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 도어가 열리기 전부터 휙 하는 바람이 먼저 왔다
엘리베이터 도어가 열리기 전부터 휙 하는 바람이 먼저 왔다. 그날도 나는 야근 끝나고 12층에서부터 내려가는 중이었는데, 버튼을 누른 다음에 “딸깍” 소리가 나기 전에 이미 기분 나쁘게 찬 기류가 틀어박히듯 들어왔다. 마치 누가 문틈으로 바람을 뿜는 것처럼, 짧고 가늘게. 그리고 그 바람이 지나간 자리엔 이상하게도 손등이 먼저 소름이 돋았다.
처음엔 그냥 에어컨 배관이나 환기 문제겠지 싶었다. 아파트 엘리베이터가 오래됐다는 건 다들 알고 있었고, 가끔은 도어가 닫힐 때 “쉬익” 소리도 났다. 그런데 이번엔 타이밍이 너무 정확했다. 엘리베이터가 12층을 출발하기도 전에, 내 얼굴 옆을 스치는 바람이 먼저 들어오더라. 1초도 안 되는 시간인데, 체감은 한 번에 확 들이마신 공기처럼 생생했다.
나는 휴대폰을 보며, “이상하네” 하고 넘기려 했다. 그런데 차 안에 있던 공기 자체가 묘하게 바뀌었다. 방금 전까진 막힌 공간 특유의 냄새가 있었는데, 바람이 휙 하고 지나간 뒤로는 금속이 젖은 듯한 냄새가 났다. 문 손잡이 쪽에서만 희미하게 느껴졌고, 내가 손을 뻗기도 전에 이미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엘리베이터는 11층, 10층 하고 내려갔고, 나는 계속 버티다가 결국 경계심이 올라왔다.
내가 탄 엘리베이터는 CCTV가 있다는 표지가 붙어 있는 타입이었다. 그래서 보통은 누가 타도 티가 나지. 그런데 그날은 유독 “혼자 있는 것 같은데 누가 옆에 서 있는 것 같은” 감각이 같이 왔다.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유리벽 쪽 조명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리는 것 같았고, 나는 반사적으로 거울처럼 보이는 패널을 봤다. 아무도 없었다. 얼굴 비친 건 내 것뿐이었다.
도어가 열릴 층이 다가오자 그 바람이 다시 왔다. 이번엔 한 번 더, 더 가까운 쪽에서 휙 하고. 도어가 ‘열림’ 신호음을 내기 전에, 이미 문틈이 열릴 것처럼 공기가 앞쪽으로 끌려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무의식적으로 등을 문 쪽에 붙였다. 이상하게도 그 자세를 취하자마자, 목 뒤가 간질거렸고 숨이 약간 빨라졌다.
9층에서 도어가 열렸는데, 복도는 그대로 조용했다. 쓰레기 냄새도 없고, 누가 지나가며 들리는 소리도 없었다. 다만 엘리베이터 앞 복도에서 바람이 “빠르게 한 번” 휩쓸고 지나간 흔적 같은 게 보였다. 정확히 말하면, 바닥에 쌓인 먼지가 아니라 아주 얇은 종이조각들이 미세하게 움직였는데, 누가 발로 건드린 것도 아닌데 한 방향으로 쓸려 가더라. 종이조각은 거의 안 보일 정도로 작았는데, 움직임이 너무 규칙적이었다.
“혹시 환기구가 저쪽에 있나?” 하고 생각하면서도, 마음은 계속 불편했다.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아니라, 엘리베이터 바깥에서 안쪽으로 ‘미리’ 들어오는 느낌이었거든. 도어가 닫히면서 “쾅” 하는 진동이 오는데, 그 진동이 바람과 같은 타이밍으로 맞물리는 것 같았다. 나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바로 5층에서 내렸다. 밖으로 나서는 순간, 내 귀 뒤쪽이 따끔할 정도로 차가워졌다가 금방 풀렸다.
이후에야 이상한 소문이 떠올랐다. 우리 단지엔 이상하게도 “엘리베이터 바람 먼저 온다”는 말이 있었는데, 다들 웃고 넘기는 분위기였다. 예전에 누가 겪었다는 건지, 아니면 그냥 장난이 섞인 건지 아무도 확실히 말해주지 않았거든. 그런데 그날 난 그 말을 장난처럼 들을 수 없었다. 특히 “도어가 열리기 전”이라는 조건이 너무 똑같았어. 바람이 먼저 오고, 그 다음에 문이 열리고, 복도에 뭔가가 ‘한 번’ 움직이는 것까지.
며칠 뒤 엘리베이터 관리실 앞에 붙은 점검 안내문을 봤는데, 날짜가 내린 날과 겹치더라. ‘도어 센서 및 환기 배관 점검’이라고만 적혀 있었고, 구체적으로 뭐가 고장 났는지는 안 나왔다. 나는 그 문구를 보면서도 마음이 편해지지 않았다. 센서가 문제라면 왜 하필 바람이 먼저였을까. 그리고 왜 매번 내가 타기 직전처럼 타이밍이 맞을까.
가끔 아직도 그 바람이 떠오른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는 손끝이 차가워지는 것부터 시작해서, 도어 열리는 소리보다 먼저 “휙” 하고 공기가 스치고 지나갈 것 같은 예감. 그 예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는데, 적어도 나는 그 뒤로 문이 열리기 전까지는 절대 시선을 밖에 두지 않게 됐어. 바람이 먼저 오면… 뭔가가 이미 안쪽을 보고 있는 것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