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진료복 환자복이 내 사이즈로 접혀 있었다
병원에서 진료복 환자복이 내 사이즈로 접혀 있었다. 그날도 별거 아닌 감기 증상으로 접수하고, 진료실 앞에서 대기하다가 옷장 앞을 지나쳤는데… 거기엔 누가 봐도 “내 거”처럼 정갈하게 접힌 환자복 한 벌이 들어가 있었어.
처음엔 단순히 직원분이 준비해둔 건가 싶었지. 그런데 옷을 꺼내 보자마자 느낌이 확 왔어. 허리 사이즈랑 소매 길이, 무엇보다 등판에 달린 작은 표기(보통은 환자 개인정보 가림 때문에 대강 가리는 편인데) 부분이 내 정보랑 딱 맞게 보였거든. 나는 그날 처음 방문이라, 병원에서 내 사이즈를 누가 먼저 알 만한 상황이 아니었어.
접혀 있는 상태도 이상했어. 보통은 아무렇게나 접어두거나 비닐 포장으로 묶어두잖아. 근데 그 환자복은 가운데부터 딱딱 선을 맞춰서, 마치 “이대로 입어라”라고 말하는 것처럼 접혀 있었고, 소매 끝이 손에 걸리도록 살짝만 꺾여 있었어. 내가 옷을 손대기 전부터 이미 내 동작을 기다린 느낌이랄까.
나는 순간 웃으려고 했어. ‘혹시 같은 체형 환자가 있나?’ ‘전에 검사받았던 사람이랑 착각했나?’ 이런 생각이 드는데, 병원 규모가 작은 곳도 아니고, 접수번호 확인도 거쳐야 하니까 논리가 잘 안 붙더라. 간호사 호출이 나와서 진료실로 들어가긴 했는데, 계속 눈이 옷장 쪽으로 갔어.
진료실에서 간단한 문진을 받는데, 의사 선생님이 “오늘은 검사까지 진행할까요?”라고 물었고 나는 그냥 감기라고 생각해서 “네, 하겠습니다”라고 했어. 그런데 그 순간 간호사가 뒤에서 “복은 저희가 준비해놨습니다”라고 말하더라. 나는 아무 말 안 했는데도, 준비된 복을 말하는 톤이 너무 자연스러웠어. 마치 내가 이미 확인했을 걸 알고 있다는 것처럼.
검사실로 이동하면서도 자꾸 옷장 생각이 났지. 복장 갈아입는 곳은 진료실 바로 옆이 아니라 복도 끝에 있었는데, 그 복도 벽에 붙은 안내문 아래에 작은 번호표가 달려 있었어. 번호표 색이 내 접수번호랑 비슷했고, 표기된 글씨가 너무 또렷하게 보여서 순간 눈이 굳었어.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 ‘누가 미리 정해둔 동선대로 내가 움직이게 만드는 거 아닐까.’
환자복을 입고 거울을 봤는데, 사이즈가 정말 딱 맞았어. 어깨 라인도 그렇고, 소매 길이도 딱 맞고, 무엇보다 앞쪽 단추 위치가 내가 평소에 좋아하는 방식이었는지(나는 단추를 반쯤만 잠그는 편이거든) 옷이 먼저 그렇게 맞춰져 있는 느낌이었어. 이상해서 손으로 단추를 더 잠가보려는데, 손끝이 옷깃 안쪽에 걸렸어. 거기엔 얇은 종이 조각 같은 게 끼워져 있었는데, 펼치면 안 될 것 같아서 바로 떼어내진 못했어.
간호사가 “검사 들어가실게요”라고 부르길래 종이는 다시 안쪽으로 밀어 넣고 나왔어. 검사 과정은 평범하게 진행됐고, 결과도 큰 문제 없었어. 근데 이상하게도 집에 가고 나서도 마음이 계속 남더라. 혹시 내가 몰래 사진을 찍었나, 혹시 접수할 때 누가 내 옷 브랜드나 사이즈를 확인했나, 생각했는데 그런 기억이 없었거든. 나는 원래 환자복 갈아입을 때 옷장 번호도 대충 보는데, 그날은 유독 선명했어.
다음 진료 날짜가 잡히자, 나는 접수처에 조심스럽게 물어봤어. “지난번에 제가 사이즈를 말한 적이 없는데 복이 제 사이즈로 접혀 있더라”고. 그랬더니 접수처 직원이 잠깐 멈칫하더니, 웃으며 “아, 저희가 보통 기록 보고 준비해요. 사이즈 기록이 있으셨나 봐요”라고만 했어. 그런데 나는 그 병원에서 한 번도 환자복을 입고 검사받은 적이 없었고, 사이즈를 따로 제출한 기억도 없었어. 그 ‘보통’이란 말이 오히려 더 불길했지.
집으로 돌아와서 문득, 그 옷깃 안쪽에 끼워져 있던 종이가 떠올랐어. 뜯어보지 않은 게 다행인지, 아니면 더 큰 실수였는지 모르겠어.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해. 병원이라는 곳이 원래 사람을 정리해두는 공간이긴 해도, 내 사이즈로 접힌 환자복은 누군가가 “다음에 올 너”를 이미 예상하고 준비해둔 것 같았거든. 그날 이후로 나는 옷장을 지나칠 때마다, 혹시 내 이름 대신 내 몸부터 먼저 준비해두는 곳이 있는 건 아닐까 하고 한 번씩 뒤를 돌아보게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