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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집 부엌 창문에 김이 서리기 시작한 날

2026-06-28 08:29:11 조회 0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시골집 부엌 창문에 김이 서리기 시작한 날, 이상하게도 그 김이 너무 “빨리” 차올랐어요. 평소엔 아침에 물 끓이거나 설거지하면 하얗게 번지는데, 그날은 난로도 덜 피워 둔 것 같은데도 유리창 안쪽부터 하얀 막이 생기더라고요. 저는 처음엔 환기 문제인가 했는데, 막이 스르륵 늘어나면서 창문 한가운데만 유독 진하게 번졌습니다.

그때가 아마 11월쯤이었나 봐요. 부엌 창문은 나무틀이어서 틈이 좀 있는 편인데, 이상하게도 바람이 들어오는 소리는 없었어요. 대신 창문을 손가락으로 살짝 건드리면, 김이 아니라 얼음결 같은 감촉이 손끝에 걸렸습니다. 마치 누가 안쪽에서 얇게 서리를 붙여 놓은 것처럼요. 저는 그냥 닦으면 되겠다 싶어서 행주를 꺼냈는데, 유리에 대고 문지르자마자 김이 더 짙어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닦아내면 닦아낼수록 하얀 자국이 다시 자리 잡는 게 반복됐거든요. 처음엔 “응, 습기”라고 넘겼는데, 그 하얀 막이 특정한 모양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창문 한가운데가 둥글게 남고, 주변만 안개처럼 번지면서 마치 작은 얼굴 윤곽처럼 보이는 거예요. 정말 기분 탓일 수도 있는데, 이상하게도 그 윤곽이 계속 같은 위치에 고정돼 있더라고요.

어머니는 부엌에서 뭔가를 하시다가 “창문 틈으로 바람 들어오면 그래”라고 하셨어요. 근데 어머니 말대로라면 시간이 지나면 줄어들어야 하는데, 그날은 새벽부터 오전까지 점점 더 두꺼워졌습니다. 저는 불편해서 거실로 나와 차를 마셨고, 어머니가 “눈 오는 날엔 원래 그래”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데, 그 말이 자꾸 뒤로 밀려났어요. 창문은 눈이 오기 전부터 그렇게 서리고 있었거든요.

점심쯤엔 제가 직접 확인했어요. 부엌 문을 닫고, 창문 바깥을 보려고 살짝 열어 봤는데 바깥은 평소처럼 어둡고 고요했어요. 마당 쪽엔 비닐하우스가 있고, 거기엔 낡은 호스가 걸려 있죠. 그런데 바깥 공기를 한 모금 들이켜는 순간, 이상한 냄새가 났습니다. 젖은 나무 냄새랑 비슷한데 그보다 한 박자 늦게 “차가운 금속” 같은 냄새가 따라오는 거예요. 냄새를 맡자마자 다시 창문 쪽이 신경 쓰여 돌아봤더니, 창문 안쪽에 새로 생긴 김이 바깥쪽에서 맺힌 것처럼 결이 예쁘게 이어져 있었습니다.

저는 겁이 나서도, 그렇다고 말로 꺼내기도 애매해서 그냥 손전등을 가져왔어요. 유리창에 빛을 비추면 대개 반사로 희미해지는데, 그날은 반대로 유난히 선명해지더라고요. 유리 안쪽에서 뭔가가 “비치는” 느낌이 있었어요. 정확히 말하면, 누군가가 창문 가까이에 서서 바깥을 보는 것처럼 시선이 한 점에 고정된 형태. 그 형태가 딱 부엌 안쪽의 저를 향하고 있는 것 같아서, 저는 손전등을 떨어뜨릴 뻔했습니다.

그때 어머니가 뒤에서 “왜 그래, 손 다쳤어?” 하고 물으셨어요. 보니까 제 손이 유리창 틈 근처에 붙어 있더라고요. 어머니는 제 손을 떼어내며 “너는 왜 자꾸 거기 만져”라고 웃었는데, 그 웃음이 조금 어색했어요. 웃는 와중에도 어머니 눈동자는 창문을 계속 피하고 있었거든요. 저는 어머니가 뭔가 알고 있는지 확인하려고 “어머니, 저거 왜 이렇게 빨리 서리 껴요?”라고 묻자, 어머니는 대답 대신 부엌 불을 크게 켰습니다.

불을 세게 켜자 김이 확 걷히는 게 정상인데, 그날은 반대로 더 퍼졌어요. 난로의 열기가 창문 쪽으로만 몰리는 것처럼, 유리 표면이 한 번 더 하얗게 젖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하얀 막 사이로, 방금 전처럼 둥근 윤곽이 다시 나타났습니다. 다만 이번엔 윤곽이 조금 아래로 내려오더라고요. 저는 목소리를 낮춰 “누가…”라고 거의 중얼거렸는데, 그 순간 창문 안쪽에서 아주 얕게—“톡”—하고 뭔가가 닿는 소리가 났습니다.

그 소리는 손가락 끝으로 유리를 톡 건드린 정도의 소리였어요. 세게 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냥 바람 소리처럼 자연스러운 것도 아니었고요. 어머니는 그제서야 한 발 물러서며 부엌 창문을 이불 조각 같은 걸로 가리기 시작했어요. “그만 봐”라고만 하더니, 부엌 창문 쪽으로는 절대 얼굴을 들이밀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날 이후로 어머니는 창문 얘기를 아예 피했고, 저는 밤마다 부엌 쪽만 지나갈 때마다 등에 식은땀이 났어요.

며칠 뒤에야 원인을 알 것 같았어요. 집 마당 쪽에 있던 낡은 호스가 비닐하우스 안에서 아주 조금씩 갈라져 있었고, 그 틈으로 새어 나온 물이 바닥을 적시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분명 물이 새는 건 몇 달 전부터였을 텐데, 왜 하필 그날만 창문이 이렇게 이상하게 서렸는지 이해가 안 됐습니다. 지금도 생각하면, 그날 창문에 김이 “서리기” 시작한 게 아니라, 이미 안에서 무언가가 먼저 자리를 잡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어요. 하얀 막이 걷히고 나면 남는 건 늘 같은 모양의 흔적이었고, 저는 그걸 볼 때마다 부엌이 아니라 제 시선이 먼저 차가워지는 느낌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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