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에서 기사님이 ‘여기서부터는 걸어가야 해요’라고 말했어
택시에서 기사님이 ‘여기서부터는 걸어가야 해요’라고 말했어. 처음엔 그냥 목적지 근처가 좁거나 공사 중이라서 그런 줄 알았지. 근데 그 말이 이상하게도 너무 단정했어. 마치 “여기서는 차량이 못 가요” 같은 안내가 아니라, 내가 꼭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규칙처럼 들렸거든.
그날 비가 살짝 왔고, 나는 늦은 저녁에 약속 장소를 향해 택시에 탔어. 목적지는 역에서 몇 블록 떨어진 골목 쪽이었는데, 기사님은 내 주소를 듣고는 “네, 알겠습니다” 하고는 내비에 길을 찍기 시작했어. 그런데 출발하고 몇 분 지나지도 않았는데 기사님이 뜬금없이 한 번 더 말하더라. “여기서부터는 걸어가야 해요.”
나는 “네? 갑자기요?” 하고 되물었고, 기사님은 백미러를 한 번 스치듯 보더니 계속 운전했어. 표정은 평소처럼 무심했는데, 말투만 유독 단단했지. “차가 들어가면 안 돼요. 손님이 내리셔야 해요.” 그 순간 나는 ‘아, 이 기사님이 규정 같은 걸 너무 신경 쓰나 보다’라고 생각했어. 택시 기사들 중에 이런 분들 가끔 있잖아. 골목이 좁거나, 민원 들어오거나.
근데 문제는 “내리셔야 해요”라는 말이 너무 구체적이었어. 기사님이 갑자기 차선을 바꾸고, 내비도 아닌 다른 길로 유도하더라고. 역 방향으로 가는 길이 아니라, 내가 보기엔 지도에도 잘 안 나오는 듯한 어두운 골목으로 들어섰어. 가로등은 끊어져 있고, 가끔씩 가게 간판이 깜빡이는데 그 빛이 차창에 줄무늬처럼 번졌지.
나는 웃으면서 “여기서 걸으면 한참인데요” 했어. 그러자 기사님이 아주 짧게 숨을 내쉬더니, “여기서부터는 걸어가야 해요. 그리고…” 하고 말을 멈췄어. “그리고 뭐요?”라고 묻기도 전에, 기사님이 말없이 오른손으로 계기판 옆을 톡톡 두드렸어. 그 손가락 끝이 계기판을 치는 소리가 이상하게도 또렷하게 들렸어.
그때 차 안 공기가 이상하게 눌린 느낌이 들었어. 비가 와서 그런가 싶었는데, 창문은 젖지 않았고 에어컨 바람도 미세하게 막혀 있는 것 같았어. 나는 뒤늦게 기사님을 보려고 했는데, 백미러에는 기사님 얼굴이 잠깐 비치고는 곧바로 어두워졌어. 마치 누가 각도를 딱 맞춰 가리고 있는 것처럼. 그리고 기사님이 갑자기 속도를 줄이면서, 차를 완전히 세우진 않고 길가를 아주 살짝 비켜 세웠지.
“내리세요.” 기사님이 그렇게 말하자, 차 문 잠금이 바로 풀렸어. 나는 순간적으로 거칠게 “카드 결제는요?”라고 했는데, 기사님은 대답 대신 계기판을 한번 더 쳐다보더니 “현금이 편해요”라고만 했어. 나는 지갑을 꺼내려다가 멈췄어. 내 손 위로 뭔가 얇은 것이 스치듯 지나간 느낌이 들었거든. 분명 차 안이었는데도 손등이 차갑게 굳는 느낌. 비 냄새랑 섞인 금속 냄새가 잠깐 확 올라왔고, 그 다음엔 아무 냄새도 안 났어. 너무 빨리 사라져서 내가 잘못 느꼈나 싶지만, 몸은 이미 반응하고 있었지.
나는 결국 문을 열고 내렸어. 차가 멈춘 건 아니고, 엔진 소리만 낮게 깔려 있었어. 골목은 생각보다 더 좁았고, 바닥은 물기보단 먼지처럼 보였는데 발을 디디면 소리가 이상하게 ‘푹’ 하고 죽더라. 뒤돌아보니 기사님은 창문을 내리지도 않은 채 앞만 보고 있었어. “혹시 위치가 잘못된 거면 다시 돌아가요?”라고 묻자, 기사님은 끝내 대답하지 않았고 대신 깜빡이를 켜지도 않은 상태로 천천히 출발했어.
그런데 이상하게, 택시는 출발한 방향이 내가 알고 있던 길이 아니었어. 골목 입구로 나가야 할 것 같은데, 차는 그 반대로 아주 깊은 쪽으로 미끄러지듯 사라졌어. 나는 얼른 휴대폰을 켰지만, 지도 화면이 이상하게 계속 회전만 하고 위치가 잡히질 않았어. 신호가 나쁜 건지 싶었는데, 평소엔 잘 잡히던 데이터가 그때만은 ‘없음’처럼 보였어. 그리고 더 찝찝했던 건, 골목 끝에서 누군가가 걷는 소리가 들린다는 거였어. 발소린 분명히 있었는데, 사람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어.
나는 빨리 약속 장소로 가려고 뛰다시피 했어. 근데 중간에 길이 한 번 끊긴 것처럼 느껴졌어. 분명히 지나온 골목인데, 어느 순간엔 벽이 더 가까워져 있었고, 내가 방금까지 보던 담벼락이 아닌 다른 재질의 벽이 눈앞에 서 있었거든. 뒤를 돌아봐도 같은 길인데도 방향감각이 뒤틀리는 느낌이었어. 그때야 나는 택시 기사님 말이 그냥 “걸으세요”가 아니라, ‘여기서부터는 네가 걸어야 한다’는 뜻처럼 들렸어.
마침내 목적지 앞에 도착했을 땐, 나는 손이 떨려서 초인종 버튼을 제대로 못 누를 뻔했어. 약속한 사람은 늦어서 미안하다며 웃고 있었고, 내 표정이 이상했는지 “다 괜찮아?”라고 물었지. 나는 괜찮다고 했지만, 집에 돌아오는 길에 문득 택시에서 내린 지점 생각이 계속 났어. 기사님 얼굴이 또렷하게 떠오르진 않는데, 그 문장만 선명했어. “여기서부터는 걸어가야 해요.” 어떤 날은 단순한 말로 끝나야 하는데, 그날만은 이상하게도 그 말이 내 등 뒤에 계속 남아 있는 것 같더라. 지금도 가끔 비 오는 날, 골목에서 누가 먼저 말 걸어오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그때마다 나는 본능적으로, 대답하기 전에 먼저 걸을 준비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