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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거래로 산 렌즈통에 누가 촬영한 흔적이 남아 있었어

2026-06-30 08:29:13 조회 0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중고거래로 산 렌즈통에 누가 촬영한 흔적이 남아 있었어. 처음엔 그냥 먼지나 지문 정도겠지 했는데, 택배 뜯자마자 기분이 이상하게 굳더라. 렌즈통은 상태 좋다고 올라온 거 샀고, 외관은 멀쩡했는데 안쪽 스펀지 포켓이 유난히 반짝였어. 뭔가 닦지 않은 채로 오래 들어가 있던 무언가가 묻어 있는 느낌이랄까.

상자에서 꺼낸 순간부터 냄새가 났어. 새 제품 특유의 플라스틱 냄새가 아니라, 사진 찍고 난 뒤 가방에 넣어두는 그런 생활 냄새. 그리고 스펀지에 작은 얼룩들이 있었는데, 얼룩이 그냥 때가 아니라 동그랗게 퍼진 흔적처럼 보였어. 렌즈를 끼웠을 때 생길 수 있는 자국이겠거니 했는데, 왜인지 “누가 급하게 넣고 빼다가, 그 자리에 다시 손을 안 댄 상태” 같은 느낌이 들었어.

일단 집에서 스펀지를 털어내고 천으로 닦으려고 했는데, 렌즈통 뚜껑 안쪽에 얇게 눌린 자국이 보이더라. 금속 테두리 쪽에 손톱으로 긁은 것 같은 선이 아주 미세하게 여러 갈래로 겹쳐져 있었어. 내가 일부러 확인하려고 빛을 비추자 더 잘 보였고, 선들이 단순한 스크래치가 아니라 어떤 각도로 계속 같은 자리에 반복해서 눌린 것 같았거든.

그래서 혹시나 해서 렌즈통만 산 건지, 혹시 딸려온 구성품이 더 있는지 확인했어. 판매글엔 렌즈통 단품이라고 되어 있었는데, 비닐 포장 안쪽에 얇은 종이가 한 장 끼어 있었어. 낙서 같은 건 아니고, 메모지라기엔 너무 얇고 색이 바래서 누가 오래 써서 넣어둔 느낌. 거기에는 숫자와 짧은 문장 한 줄이 적혀 있었는데, 내가 제대로 읽기 전까지는 장난처럼 보여서 별 생각이 없었어.

근데 그 문장이 이상했어. “오늘 밤 3번, 창문 쪽에서.” 같은 식이었거든. 날짜도 없이, 장소도 없이 딱 그 정도로만 써놨는데, 숫자 3은 뭔가를 세었다는 뜻 같고 ‘창문 쪽’은 촬영 방향을 말하는 것 같았어. 나는 사진을 배워본 적도 없고, 그쪽 감각이 있는 사람도 아니라서 더 헷갈렸는데, 이상하게도 글씨가 너무 확신에 차 있었어. ‘망설이다 적은’ 게 아니라 ‘이미 해봤던 사람’이 적은 느낌.

그때부터 마음이 좀 이상해졌어. 렌즈통이 단순 보관품일 뿐인데, 누군가는 그 안을 단순히 렌즈를 넣고 빼는 용도로만 쓰지 않았다는 느낌이 들었거든. 더 웃긴 건, 렌즈통을 닫는 자석이나 잠금 부분이 조금 뻑뻑했는데, 그 뻑뻑함이 “새 제품이라서”가 아니라 “누군가 여러 번 급하게 열고 닫고 닫다, 결국 한 번은 제대로 닫지 못한 상태” 같은 느낌이었어.

그래서 결국 판매자에게 바로 연락했어. “렌즈통 안쪽에 메모가 들어있는데 혹시 구성품에 포함된 건가요?”라고 물었지. 답은 몇 분 뒤에 왔는데, 그냥 “아 그런 거 없을 텐데요, 확인해보겠습니다. 혹시 분실된 걸 제가 받았나 봐요.” 이런 식이었어. 근데 그 문장에서 제일 거슬리는 부분은 ‘분실된 걸 제가 받았나 봐요’였어. 마치 누군가의 흔적이 원래부터 오가고 있다는 말을, 본인도 모르게 인정한 것 같아서.

나는 괜히 더 캐고 싶어지다가도, 한편으론 멈추고 싶었어. 그래도 렌즈통을 자세히 보면 이상한 게 더 있었거든. 스펀지 가장자리에 아주 희미한 실 같은 게 한 올 붙어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까 실이 아니라 얇게 부서진 필름 조각처럼 보였어. 필름을 잘라서 렌즈 앞에 끼워봤던 사람의 잔재 같다는 느낌. 그래서 혹시나 싶어서 휴대폰 플래시로 비춰보니까, 스펀지에 작은 검은 점들이 규칙적으로 찍혀 있었어. 마치 누군가 특정한 프레임 위치에서 렌즈를 대고, 그 자리마다 눌러 확인한 흔적 같았고.

그래서 나는 결국 메모지 사진을 찍어두고, 판매자 말대로 “제가 이상한 거 받은 게 맞는지”만 더 물었어. 그런데 판매자는 답이 늦어졌다가, 갑자기 “혹시 사진도 같이 들어있던 건가요? 렌즈통이 다른 거래에서 섞였을 수도 있어서요.”라고 하더라. 그 말 듣고 등골이 서늘해졌어. 나는 렌즈통만 샀다고 생각했는데, 그 사람은 “다른 거래에서 섞였을 수도”라고 했거든. 그럼 그 메모도, 실처럼 보였던 조각도, 얼룩들도… 어느 순간부터 누군가의 촬영 흔적이 나한테 넘어온 거잖아.

이제 와서 생각하면, 그때 내가 제일 먼저 했어야 할 건 환불이었을지도 몰라. 근데 이상하게도 환불하려고 마음먹기 전에, 이미 내 머릿속엔 ‘어떤 장면을 찍던 사람’이 렌즈통을 들고 다니던 장면이 굴러가기 시작했어. 메모의 문장도 그렇고, “오늘 밤”이라는 표현도 그렇고, 창문 쪽에서 찍는다는 말까지. 어쩌면 그 사람은 감추고 싶어서 렌즈통만 따로 팔았을지도 모르고, 아니면 그냥 습관적으로 남겨뒀을지도 몰라. 근데 확인할수록, 내 렌즈통이 사진을 ‘담는’ 용도가 아니라 누군가의 ‘다음 행동’을 잠깐 보관하던 물건 같다는 생각만 커지더라.

결국 나는 렌즈통을 그대로 쓰지 못하고 서랍에 넣어두고 있어. 가끔 밤에 꺼내서 뚜껑을 열까 말까 망설이는데, 손이 먼저 움직이질 않아. 어쩌면 진짜로 아무 의미 없는 얼룩일지도 모르지. 근데 메모지에 남은 “창문 쪽에서”라는 말만큼은, 지금도 자꾸 눈앞에 붙어 있어. 렌즈통은 조용한데, 그 문장은 이상하게도 계속 소리 내는 것 같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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