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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대기번호가 사라졌다가 내 번호로 다시 붙어

2026-06-24 20:29:13 조회 3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병원 대기번호가 사라졌다가 내 번호로 다시 붙어.

처음엔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어. 감기 증상으로 동네 병원 갔는데, 접수하고 나서 대기번호표를 받았거든. 번호는 173번이었고, 진료실 앞에서 의자에 앉아 있었어. 앞사람이 170번대 부르고 나간 뒤로도 한참 동안 아무 소리 없어서, 내가 멍하니 번호표만 계속 만지작거렸지.

그런데 173번 불릴 시간이 거의 된 것 같아. 내가 앉아 있는 자리에서 전광판을 볼 수 있었는데, 갑자기 숫자가 깜빡이더니 화면이 비는 거야. 점검 중 같은 안내도 안 떴어. 그냥 “0”처럼 아무것도 없이 멈춘 느낌. 간호사분이 한 번 지나가길래 물어보려다 말았고, 주변 사람들도 잠깐 어리둥절해하는 표정이었어.

그 후로 이상한 일이 연달아 생겼어. 전광판이 다시 켜졌는데, 내가 기다리던 173이 아니라 0번대도 아니고 엉뚱한 번호들이 줄줄이 뛰어넘는 거야. 어떤 분은 “방금 내 번호였는데?”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들어갔고, 또 어떤 분은 번호표를 들고 접수대로 다시 가더라고. 나는 내 번호가 그대로인지 확인하려고 종이표를 흔들어 봤는데, 이상하게도 잉크가 덜 진하게 보이는 느낌이 들었어. 마치 누가 급히 붙였다 떼어낸 것처럼.

잠깐 정리되나 싶었지. 전광판이 안정된 뒤에야 간호사분이 “다음 173번”이라고 부르는 소리가 났어. 나는 자리에서 바로 일어났고, 진료실 앞에서 대기하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가면서도 계속 번호표를 들고 있었어. 그런데 이상하게도 문 앞에 걸린 대기칸에서 번호표를 확인하는 직원이 없었어. 그냥 의사 선생님이 “들어오세요” 하면서 손짓을 하더라. 그 순간, 왜인지 등골이 서늘했어.

진료실 안은 평소처럼 조용했는데, 질문을 받는 동안에도 내 머릿속엔 전광판이 계속 맴돌았어. “언제부터 증상이 시작됐나요” 같은 기본 질문이 오가는데, 내가 답을 하기도 전에 의사 선생님이 책상 위에 놓인 서류를 넘기다가 잠깐 멈추더니, 내 번호표를 유심히 봤어. 그리고는 아주 짧게 웃으면서 “이 번호, 좀 오래 붙여두신 거 아니에요?”라고 말하는 거야.

나는 순간 말문이 막혔어. 오래 붙였다는 건 무슨 뜻이지? 나는 병원에 들어오자마자 번호표를 받았고, 접수대에서 받은 종이를 그대로 들고 있다가 옷 주머니에 넣었거든. 혹시 접수하는 직원이 내 번호표를 잠깐 붙였다 떼었나? 그 생각이 들었는데, 선생님은 설명을 더 안 하고 약 처방만 툭 내주듯 적어줬어. 처방전을 받으면서도 손끝이 계속 차가웠고, 나가려는데 간호사가 뒤에서 “다시 전광판 확인해보세요”라고 낮게 말했어.

복도에 나와서 전광판을 다시 봤더니, 방금까지 173이었던 자리에 다른 숫자가 올라가 있었어. 그런데 그 숫자 옆에, 아주 짧게—정말 눈 깜빡할 사이—내 번호가 겹쳐서 비치는 것처럼 보였어. 내가 본 건 착각일 수도 있지. 그래도 그 순간에는 확신이 들었어. 누군가 내 번호를 “다시” 붙여 넣은 느낌. 마치 병원 시스템이 잠깐 오류를 냈다가, 결국 다시 내 것으로 돌아온 것처럼.

집에 가서도 계속 찝찝했어. 번호표를 가지고 있으면 안심될 줄 알았는데, 오히려 그 종이가 이상하게 남아 있거든. 주머니에서 꺼내 보니까 종이 가장자리가 살짝 눌린 자국이 있었고, 접수대에서 처음 받았을 때보다 테이프 자국 같은 게 더 선명했어. 나는 어제부터 병원에 다닌 것처럼 기억이 정리돼 있는데, 동시에 “그 테이프는 언제 붙였지?”라는 질문이 계속 떠올랐어.

다음 날 같은 병원에 다시 가야 할 일이 생겼고, 혹시나 해서 전광판 앞에 서봤는데, 거긴 평범했어. 번호가 순서대로 올라가고, 사람들도 자기 차례 기다리고 있고. 그런데 접수하는 쪽을 보자마자 확 느껴졌지. 직원 책상에 번호표가 묶음으로 쌓여 있는데, 그 묶음 맨 위가 내 번호표처럼 보였거든. 정확히 같다고 말하긴 어려운데, 종이의 접힌 모서리 모양이 너무 닮아 있었어.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다시 대기 의자에 앉았고, 전광판이 한 번 깜빡일 때마다 마음이 먼저 반응했어.

진료실에서 나올 때쯤, 내 번호가 다시 불릴 뻔한 순간이 있었어. 전광판이 잠깐 멈칫하더니, 다음 차례 숫자가 “173”에 가까운 모양으로 떠오르는 듯했다가 바로 정상으로 돌아갔거든. 그 짧은 틈에서, 시스템이 나를 놓치지 않으려 했던 건지, 아니면 이미 한 번의 순서를 다시 붙이려 했던 건지 모르겠어. 다만 확실한 건, 병원 대기번호라는 게 그냥 종이 한 장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고, 그날 이후로 전광판이 깜빡일 때마다 가슴이 먼저 식는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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