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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복사기에서 출력은 됐는데 용지엔 내 이름이 없었다

2026-06-27 20:29:11 조회 1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월요일 아침, 회사 복사기 앞에서 내가 제일 먼저 한 건 “오늘도 출력부터 뽑자”는 마음이었어. 밤새 정리해둔 서류를 복사하려고 스캔 유리에 올려놓고, 매수랑 배율만 맞춘 다음 시작 버튼을 눌렀지. 그런데 신기하게도 출력은 바로바로 됐는데, 막상 용지에 찍힌 건 내 이름이 아니라 엉뚱한 글자들이 섞여 있었어. 처음엔 내가 잘못 설정했나 싶어서 다시 확인했는데, 복사기가 찍어낸 듯한 글자체와 위치가 너무 딱 맞아서 오히려 더 소름이 났다.

내 이름이 들어가야 할 자리에는 “총무팀”이라고만 찍히거나, 어떤 날은 ‘관리’ 같은 짧은 단어가 들어가 있었어. 분명 나는 성명란을 선택했거든. 복사기 화면에도 “인쇄자: (내 이름)” 같은 미리보기 문구가 잠깐 떴는데, 실제로는 종이마다 이름이 달라졌어. 그 순간 복사기 옆에서 커피를 마시던 대리가 “어? 출력 잘 되네” 하고 말하더라. 나는 웃으며 괜찮다고 했지만, 손끝이 살짝 차가워지는 걸 느꼈어.

그래도 일은 해야 하니까, 나는 급하게 설정을 다시 잡았어. 원본 서류에 적힌 서식이 혹시 잘못된 건가 싶어서 스캔을 처음부터 다시 하고, 옵션에서 “주석/식별정보 삽입” 항목을 껐던 다음 켜봤지. 결과는 더 이상했어. 껐다가 켠 사이에, 복사기는 내 이름 대신 다른 사람의 이름을 찍어주기 시작했거든. 내가 아는 직원들 이름이 순서대로 바뀌는 것 같았고,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글자 위치도 미세하게 흔들렸어. 마치 누군가가 일부러 맞춰 보는 것처럼.

그날 오후에 나는 프린터 관리 담당에게 물어봤어. 보통 복사기들은 “사용자 추적” 같은 걸로 로그를 남겨서, 누가 어떤 옵션으로 뽑았는지 남더라. 그런데 담당자가 로그를 확인하더니 말이 길어지더라. “이 장비는 계정 연동이 돼 있어서 원래는 네가 뽑으면 네 이름이 떠야 해. 그런데 오늘 오후 2시쯤부터는 로그에 공백이 있어.” 공백.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그 공백이 단순한 시스템 오류가 아니라 뭔가를 삼킨 것 같다고 느꼈어.

내가 더 이상하게 느낀 건 그 다음이야. 복사기에서 출력된 종이를 보관함에 넣으려고 집어 들었는데, 종이 가장자리에서 아주 희미한 잉크 냄새가 아니라… 습기 같은 냄새가 났어. 사무실 공기랑 다른 결이었지. 그리고 종이 위 글씨가 일정하지 않아서, 어떤 페이지는 내 이름이 “거의 보이는데” 정확히는 안 보이는 상태로 인쇄돼 있었어. 눈을 가까이 대면 보이고, 뒤로 물러나면 사라지는 느낌. 마치 누가 빼놓고 다시 넣었다가, 다시 숨긴 것처럼.

다른 날에도 비슷한 일이 이어졌어. 나는 복사기를 쓰지 않으려고 했는데, 담당자가 급히 문서 복사하라고 해서 결국 다시 사용하게 됐거든. 이번엔 이름이 아예 안 찍혔어. 대신 하단 여백에 작은 숫자가 반복해서 박히더라. 3자리 숫자였는데, 이상하게도 내 입사일과 비슷한 구성이었어. 숫자를 확인하려고 메모를 해뒀는데, 다음 날 그 종이를 찾으니까 그 숫자가 다른 숫자로 바뀌어 있었어. 종이 자체는 똑같이 보이는데, 내용만 달라진 거야.

나는 그제야 복사기 설정을 하나씩 뜯어봤다기보다, 그냥 메뉴를 천천히 훑어봤어. 사용자 식별 관련 항목이 여러 개 있었고, 그중 어떤 항목은 관리자 권한이 필요하다고 뜨더라. 그런데 누가 봐도 관리자 화면처럼 보이는 설정값이 그대로 저장돼 있었어. 게다가 설정값 변경 시간은 “오늘 새벽”으로 찍혀 있었는데, 그 시간에 나는 물론 아무도 복사기를 켜지 않았다고 했지. 새벽에 보통은 전산실만 조용히 돌아가고, 사무실은 완전히 꺼져 있거든.

그래서 나는 결국 사소한 행동을 했어. 복사기 옆 서랍에 항상 들어있는 종이 확인용 스티커가 있길래, 그걸 이용해 “내 이름이 찍히는지” 시험을 한 번 더 해본 거지. 이번엔 아주 작은 조각만 출력해서, 이름 삽입 옵션을 확실히 선택하고 시작했어. 그런데 출력된 조각에는 내 이름이 찍혔는데, 이상하게도 글자 사이가 아주 미세하게 벌어져 있었고, 내가 평소 쓰는 성씨와 마지막 획 방향이 살짝 달랐어. 틀린 수준이 아니라, “거의 맞는데 일부러 어긋낸 듯한” 느낌.

그날 밤, 퇴근하고 집에 가서도 자꾸 복사기 생각이 났다. 다음 날 출근하면 더 확실히 확인해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아침에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복사기 위에 있던 “사용자 안내 스티커”가 새로 붙어 있더라. 누가 붙였는지 모를 만큼 깔끔했고, 내용은 단 한 줄이었어. “출력에 이름이 보이면, 당신이 먼저 읽어야 합니다.” 나는 그 문장을 보고 웃어버렸는데, 웃는 동안 목이 좀 답답해졌어.

그 뒤로 나는 복사기를 쓰기 전에 화면을 한 번 더 확인하게 됐어. 출력이 되든 안 되든, 종이에 내 이름이 나오든 다른 사람이 나오든, 무엇보다도 “확인” 버튼을 누르기 전에 내가 스스로를 먼저 점검하게 되는 버릇이 생겼다. 물론 우연일 수도 있지. 다만 그 복사기에서 이름이 사라졌다 나타나는 방식이, 마치 누군가가 내 기억의 위치를 미세하게 조정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지금도 가끔은, 복사 버튼 누르기 직전에 내 이름이 아니라 누가 내 자리에 앉아 있을지부터 떠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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