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출근 개찰구에서 내 발자국이 먼저 찍히는 느낌이 들었어
회사 출근 개찰구에서 내 발자국이 먼저 찍히는 느낌이 들었어. 진짜로, 내가 계단을 내려오기도 전에 바닥 스피커에서 “틱, 틱” 하고 내 이름이 뜨는 것처럼 들리더라. 그날은 아침부터 컨디션이 이상했는지 그냥 피곤해서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는데, 이상하게도 그 뒤로 계속 같은 패턴이 반복됐어.
처음엔 별 거 아니었어. 지하 주차장에서 엘리베이터 타고 1층 로비로 나오면, 바로 직원 출입 개찰구가 있거든. 출근 체크는 카드 찍고 게이트 통과하면 끝인데, 나는 늘 오른발 먼저 움직여서 게이트 쪽으로 걸어가. 그런데 그날은 현관문 열고 나서 두세 걸음도 안 옮겼는데도, 개찰구 앞 바닥에 설치된 센서가 먼저 반응하는 소리가 났어. “삑—” 하고 결제된 것처럼 전광판이 켜지는 소리. 내 시야에선 아직 카드도 안 꺼냈는데 말이야.
나는 잠깐 멈췄어. 혹시 앞사람이 센서를 밟은 건가 싶었는데, 앞사람은 이미 게이트를 통과하고 멀어져 있었고, 로비엔 우리 둘 말고 거의 없었어. 내 발자국은 뒤에서 따라오는 소리처럼 들렸는데, 개찰구 쪽에서는 마치 내가 먼저 지나간 사람처럼 반응했지. 카드 단말기 화면에 내 얼굴이 떠서 “확인되었습니다” 같은 문구가 잠깐 뜨고 사라지는데, 그 타이밍이 내 걸음이랑 안 맞았어.
그날 이후로는 출근할 때마다 신경이 곤두섰어. 출근 시간대라 사람들이 꽤 지나다니는데도, 이상하게 나는 개찰구 앞에 오기 전에 먼저 “틱” 하는 소리를 들었어. 누가 지나가면 보통 센서가 동시에 울리잖아. 근데 내 경우엔 늘 내 동작보다 먼저 반응하는 느낌이었고, 반응하고 나서 한 박자 늦게 내가 실제로 움직이는 것 같았어. 마치 내 몸이 화면의 뒤쪽에 있고, 앞쪽에는 이미 내 그림자가 한 발 먼저 찍히는 느낌.
나는 부서 사람들한테 농담처럼 말했어. “개찰구가 자꾸 먼저 나 찍는 거 같지 않아?” 이런 식으로. 근데 다들 웃더라. 누가 장난치는 거 아니냐, 센서 민감해서 그래 보인다고. 그런데 웃기게도 다음날은 진짜로 확인이 됐어. 내가 일부러 걸음을 느리게 옮겨 봤거든. 평소엔 오른발부터 자연스럽게 가는데, 일부러 왼발을 먼저 내딛었어. 그러자 이번엔 개찰구에서 반응하는 소리가 바뀌지 않고 똑같이 “오른발 먼저”처럼 들리는 거야. 귀로 듣는데도, 감각으로 딱 ‘순서’가 정해진 것처럼 느껴졌어.
그 후로는 카드 리더기 로그를 확인해보려고 했는데, 회사 전산은 출입기록이 보안이라 일반 직원은 못 보잖아. 그래서 더 찝찝했어. 대신 나는 출근할 때마다 바닥의 반응 소리, 전광판 깜빡임, 그리고 게이트가 열리는 타이밍을 계속 의식했어. 그러다 어느 날, 게이트 문이 열리기도 전에 이미 로비 CCTV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어. “딸깍” 하는 기계음이, 늘 내가 카드를 찍는 순간이 아니라 내가 문 앞에 서는 순간부터 시작됐거든. 그때부터는 내가 뭘 하든 시스템이 먼저 나를 아는 것 같았어.
가장 소름 돋았던 건 휴일 특근 날이야. 휴일인데도 보안 출입은 해야 해서 내가 혼자 늦게 들어갔거든. 로비는 텅 비었고, 형광등 소리만 크게 들렸어. 나는 조용히 걸어서 개찰구 앞에 섰고, 카드를 꺼내려고 했는데 손이 멈췄어. 전광판이 먼저 켜졌거든. “직원 확인 중” 같은 문구가 내 카드가 손에 들어오기 전에 이미 진행되고 있었어. 내가 숨을 들이마시는 동안, 화면이 넘어가서 “확인되었습니다”가 떠버리더라. 게이트는 자연스럽게 열렸고, 나는 그제서야 카드를 찍었는데, 찍는 순간엔 이미 열린 상태였어. 마치 누군가가 이미 내가 지나갈 길을 먼저 계산해 둔 것처럼.
나는 그때서야 이상한 생각이 들었어. 출근 개찰구가 ‘내가 지나가는 시간’을 측정하는 게 아니라, ‘내가 지나갈 결과’를 먼저 확정해 놓는 건 아닐까. 그래서 발자국이 먼저 찍히는 느낌이 들었던 거야. 내가 걸음을 내딛기 전에, 시스템이 내 동선을 먼저 재생하는 것처럼. 그날 밤엔 집에 와서도 발바닥이 간질간질했어. 실제로는 아무것도 안 했는데, 귀 안쪽에서 “틱, 틱” 소리가 계속 이어지는 것 같았고, 방 안이 조용해질수록 더 선명하게 들렸어.
지금도 출근길에 개찰구 앞에 서면 가끔 멈춰서 바닥을 봐. CCTV가 달린 모서리, 센서가 박힌 바닥, 그리고 전광판. 그 순간에는 내가 앞으로 한 발 내딛기 전에 이미 ‘내가 이미 지난 사람’이 되어버린 느낌이 들어. 그리고 한 가지 더, 이상하게도 그 다음 날부터는 반대로 내 발자국이 나보다 늦게 따라오는 날도 생겼어. 언제부턴가, 시간의 순서가 내 편이 아니게 바뀌었다는 걸 나는 출근 개찰구에서만 확실하게 알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