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집 담장 너머에서 내 목소리로 인사가 들려
담장 너머에서부터 먼저 들렸다. 아침도 아니고, 그렇다고 밤도 아닌 애매한 시간인데, 우리 집 시골길을 가르던 바람 소리 사이로 “여기 있어요”라는 목소리가 딱 한 번, 또렷하게 튀어나왔다. 나는 그 말이 내 귀에만 꽂힌 줄 알았는데, 바로 다음 순간 담장 너머에서 내 목소리로 인사가 이어졌다. 마치 누군가가 내 입모양 그대로 따라 읽는 것처럼.
그날은 어머니가 “오랜만에 집 좀 정리하자” 하셔서 내려온 날이었다. 집은 늘 그렇듯 마당 한쪽에 담장이 둘러져 있었고, 담장 바깥은 잡풀과 구불한 농로가 이어졌다. 문제는 그 농로가 사람이 다니는 길이 아니라는 거다. 동네 사람들도 웬만하면 돌아가고, 여름엔 풀이 허리까지 와서 발자국이 남지 않는다. 그래서 더 이상했다. 누가 밖에서 내 목소리로 인사를 한다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됐으니까.
나는 괜히 겁을 먹지 않으려고, 평소처럼 “응, 나 여기 있어” 하고 대답해버렸다. 그런데 대답하자마자 담장 옆 상수리나무 근처에서 목소리가 다시 섞였다. “네가 여기 있어. 나도 여기 있어.” 그 문장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내가 방금 한 말에 대한 메아리 같은 느낌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내 문장 습관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어머니는 부엌에서 소리 들었냐며 고개만 갸웃했는데, 정작 “누구랑 얘기해?”라고 묻는 표정은 아니었다. 어머니는 늘 내가 말 더듬는 걸 이상하게 받아넘기는 사람이었거든.
담장 너머를 쳐다보면 아무것도 없었다. 담장 아래로는 잡풀이 무성했고, 농로 끝은 나무와 덤불로 가려져 시야가 끝났다. 나는 무심한 척 철문 쪽으로 걸어가 담 밑을 살폈다. 근데 그때, 철문에서 나는 소리와 동시에 목소리가 더 가까워졌다. 분명히 “철문 열어”라고 들렸는데, 내 손은 아직 잠금고리를 돌리기 전이었다. 손등에 소름이 올라와서, 나는 멈칫했다가 결국 손을 뗐다.
어머니는 “너 또 산에서 들은 소리 착각했니?” 하면서 물을 찾으러 마당을 한 바퀴 돌았다. 그 순간, 목소리는 어머니 앞에서 멈추는 듯했다. 어머니가 담장 쪽을 바라보며 아무 말도 못 하고 굳어 있었는데, 그 정적이 길었다. 나는 그게 이상해서 어머니 팔을 잡고 “들려요”라고 말하려 했는데,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담장 너머에서 아주 조용히 내 목소리로 한마디가 더 붙었다. “엄마는 안 들려.”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누가 내 목소리를 흉내 내는 게 아니라, 내 기억 안의 습관까지 끌어다 쓰고 있다는 느낌이 강해졌다. 예전에 내가 혼자 집에 있을 때, 생각이 꼬이면 버릇처럼 중얼거렸던 말투가 그대로 섞여 있었거든. 그때부터 갑자기 담장 너머 공기가 이상해졌다고 해야 하나, 귀가 먹먹해지고 숨 쉬는 소리가 크게 들리기 시작했다. 마치 누군가가 내 호흡에 맞춰 소리를 조절하는 것 같았다.
그날 오후, 나는 결국 용기 내서 철문을 열었다. 잡풀이 쓸리며 발목을 스쳤고, 농로 쪽으로 한 걸음 나가자 내 눈앞이 희미하게 흔들렸다. 현실이 아닌 꿈처럼 경계가 흐릿해지는데, 그 틈에서 아주 짧게 “인사해”라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그 말은 귀로만 들린 게 아니라, 가슴 안쪽에서 울리는 느낌이었다. 내가 말해야 할 차례 같은 강박이 한꺼번에 밀려와서, 나는 입을 열기 전에 이미 “안녕하세요”라고 말하고 있었다. 내가 한 말이었는데, 동시에 담장 너머에서 똑같은 톤으로 “안녕하세요”가 한 번 더 돌아왔다. 두 번의 인사가 겹쳤다.
그 뒤로는 일이 빨리 풀리는 게 아니라, 이상하게 멈추는 쪽으로 흘렀다. 바람은 한동안 불지 않았고, 풀잎도 움직임이 멎은 것처럼 고정돼 보였다. 나는 뒤돌아 집 쪽을 봤는데, 철문이 닫혀 있는 게 아니라 아직 반쯤 열려 있었다. 분명히 내가 손잡이를 놓은 순간이 있었는데, 문은 내 기억보다 더 멀리 열려 있었다. 그 틈새로 담장 안쪽 마당이 보였고, 어머니는 현관 앞에서 나를 기다리듯 서 있었지만 표정은 이상하게 흐릿했다. 마치 누군가가 그 표정을 일부러 선명하지 않게 처리해둔 것 같았다.
그날 밤, 어머니는 식탁 위에 수건을 가지런히 접어두고는 “내가 들었으면 좋았겠네”라고 혼잣말을 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물었다. “엄마는 진짜 못 들었어요?” 어머니는 잠시 멈칫하더니 “들리긴 들리는데… 네가 말하면, 네가 아닌 것 같아서 무서워.”라고 했다. 그 뒤로 어머니는 담장 쪽 창문 커튼을 끝까지 내려버렸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목소리가 내게만 친절한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내가 듣는 방식이 곧 그쪽이 접근하는 방식이라면, 어머니는 거리를 두는 방법을 몸으로 이미 알고 있었던 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다음 날 아침이었다. 나는 출근 준비를 하며 거울 앞에서 세수했고, 내 입이 움직이는 소리를 확인하듯 “좋은 아침”이라고 작게 말했다. 그때 담장 너머에서 아주 느리게, 마치 한 박자 늦게 따라 하는 것처럼 “좋은… 아침…”이 들렸다. 나는 멈춰서 귀를 기울였고, 그 목소리의 끝이 이상하게도 내 웃음소리로 변해버렸다. 웃고 있지도 않았는데, 웃음만 먼저 도착하는 기분. 그날부터 담장 너머를 보면 잡풀이 아니라, 누군가가 서 있을 자리를 먼저 떠올리게 됐다. 나를 부르는 건 늘 인사였고, 인사는 끝내 내 목소리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