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야식 코너가 매일 새 제품처럼 정렬돼 있는데 누가 했는지 몰라
어제도 그랬다. 밤 열한 시쯤 편의점에 들어가서 야식 코너를 보는데, 누군가가 매대 구석구석을 싹 정리해 둔 것처럼 상품들이 매일 처음 나온 제품처럼 가지런히 서 있었다. 치킨도, 삼각김밥도, 컵라면도 전부 라벨 위치가 똑같았고 유통기한 방향도 이상하게 일치했다. 내가 보기엔 분명 어제만 해도 뚜껑이 살짝 들린 것 같은 제품이 있었거든. 그런데 오늘은 그게 없고, 대신 똑같은 종류가 더 앞자리로 밀려나 있었어.
처음엔 그냥 손님이 정리해 뒀겠지 싶었다. 퇴근길에 편의점 들르는 사람들이 종종 “원래대로” 해놓는 경우도 있으니까. 그런데 문제는 야식 코너 바로 옆, 계산대 반대쪽 구역까지 같이 맞춰져 있다는 점이었어. 보통은 누가 정리해도 먼지 같은 건 그대로 남아있는데, 그날은 매대 아래 선반까지 손이 닿은 느낌이었고, 플라스틱 집게로 잡아둔 포장도 각도까지 같았다.
며칠째 반복되다 보니까 패턴이 보이더라. 내가 올 때마다 (대략 밤 11시~12시 사이) 야식 코너의 가장 눈에 띄는 “신제품처럼 보이는” 구성이 바뀌어 있었다. 예를 들면 월요일에는 매운맛 라면이 2열 가운데에서 딱 시선 높이로 서 있고, 화요일에는 그 자리가 다른 브랜드로 바뀌어 있었다. 누가 일부러 날짜에 맞춰 돌려놓는 것 같았는데, 그렇다고 직원들 손길 같진 않았어. 직원들은 보통 바쁜 시간에 정리도 대충 하고 지나가거든.
나는 그 편의점이 동네에서 제법 오래된 곳이라, 매대 진열 방식도 다들 익숙한 줄 알았어. 그런데 진열이 너무 “정돈”돼 있어서 오히려 자연스럽지 않았다. 특히 삼각김밥은 한 개씩 포장을 바꿔 끼운 것처럼 줄이 정확했어. 간혹 손님이 산 뒤에 남은 건 구겨지거나 비뚤어진 흔적이 남기 마련인데, 다음 날 보면 흔적이 싹 사라져 있었다. 그게 신기해서 한 번은 카운터 근처에서 직원한테 “야식 코너 매일 새로 정리되던데 누가 하세요?”라고 물어봤지.
직원은 웃으면서 “저희가 들어오면 바로바로 맞춰요. 손님이 정리해주기도 하고요.” 이렇게만 말했어. 근데 그 말이 좀 헛돌았어. 내가 본 건 “맞춘 정도”가 아니라, 거의 리셋에 가까운 느낌이었거든. 게다가 보통 편의점은 새 상품을 넣을 때 기존 상품을 완전히 뽑아내지 않잖아. 그냥 밀어 넣고 전면만 정리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거긴 전면뿐 아니라 뒤쪽 구성까지 매번 바뀌어 있었어.
어느 날은 내가 계산하고 나오는 길에 진짜로 뭔가를 봤다. 화장실 방향으로 돌아서기 직전, 야식 코너 쪽 유리 진열창에 비친 그림자가 짧게 움직였거든. 가게 내부 CCTV 사각일지도 몰라. 하지만 내 눈에는 “누가”가 있었던 게 맞아. 다만 얼굴을 본 건 아니야. 대신 손만 떠올라. 장갑 낀 손 같은 게, 제품을 집어 들고 바로 “정확히” 같은 각도로 내려놓는 손놀림.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딱 기계처럼 일정한 리듬으로.
그날 이후로 나는 일부러 일부러 그 코너를 오래 봤다. 이상하게도 매대 앞에 서면, 뒤쪽 선반에서 종이 같은 소리가 아주 작게 났어. “슥” 하고 넘기는 소리랄까. 직원들은 그 시간에 보통 계산대 뒤에서 재고를 확인하느라 바쁘지, 진열장 뒤를 저렇게 오래 들여다보진 않거든. 나는 속으로 ‘혹시 야간에 누가 알바 더 있는 건가’ 싶어서, 다음 날 영수증을 잘게 접어 가져가며 시간을 맞춰 봤어. 밤 11시 40분쯤이면 항상 정리된 모습이 그대로 유지돼 있었고, 내가 5분만 늦게 오면 이미 다 끝난 상태였어.
그러다 한 번은, 내가 산 제품이 다음 날 다시 “새 제품처럼” 제자리에 들어가 있는 걸 확인했어. 분명 내가 어제 오후에 집어 든 컵라면이었는데, 오늘은 포장 비닐에 작은 주름이 하나도 없더라. 내가 어제 샀던 건 분명 손으로 집으면서 주름이 생겼거든. 혹시 매대가 교체됐나 싶어 날짜를 봤는데, 날짜는 그대로였어. 누군가가 내가 손댄 자리를 되돌려놓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 뒤로는 아예 야식 코너에서 손을 뻗는 게 조심스러워지더라.
결국 나는 어느 밤엔 그냥 안 샀어. 계산대 앞에서 마음이 이상하게 굳어지는 느낌이랄까. 제품을 집는 순간 “정렬”이 풀릴까 봐 겁이 났던 거야. 가끔은 괜찮다 싶다가도, 진열된 라벨을 보는 순간 이상하게 시선이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거든. 그래서 그날은 그냥 편의점 도시락 냉장칸 쪽에서 다른 걸 골랐어. 그런데 집에 와서 문득 생각이 들더라. 만약 누가 매일 새 것처럼 정렬해 둔 게 단순한 청결 습관이라면, 왜 굳이 내가 사다 만 흔적까지 지워버릴까?
며칠 더 지나고 나서, 나는 그 코너를 “편의점 야식 코너”라고 부르지 않게 됐어. 그냥 어떤 약속된 자리처럼 느껴지더라. 누가 했는지 몰라. 직원도 아니고 손님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한 설명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다만 내가 밤마다 거길 보면, 내 선택이 다음 날의 줄 사이에 무언가로 남아 있는 것 같은 기분만 계속 남아. 오늘도 들어가면, 또 새 제품처럼 가지런히 서 있겠지. 그게 내가 사는 걸 기다리는 건지, 아니면 내가 모르는 사이에 이미 뭔가를 “정렬”당하고 있는 건지… 아직도 모르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