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서 휴식시간에 내 자리가 아니라 내 이름이 적힌 자리로 이동됐어
휴식시간에 나는 늘 똑같이 내 말년병처럼 앉아 담배 냄새 섞인 공기를 마셨는데, 그날만은 이상하게도 “내 자리가 아닌데도 내 이름이 적혀 있는 자리”로 사람이 자꾸 옮겨졌다. 정확히는, 내가 앉으려고 자리 찾기도 전에, 누군가가 먼저 내 이름이 적힌 쪽을 슬쩍 비켜 주는 느낌이랄까. 처음엔 그냥 장난인 줄 알았다. 군대에서 그런 장난은 너무 흔하니까.
사건은 당직표 끝나고 첫 휴식시간, 막사 안 공기가 조금 풀리던 시간에 터졌어. 우리는 보통 체력훈련 끝나면 바닥에 줄 맞춰 앉고, 통제하는 간부가 돌아서면 다들 숨을 돌리잖아. 그런데 내 앞쪽 맨 끝줄, 내가 원래 앉는 자리 옆에 작은 종이 한 장이 붙어 있었어. 종이에는 검은 볼펜으로 내 이름이 또렷하게 적혀 있었고, 아래에는 “앉을 것”이라고 적혀 있었지. 진짜로 내가 볼 때도 그 필체가 내 이름이랑 똑같이 또렷해서, 누가 일부러 적었나보다 싶었어.
근데 중요한 건 그게 내가 아예 본 적 없는 위치였다는 거야. 원래 내 자리는 창가 쪽에서 두 번째 줄, 상자 뒤로 가려지는 곳이었거든. 그런데 종이가 붙은 자리는 반대쪽, 출입문 바로 앞이라 햇빛도 직격이고 사람 지나가는 동선이랑 겹치는 자리였어. 누가 그걸 굳이 내 이름으로 만들어 놨을까? 생각이 꼬이는데, 옆에 있던 후임이 갑자기 내 팔꿈치를 툭 쳤어.
“형, 저기 앉으세요. 그쪽이 편해요.”
나는 농담인 줄 알고 웃으려다가, 후임이 표정이 너무 진지해서 웃음이 걸렸어. 그리고 그 애가 내 이름이 적힌 종이를 손바닥으로 가리면서 아주 조심스럽게 말했어. 그 순간 이상하게 등줄기가 차가워졌는데, 군대 특유의 ‘대충 넘어가야 하는 분위기’가 아니라, 누군가가 이미 정해 놓은 흐름대로 내가 끼워지는 느낌이 들었거든.
그래서 일단 나는 “누가 붙였어?”라고 물어봤어. 내 물음에 후임은 말 대신 고개를 살짝 돌려서 천장 환풍기 쪽을 봤지. 그 표정이 ‘물어봐도 소용없다’는 얼굴이었어. 그리고는 곧바로 시선을 내 자리에 고정하고 아무 말도 안 했어. 그렇게 몇 초가 지나는데, 복도에서 구두 소리처럼 똑똑 걸어오는 소리가 들리더라. 간부가 돌아오는 소리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완전 병사들 구동 동선도 아니었어. 막사 안이 갑자기 숨을 죽인 것처럼 조용해졌어.
나는 결국 자리로 갔어. 종이가 붙은 자리로. 의자가 아니라 바닥에 줄 그어진 위치였는데, 막상 앉으니까 더 이상했어. 바닥이 평소보다 약간 더 따뜻했거든. 난방이 켜진 것도 아니고, 누가 손으로 데워놓은 것 같은 느낌. 그리고 내 눈앞에, 종이 옆에 아주 작은 종이 조각 같은 게 더 붙어 있었어. 거기엔 내가 오늘 아침에 썼던 메모 조각이랑 똑같은 글씨로, 숫자 몇 개가 적혀 있었어. “몇 시까지” 같은 말이 흐릿하게 보였는데, 분명 아침엔 내가 따로 떼서 치워야 했던 건데… 왜 여기 있지?
그때 누군가가 뒤에서 조용히 속삭였어. “앉았으면, 일어나지 마.” 목소리는 내 중대 누구도 아닌 것처럼 들렸는데, 그래도 어딘가 익숙했어. 나는 돌아보려 했는데 몸이 굳는 느낌이었고, 대신 입안이 바짝 마르면서 침 삼키는 소리만 크게 들렸어. 간부가 돌아오는 소리도 아닌데도, 막사 안 공기가 이상하게 ‘감시’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어. 마치 누군가가 이미 체크해 둔 것처럼.
휴식시간이 끝나갈 때쯤, 간부가 들어와서 우리 상태를 훑어보는데, 내 시선만 유난히 오래 머물렀어. 평소엔 그런 거 없었는데. 간부는 별말 없이 고개만 끄덕이고 나갔고, 그 순간 나는 깨달았어. 내가 장난을 당한 게 아니라, 내가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 사람으로 취급되고 있다는 걸. 이유는 모르겠지만, 내 이름이 종이로 ‘자리’에 고정되어 있으면 사람들은 그걸 자연스럽게 따라버린다. 군대에서 규칙이란 게 원래 그렇게 무섭지 않나.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시킨 것처럼 움직이게 되는 거.
그날 이후로도 이상은 이어졌어. 내 이름이 적힌 종이가 매번 다른 각도에서 발견됐거든. 누군가가 옮겨 붙이는 것처럼, 종이의 위치가 계속 바뀌어 있었어. 근데 그 종이를 붙인 사람이 누구인지 물어볼 틈이 없었어. 누가 지나가면 종이가 바뀌고, 내가 멈칫하면 또 다른 자리로 유도됐어. 무엇보다, 내가 앉으려는 순간보다 먼저 내 자리가 아닌 곳에 내 이름이 먼저 나타나는 느낌이 들었어. 마치 내가 결정하기 전에 누가 결정을 해버리는 것처럼.
마지막으로 가장 소름이 돋았던 건, 정리정돈 시간에 누가 종이를 떼어내려고 하다가 손을 멈췄다는 거야. 그 애가 종이를 떼려는 순간 손끝이 떨리더니, 종이를 떼지 않고 그냥 바닥에 다시 붙여 놨어. 그리고 아주 낮게, 거의 혼잣말처럼 이런 말을 하더라. “이건 사람이 붙이는 게 아니야.” 그 뒤로 나는 그 말이 뭔지 설명 못 하겠는데도, 내 등 뒤가 계속 간질간질했어. 그 휴식시간에 내 자리가 아니라 내 이름이 적힌 자리로 이동됐다는 건, 실수로 따라간 게 아니라… 내가 이미 누군가의 ‘다음 순서’에 들어가 버린 거 아닐까 싶어서 지금도 가끔 생각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