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기사님이 목적지로 가는 길이 아니라 ‘돌아가는 길’로 들어섰다
비가 조금씩 내리던 저녁이었어요. 택시에 올라타자마자 기사님이 “네, 목적지로 바로 가겠습니다”라고 말하셨는데, 이상하게도 계기판 속 시계가 아니라 손목시계처럼 계속 같은 초를 되감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얼마 안 가서 차가 골목으로 꺾였고, 내비 화면은 목적지를 안내하긴커녕 ‘이동 중 오류’ 같은 문구만 깜빡였어요. 기사님은 계속 앞으로만 가셨고, 저는 “네비가 이상한가 봐요” 하고 넘기려 했죠.
처음엔 단순한 길 정체인가 싶었어요. 그런데 골목이 너무 낯설었어요. 제가 타 지역에서 자주 오는 길이 아닌데도 택시는 마치 제가 예전에 여기서 내린 적이 있다는 걸 아는 사람처럼 손쉽게 통과했거든요. 횡단보도 앞에서 멈췄는데, 신호등은 분명 빨간불인데도 기사님은 정차하지 않고 그냥 지나가 버렸어요. 창밖을 보는데, 건널목 표지판 뒤로 사람들이 서 있긴 했는데 얼굴이 흐릿하게 뭉개져 보였어요. 분명 사람이 있는 것 같은데, 눈을 오래 두면 기억이 지워지는 느낌이랄까.
“기사님, 여기 길 아닌 것 같은데요.” 제가 그렇게 말하자 기사님은 잠깐 뒤를 보더니 웃으셨어요. 웃음은 친절한데, 목소리가 아주 낮게 깔리더라고요. “손님, 길은 원래 돌아가는 길이에요.” 그 말이 농담처럼 들리지 않았어요. 저는 그냥 기분 탓인가 했는데, 차가 다시 방향을 틀 때마다 제 휴대폰 시간만 이상하게 늦어졌어요. 10분 전으로 돌아가 있고, 또 다음 틀기에서 다시 10분 전으로 돌아가고… 어느 순간엔 ‘배터리 절약 모드’가 켜져 있지도 않았는데 절전 화면이 떠 있었어요.
기사님 손은 계속 핸들을 단단히 잡고 있었는데, 표정이 너무 평온해서 더 불길했어요. 길가의 가로등이 하나씩 켜질 때마다 차 안 공기가 차가워졌고, 창문에 김이 서리듯 얇게 올라왔어요. 저는 히터를 올려 달라고 말했는데, 기사님은 “필요 없습니다. 여기선 공기가 이미 맞춰져 있어요”라고 대답했어요. 그 순간 등 뒤가 서늘해지면서, 제가 분명 안전벨트를 했는데 갑자기 끌어당겨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내 몸이 아니라, 마음이 뒤로 잡아당겨지는 느낌이랄까요.
내비가 다시 살아났을 때는 목적지가 보였어요. 하지만 경로가 이상했어요. 직선으로 가는 게 아니라, 제가 한 번도 안 가 본 골목과 골목을 이어서 이상하게 크게 돌아가 있었고, 경로 위에 작은 점선이 아니라 ‘돌아감’이라고 적힌 것처럼 보였어요. 저는 그 글자를 똑바로 보려고 했는데, 보는 순간 화면이 잠깐 검게 꺼졌다가 켜지더니 그냥 평범한 지도처럼 바뀌었어요. 마치 제가 방금 전에 본 글자를 지워버린 것처럼요.
차는 계속 달렸고, 어느 순간부터 풍경이 ‘같은 장소를 다른 날에 보는 것처럼’ 반복되기 시작했어요. 커피숍 간판이 똑같이 보이는데 문이 한 번은 열려 있고, 한 번은 닫혀 있고, 또 한 번은 아예 공사 중인 것처럼 천이 덮여 있었어요. 그러다 갑자기, 차가 멈춘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도 제 머릿속에는 “곧 도착해요”라는 문장만 반복해서 들어왔어요. 분명 기사님이 말한 것도 아닌데, 귀 안에서 누가 속삭이는 듯했어요. 저는 “기사님, 저 내려드릴 수 있는데요? 여기서부터 걸을게요”라고 말했지만, 문을 열려고 하자 손잡이가 눌리지 않았어요.
그래서 저는 급하게 기사님을 보며 “잠깐만요. 차 문이 안 열려요.”라고 했어요. 기사님은 다시 미세하게 고개를 돌렸고, 그때 처음으로 눈빛이 흔들렸어요. 그러더니 아주 짧게, 마치 안내방송처럼 말했어요. “여기선 내리는 사람도 길이 됩니다.” 말이 끝나자마자 계기판이 한 번 ‘딱’ 하고 튀었고, 와이퍼가 작동하지 않는데도 앞유리에 물방울이 스르륵 번졌어요. 비가 그치거나 커지는 게 아니라, 그냥 화면만 바뀌는 느낌이었습니다. 저는 그제야 이게 길이 아니라 ‘절차’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후로는 기억이 끊기는 구간이 있어요. 분명히 다음 골목으로 꺾는 장면이 있어야 하는데, 그 장면이 통째로 빠져 있는 것처럼 머리가 멍해졌어요. 대신 정신이 돌아왔을 때는, 택시가 제 목적지 정문 앞에 서 있었어요. 기사님은 똑같이 미소를 유지한 채로 “도착했습니다”라고 했고요. 이상하게도 영수증 발급 화면은 0원으로 찍혀 있었어요. 저는 급히 계산하려 했는데 카드 단말기 화면이 켜지지 않았고, 기사님은 “이미 처리됐습니다”라고 말했어요. 저는 돈을 내지 않은 게 맞는데도, 영수증에는 날짜와 시간이 정확하게 찍혀 있었어요. 제 폰 시계와도 일치하지 않았고요.
저는 얼른 내리려고 문을 밀었어요. 그때 바닥이 살짝 흔들리면서 발이 한 번 푹 꺼지는 느낌이 들었고, 차 밖 공기가 너무 조용하게 들렸어요. 뒤를 돌아보니 기사님이 계셨는데, 창문 유리에 비친 얼굴이 아니라 뒷좌석의 어둠이 기사님 모양을 하고 있는 것 같았어요. 저는 숨을 들이켰고, 그 순간 기사님이 아주 낮게 한마디만 남기고 시동을 껐어요. “돌아가는 길로 들어간 건, 손님이 선택한 거예요.” 그 말이 끝나자마자 차가 그냥 사라졌습니다. 정류장도, 도로도 그대로였는데 택시만 공중에서 지워진 것처럼요. 그리고 집에 와서 보니, 제 내비 기록엔 목적지가 아니라 ‘돌아감’이 목적지로 찍혀 있더라고요. 그날 이후로도 가끔 어떤 골목을 지나갈 때마다, 제가 선택하지 않았는데도 ‘돌아가야 한다’는 감각이 먼저 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