보이게, 내가 스스로 ‘아마 착각이었나’라고 믿어줄 만큼만. 근데 신기하게도 그 선들이 매번 같은 방향으로 휘어 있었고, 그 휘어진 끝이 늘 내 방의 통로 쪽을 향했다.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손끝이 저리다. 유리 위에 누가 젖은 손으로 선을 그어놨다는 사실보다, 그 선이 매번 “다음에는 네가 먼저 알아차릴 차례”라고 속삭이는 것 같아서 더 무섭다.

이 글 반응 남기기
추천과 비추천은 회원당 1회만 가능하며, 다시 누르면 취소됩니다.
추천 0 · 비추천 0
글 신고 안내
같은 회원은 같은 글이나 댓글을 1회만 신고할 수 있으며, 누적 신고가 5회 이상이면 자동으로 숨김 처리됩니다.
현재 글 신고 0회

댓글

댓글 작성은 로그인 후 가능합니다.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