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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에서 기사님이 내 주소를 읊고도 한참을 돌았어

2026-06-22 16:29:15 조회 3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택시에서 기사님이 내 주소를 읊고도 한참을 돌았어. 처음엔 그냥 길을 잘못 찾아서 그런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등골이 서늘해지더라. 승차한 지 얼마 안 돼서 기사님이 내리려는 손님도 아닌데도, 운전대 붙잡고 혼잣말처럼 “여긴… ○○동 ○○번지 맞지?” 하고 말했거든. 나는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왜 내 주소를 아는지부터가 이상했어.

그날 비가 좀 왔고, 나는 늦은 시간이라 앱으로 택시를 불렀어. 목적지는 내 집이 맞고, 결제도 앱에서 끝났지. 기사님은 내 얼굴을 보고 “네, 여기로 가는 거죠” 하면서도 차를 바로 출발하지 않고 잠깐 정차했어. 그때 계기판이랑 내비 화면만 빛났고, 기사님 눈이 내비를 넘기듯 훑는 게 보였어. 그리고 방금 말한 것처럼 주소를 읊조리는데, 목소리가 너무 자연스러워서 “혹시 다른 사람 주소를 착각한 건가?” 같은 생각도 못 하겠더라.

“네? 기사님, 어디를 말씀하시는 거예요?”라고 물었는데, 기사님은 핸들을 조금만 틀면서 “아, 손님이 말 안 해도 내비가 알려줘요. 자주 타는 편이면 주소가 뜨는 경우가 있죠” 이러는 거야. 근데 내비가 주소를 ‘뜬다’는 말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고, 무엇보다 내가 탑승 전에 주소를 기사님에게 따로 말한 적이 없었어. 앱에서 목적지만 입력했을 뿐이니까.

처음엔 장난 같기도 했고, 나도 분위기 타서 “아… 그런가 봐요” 했어. 그런데 차가 내 집 방향으로 직진하는 대신, 엉뚱하게 반대 차선으로 틀더라. 비 때문에 시야가 흐린 것도 있었지만, 지도 앱에서 경로가 한눈에 보이니까 나는 비교적 확인이 쉬웠어. 기사님은 앞만 보고 가는데, 내비는 계속 ‘도착까지 남은 거리’가 바뀌지 않고 있었어. 즉, 실제로는 돌아가는 느낌이었는데, 화면만 멀쩡하게 유지되는 거지.

나는 순간적으로 스마트폰 화면을 켜서 택시 경로를 확인했는데, 경로선이 끊어졌다가 다시 이어지는 게 보였어. 기사님이 일부러 경로를 비틀거나, 아니면 뭔가를 ‘덮는’ 느낌? 그런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말없이 창밖을 봤어. 근데 기사님이 “손님, 요즘 그 쪽 공사 때문에 길이 좀 막히더라고요” 하더니, 공사 구역이 아닌 곳으로 차를 계속 돌렸어. 내가 알던 지형이랑 완전히 달랐어.

차 안이 생각보다 조용했어. 라디오도 꺼져 있었고, 기사님은 한 번도 백미러를 제대로 보지 않았어. 대신 휴대폰을 히터 아래쪽에 두고 자꾸 손가락으로 화면을 스치듯 했는데, 그 속도가 되게 빨랐어. 나는 그때 ‘주소를 읊었다’는 부분이 단순한 착각이나 실수는 아닐 가능성이 커진 걸 느꼈다. 혹시 앱 택시가 뜨는 정보를 기사님이 따로 저장해두는 건가, 아니면 누군가에게 내 이동을 공유받는 건가, 이런 생각이 꼬리를 물었지.

그렇게 한참을 돌다가, 기사님이 갑자기 내비 화면을 한번 크게 만지더니 “여기서 잠깐만요” 하면서 급하게 서행했어. 나는 “여기요? 집까지 얼마 안 남았잖아요”라고 말하려다 그만뒀어. 순간적으로 문득, 내가 내리려는 순간에 뭔가를 더 요구할 수도 있겠다는 불길한 느낌이 들었거든. 그래서 그냥 휴대폰으로 위치 공유 상태를 확인하고, 동시에 통화 버튼을 눌러서 녹음이 되는지 확인하려고 했어. 손이 살짝 떨렸는데, 그 떨림이 나도 좀 놀라울 정도로 확실했어.

기사님은 내 반응을 본 건지 못 본 건지, 별말 없이 다시 출발했어. 이번엔 아예 내 집 근처로 곧장 가지 않고, 한 블록 더 돌아서 골목 쪽으로 들어갔지. 그 골목은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편이라 비 오는 밤엔 더 휑했어. 그리고 기사님이 또 한 번, 정말로 자연스럽게 “손님은 여기 살지. 맞지?” 하고 말했어. 그 말투가 ‘물어보는’ 게 아니라 ‘확인하는’ 느낌이었어. 나는 그때 깨달았어. 주소를 이미 알고 있다는 건, 단순히 목적지 정보가 떠서 아는 정도가 아니라는 거.

내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기사님, 제가 혹시 동의한 적 있어요? 제 정보요”라고 묻자, 기사님은 잠깐 핸들을 고정한 채로 숨을 크게 들이쉬더니 “아뇨, 동의 같은 거요? 그냥 길이 헷갈려서요”라고 둘러댔어. 근데 그 헷갈림이라는 말이 웃기게도, 내비 화면은 계속 목적지에 맞춰져 있었어. 결국 기사님이 내 주소를 ‘모른 척하려고’ 일부러 다른 핑계를 찾는 게 아니라, 알고 있는 걸 확인하면서 시간을 끌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

어쨌든 택시는 내 집 앞에 가까스로 도착했고, 나는 최대한 빨리 내렸어. 카드 결제는 바로 처리됐고, 기사님은 고개 한번만 끄덕이고 그냥 출발했어. 문 열고 바로 뒷모습을 보는데, 차가 빠져나갈 때 번호판도 제대로 못 봤다. 그 뒤로 앱에서는 이상한 경로 기록 같은 건 정리돼 있었고, 고객센터에는 뭘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말문이 막혔어. 그런데 문제는… 다음 날 내 휴대폰에 낯선 지역의 로그인 알림이 하나 떴다는 거야. 내가 택시에서 뭘 봤는지, 무슨 버튼을 눌렀는지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없는데도 말이야.

그날 이후로 택시를 탈 때마다, 기사님이 내 목적지 말고도 내 주소를 ‘정확히’ 읊는 순간들을 떠올리게 돼. 앱 정보가 맞다고 넘기면 끝일 수도 있는데, 왜 하필 그 타이밍에, 왜 하필 한참을 돌았는지 생각하면 잠이 잘 안 와. 비가 그치고 나서도, 차 창문에 맺힌 물방울처럼 찝찝함이 계속 남아있더라. 지금도 가끔 문득 들려오는 그 목소리가 있어. “여긴… 맞지?” 그 한마디가, 아직도 나한텐 도착보다 먼저 다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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