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접수할 때 이름이 아닌 ‘방 안내’로 불렸다
병원에서 접수할 때 이름이 아닌 ‘방 안내’로 불렸다. 처음엔 내가 뭔가 잘못 들은 줄 알았어. 그런데 접수 창구 직원이 환자들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도 계속 같은 말투로 “방 안내, 여기로 오세요”를 반복하더라. 그때부터 기분이 묘하게 식었고, 손에 쥔 종이가 갑자기 더 가벼워진 느낌이 들었어.
나는 감기 때문에 동네 큰 병원에 갔고, 대기표를 뽑아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어. 앞에 있던 사람은 “김OO님” 하면서 이름을 불러서 들어갔거든. 그런데 내 차례가 됐을 때, 직원이 고개도 거의 안 들고 “방 안내”라고만 말했어. 아무 설명도 없고, 내 얼굴을 한 번 확인하는 것도 없이 태블릿 화면만 툭툭 만지더라.
순간 당황해서 “네? 혹시 제 이름…?” 하고 되물었더니, 직원이 짧게 웃으면서도 표정은 그대로였어. “네, 방 안내. 접수 쪽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말이 이상했지만, 그 병원 자체가 동선이 복잡해서 그런 건가 싶었어. 나는 지시대로 접수 쪽으로 걸어갔고, 창구 안쪽에서 또 다른 직원이 내 서류를 보더니 “대기 3번, 방 안내”라고 말하면서 종이를 내밀었어.
대기실은 생각보다 조용했어. TV는 음소거 수준으로 작게 틀어져 있었고, 사람들 표정도 다들 무덤덤했는데, 특히 ‘방 안내’라고 불린 사람들이 몇 명 더 보이더라고. 그 사람들도 다 같은 방식으로 안내받는지, 고개를 들었다가 다시 창구를 쳐다보며 얌전히 앉아 있었어. 내 옆에 앉은 남자는 휴대폰을 보다가도 누군가 “방 안내”라고 불리면 저도 모르게 몸을 굳히는 것 같았어.
잠깐 기다리는 동안 접수 화면을 잠깐 엿봤는데, 내 이름 옆에 이상한 표기가 있더라.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이름 대신 어떤 코드처럼 보였고 그 옆에 “방 안내”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어. 이상해서 다시 확인하려고 고개를 들었는데, 직원이 바로 화면을 가리면서 “확인 필요 없어요. 번호대로 들어가세요.”라고 했어. 그 말투가 너무 자연스러워서, 마치 이 문구가 원래부터 정해져 있었던 것처럼 들렸지.
나도 모르게 “방 안내”가 내 실제 호칭인지, 아니면 병원에서 환자를 특정 방식으로 분류하는 용어인지 계속 생각났어. 그런데 더 소름이었던 건, 병원 복도 스피커 안내에서도 동일한 표현이 반복됐다는 거야. “방 안내 환자분, 5층 진료실로 이동 부탁드립니다.” 같은 문장이었는데, 이름을 부르는 구간이 아니라 딱 ‘방 안내’만 계속 들리는 느낌이었어.
5층으로 올라가서 문 앞에 섰을 때, 안내판이 좀 특이했어. 보통은 진료과나 접수번호가 적혀있잖아. 근데 거기에는 ‘방 안내’라고 크게 적혀 있고, 그 아래에 “해당 구역 안내는 접수 데스크에서만 진행” 같은 문구가 붙어 있었어. 처음엔 장난 같은데 싶었지만, 병원 분위기 자체가 너무 진지해서 그 생각이 오래가지 못했어. 나는 문을 열고 들어가야 하나 망설였는데, 뒤에서 누가 “여기 맞죠?” 하고 물었고, 직원은 별다른 확인 없이 고개만 끄덕였어.
진료실에서 나를 봐주던 의사는 기록을 읽듯 담담하게 질문했어. 증상은 말할 수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내 신상 확인 절차가 건너뛰어졌어. “오늘 어디 오신 거죠?” “감기 때문에…” “그럼 처치 진행하겠습니다.” 이런 식으로 흘러가더라고. 내가 중간에 “혹시 접수할 때… 방 안내라고 들었는데요”라고 조심스럽게 말하자, 의사는 잠깐 펜을 멈추고 나를 보더니 “여기서는 그렇게 안내됩니다. 신경 쓰지 마세요.”라고 했어. 그 순간, 내 뒤통수가 서늘해졌어. ‘여기서는’이라는 표현이 너무 단정했거든.
검사를 마치고 다시 접수대로 돌아왔을 때, 내 종이에서 이상한 부분이 또 보였어. 치료비 항목이나 진료과 기록은 정상인데, ‘환자 확인’ 란이 비어 있는 대신 ‘방 안내’라는 문구만 반복돼 있었어. 마치 이름이 필요 없다는 듯이, 아니면 이름을 쓰면 안 되는 것처럼. 혹시 내가 다른 사람의 서류를 받았나 싶어서 창구에 말을 꺼내려 했는데, 직원이 먼저 입을 열었어. “방 안내, 다음 안내는 문자로 갑니다.” 그리고 내 폰을 보지도 않은 채로 종이를 손에 딱 쥐어줬지.
그날 집에 와서 확인해보니 병원에서 온 문자도 똑같이 시작하더라. “방 안내 환자분, 내일 오전 예약 확인 바랍니다.” 이름이 아니라 그 문구만. 난 그때 처음으로 생각했어. 혹시 ‘방 안내’라는 말이 환자를 부르는 게 아니라, 병원 내부에서 움직이는 어떤 기준—예를 들면 동선이나 소독 구역, 혹은 처리 순서를 나타내는—그런 단어였을지도 모른다고. 근데 이상하게도, 내가 병원을 나오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 단어는 지워지지 않았어. 지금도 가끔 길에서 병원 스피커 같은 소리가 들리면, 귀가 먼저 반응해서 “방 안내”라고 속삭이듯 되돌아가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