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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 약 봉투가 조제실이 아닌 병실로 먼저 도착해

2026-06-28 04:29:11 조회 0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병원에서 약 봉투가 조제실이 아닌 병실로 먼저 도착해.

처음엔 단순 배송 실수인 줄 알았어. 응급실에서 병실로 옮긴 날, 간호사가 “약 봉투는 곧 조제돼서 가져가실 거예요”라고 말했거든. 그런데 문제는, 그 말이 끝나자마자 병실 문 앞 벨이 먼저 울렸다는 거야. 누가 “약입니다” 하고 호출하는 목소리가 들리는데, 조제실에서 내려온 사람도 아니고, 약 냄새 같은 게 아니라 그냥 종이 봉투 들고 서 있는 낯선 직원이더라.

직원이 내게 내밀면서 환자명과 병실 호수를 확인했어. 간호사 호출대 쪽에 있던 간호사도 그 순간 멈칫하더라고. “어? 조제실에서 아직….” 하고 말을 잇는데, 직원은 “전산 확인돼서 병실로 먼저 들어갔습니다”만 하고 바로 뒤돌아 나가버렸어. 봉투엔 약국 도장도 찍혀 있었고, 처방전 번호까지 적혀 있었는데, 그 시점에 조제실이 그 약을 만들고 있을 시간이 전혀 없었거든.

나는 괜히 찝찝해서 봉투를 뜯어 보지 말고 간호사한테 확인해 달라고 했어. 간호사는 봉투를 손바닥으로 한 번 쓸어내리듯 만지더니, 조제실에 전화부터 걸었어. 통화가 길어지는 동안 간호사 얼굴이 점점 굳더니 결국 “네, 방금 환자분 병실로 이미 전달된 걸로 뜨는데요… 저희 쪽에서 아직 접수도 안 됐는데요”라고 말하더라. 전화 너머에서 “전산이 그런 건지, 오배송인지…” 같은 말이 이어졌고, 간호사는 한동안 말을 못 잇고 그냥 서 있었어.

그 다음부터가 진짜 이상해졌어. 간호사는 내 차트를 다시 확인하더니, 내 처방 내역이 전날 밤에 이미 한 번 뜬 적이 있다고 하더라고. 근데 전날 밤에는 내가 약을 받았던 기억이 없어. “그럼 전날에 누가 받았던 거야?”라고 물으니까, 간호사가 잠깐 내 눈을 피하더니 “같은 병실이라서요… 동명이인일 수도 있고요”라고 얼버무렸어. 그래도 내 병실에는 나 말고 같은 성이랑 이름 일부가 겹치는 환자가 없었는데.

오후가 되고 나서야 진짜로 약이 조제돼서 내려왔어. 그런데 그 봉투는 내가 아까 받은 봉투와 똑같이 생겼는데, 도장 위치랑 글자 크기만 미묘하게 달랐어. 간호사는 두 봉투를 나란히 놓고 비교하더니, “이건… 조제실에서 만든 게 맞는지부터 다시 봐야겠어요”라고 낮게 말했어. 그 말이 끝나자마자 간호사 표정이 더 굳더니, 급히 약 보관함 쪽으로 가서 서류를 챙기고는 내게 “혹시 아까 받은 봉투는 버리지 말고 그대로 두세요”라고 했어.

난 버리지 않았지. 그냥 침대 옆 의자에 올려뒀어. 그런데 잠깐 화장실 다녀오려고 문 열고 들어오는 사이, 봉투가 있는 자리에 아무것도 없더라. 누가 가져갔냐고 물었더니, 간호사는 내가 없는 사이에 누가 들어온 적이 없다고 했고, 간호사 호출로도 기록이 안 남아 있대. 대신 그때 누군가가 병실로 들어온 걸로 전산이 찍혔는데, 그 ‘누군가’가 누구인지 확인하려고 하니 접근 권한이 없어서 조회가 안 된다고 했어.

며칠 뒤에 조제실 쪽에서 누가 내려와서 “전산 오류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어. 하지만 내가 받은 봉투에는 이미 환자명과 병실 호수까지 적혀 있었잖아. 전산 오류라면 적어도 병실 호수는 달라야 정상인데, 호수가 똑같았어. 더 웃긴 건, 그들이 “오배송이면 보통 다른 병실로 가는데 여기랑은 연결이 안 됐다”는 식으로 설명을 하면서도, 정작 어떤 경로로 내 병실에 먼저 도착했는지는 끝내 말을 흐렸어.

밤에 잠이 안 와서 벽 쪽 시계를 보는데, 로비에서 문 열리는 소리가 계속 났어. 간헐적으로 ‘탁’ 하고 가방을 놓는 소리랑, 종이 봉투가 바닥에 스치는 듯한 소리가 들렸거든. 이상하게도 그 소리는 항상 내가 아까 받은 봉투가 사라진 시간대랑 비슷한 간격으로 반복됐어. 그래서 나는 그때부터 생각이 꼬이기 시작했어. 혹시 누군가가 약을 “미리” 보내는 게 아니라, 이미 한 번 처리된 걸 다시 돌려놓는 방식이라면… 지금 내 병실은 그 과정의 중간 어딘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결국 퇴원할 때 간호사가 마지막으로 내 차트를 정리하면서 내게 짧게 말했어. “아까 그 일은 다시는 안 생기게 조치할게요. 대신 혹시라도 또 이상한 봉투 받으면, 바로 직원 부르지 말고… 그냥 조용히 연락만 하세요.” 무슨 연락인지 구체적으로는 안 했는데, 그 목소리가 너무 조용해서 더 무서웠어. 지금도 가끔 약 봉투를 받을 때마다, 종이가 손에 닿기 전에 이미 어딘가에서 한 번 ‘도착’해버린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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