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출근길에 비친 그림자가 내가 걷는 속도를 못 따라왔어
회사 출근길, 지하철역에서부터 빌딩까지 이어지는 길은 늘 똑같았다. 아침 8시 30분이면 신호등이 거의 같은 타이밍에 바뀌고, 편의점 앞 횡단보도 앞에서 사람들 발걸음이 한 번씩 부딪히는 소리도 똑같이 들렸다. 근데 그날은 달랐다. 출근하는데 내 발에 딱 맞춰 따라오던 그림자가, 어느 순간부터 내 속도를 못 따라오는 것처럼 보였다.
처음엔 착각인 줄 알았다. 아침이라 햇빛 각도가 낮아서 그런가 싶기도 하고, 앞사람이 들고 있던 종이봉투가 순간적으로 내 시야를 가렸겠지 하고 넘어갔다. 그런데 자꾸 신경이 갔다. 나는 횡단보도를 건너며 걸음을 늘렸고, 옆에서 같이 걷던 사람들도 속도가 맞춰졌다. 근데 내 뒤에 붙어 있어야 할 그림자는, 한 박자 늦게 따라오는 느낌이었다. 마치 내가 걷는 걸 “기다렸다가” 움직이는 것처럼.
역에서 빌딩까지 이어지는 길은 길지 않다. 편의점, 약국, 작은 카페가 있고 중간에 좁은 가로수길이 있다. 그날 나는 가로수길로 들어서자마자 더 선명하게 봤다. 내 그림자는 바닥에 닿아 있었는데, 내 발이 옮겨질 때마다 그림자 발이 아니라 그림자 전체가 미세하게 밀렸다. 발끝부터 따라오지 않고, 허리 쪽부터 늦게 따라오는 것 같았다. 나는 멈춰 섰다. 그러자 내 그림자도 멈춰야 정상인데, 그 빛은 그대로인데도 그림자는 덜컥거리는 것처럼 한 번 더 움직이고 멈췄다.
괜히 오싹해서 핸드폰을 꺼냈다. 날짜 확인하고, 출근 알림 확인하고, 아무 일 없는 척 하려고 스크롤을 내렸다. 그런데 스크롤을 내리는 동안에도 시야 가장자리에서 그림자가 계속 따라오고 있었는데, 이번엔 더 이상했다. 내가 고개를 살짝 왼쪽으로 돌리는 순간, 그림자는 그 방향으로 바로 안 돌아가고 조금 늦게 따라왔다. 고개를 돌려도 그림자가 “생각하고” 움직이는 느낌. 사람 눈 착각으로 설명하기에는 너무 반복적이었다.
나는 카페 앞에서 잠깐 멈춰 커피를 사려고 줄을 섰다. 앞사람이 결제하는 동안 내 옆에는 가로등도 없는데, 바닥에 드리운 내 그림자는 이상하게 길어져 있었다. 그림자의 어깨선이 내 어깨선보다 한 뼘 정도 뒤로 밀려 있었고, 팔이 아래로 내려오는 각도도 실제 내 팔과 다르게 보였다. 손을 올리면 그림자도 올려야 하는데, 손을 올리는 순간엔 그림자가 먼저 늦게 따라오고, 그 다음에 다시 맞춰졌다. 마치 누가 내 뒤에서 같은 동작을 연습하는 것처럼.
‘그냥 그림자 각도 때문이겠지’ 싶어서 일부러 더 크게 행동해봤다. 신호등에서 깜빡이는 초를 확인하려고 스마트워치 화면을 보려는 척 손목을 위아래로 움직였다. 그러자 내 그림자 손목도 움직이긴 했는데, 움직이는 속도가 느렸다. 그리고 이상한 건, 내 그림자가 움직이는 “사이”에 바닥이 잠깐 어두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꼭 그림자 아래에 무언가가 스치고 지나간 것처럼, 빛이 끊겼다 이어지는 느낌.
빌딩 앞, 회사로 들어가기 직전에서 나는 결국 뛰기 시작했다. 엘리베이터도 빨리 타고 싶고, 괜히 겁이 나서 속도를 올리면 맞춰지겠지 싶었다. 그런데 뛰기 시작하자마자 그림자는 더 늦어졌다. 나는 거의 달리다시피 했는데도 그림자는 따라오되, 바닥에서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 것처럼 미끄러졌다. 그리고 웃긴 건, 그 미끄러짐이 내 몸의 위치와 상관없이 일정했다는 거다. 내가 왼쪽으로 틀어도 그림자는 한 번 오른쪽으로 쓸렸다. 마치 어떤 선로 위를 따라가듯이.
나는 순간적으로 뒤를 돌아보려 했는데, 뒤를 돌아보는 용기가 나지 않았다. 만약 진짜로 내 그림자를 “쫓아오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 순간 확인하는 게 더 위험할 것 같았다. 대신 생각을 바꿨다. ‘그냥 빛이 이상한 거야. 조명이 흔들리는 거야.’ 그렇게 스스로를 설득하며 회사 유리문을 밀고 들어갔다. 문이 닫힐 때 유리창에 내 모습이 비쳤고, 그 안에서 내 그림자가 따라 들어오는지 확인했다. 근데 이상하게도, 유리문 안쪽에는 내 그림자가 없었다.
그날 하루는 내내 출근길을 떠올렸다. 점심시간에 창문가에 앉아 해가 바닥에 닿는 방향을 보려고 했는데, 점심 햇빛에서는 그런 현상이 없었다. 하지만 퇴근길에 다시 한 번 그 길을 걸어보려다 말았다. 대신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 로비로만 나갔고, 자동문을 나서자마자 바로 택시를 잡았다. 차 안에서 창밖을 봤을 뿐인데, 기사님이 “날씨가 갑자기 이상하네요”라고 말하자 순간 손끝이 차가워졌다.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차창에 비친 내 그림자가 잠깐 멈칫하는 게 보였거든. 내가 앉은 자세는 그대로였는데 그림자만 아주 미세하게 늦게 움직였다.
지금 생각해도 신기한 건, 그날 이후로도 내 그림자는 정상인 날이 더 많았다는 거다. 다만 어떤 아침엔, 출근길 초입에서 한 번쯤은 그 “한 박자 늦음”이 찾아온다. 나는 일부러 걸음을 줄이거나, 잠깐 멈춰서 맞추려 해본다. 맞춰지기도 하고, 안 맞춰지기도 한다. 그런데 맞춰지지 않는 날엔, 이상하게도 내 마음이 먼저 알아차린다. 내 그림자가 내 속도를 못 따라오는 게 아니라, 어느 순간부터 내가 그림자 쪽으로 맞춰지고 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