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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기사님이 ‘여기 주민등록증 보여주세요’라고 말했어

2026-07-02 08:29:13 조회 1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배달기사님이 ‘여기 주민등록증 보여주세요’라고 말했어. 그 말이 농담처럼 들렸는데, 이상하게도 내 손에 쥔 휴대폰이랑 문 앞의 열쇠 구멍만 계속 신경 쓰이더라. 나는 분명 주문할 때 비밀번호나 추가 확인 같은 건 설정 안 했거든. 그냥 “현관 앞에 두고 가세요” 요청만 해뒀어.

그날도 평소처럼 택배함 말고 집 문 앞에 내려놓는 방식이었어. 문 열고 있던 것도 아니고, 초인종 버튼을 눌렀을 때부터 이미 통화가 시작된 느낌이었어. 배달기사님 목소리가 스피커 너머로 또렷하게 들렸는데, “여기요. 주민등록증 보여주세요. 아니면 현금 결제로 바꿔야 합니다.”라고 하더라. 나는 잠깐 멈칫했지. 배달이 왜 주민등록증이 필요하지?

난 그냥 내가 시킨 사람이 맞고, 주소도 내 집이고, 전화번호도 앱에 뜨는 걸로 연결된 건데 왜 신분 확인을 하냐는 생각이 먼저 들었어. 그래서 “무슨 절차가 있나요? 앱에 그런 안내가 없는데요.”라고 말했더니, 상대가 말을 끊고 “여기 주민등록증 보여주세요. 저 지금 기록 남기고 있어요. 안 그러면 반송 처리합니다.”라고 했어. 반송이라니, 뭘 반송한다는 건지 더 어리둥절했어.

그때부터 이상한 게 하나 둘 보였어. 기사님이 문 앞에 서 있는 동안, 나는 창문 커튼 틈으로만 상황을 봤거든. 그런데 기사님 손이 휴대폰 화면을 계속 위아래로 움직이더니, 마치 누군가에게 실시간으로 뭘 보여주는 것처럼 고개를 자꾸 갸웃했어. 설마 이게 “인증” 같은 걸 하는 건가 싶었는데, 문제는 내가 문을 열어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아니었단 거야. 나는 현관 앞 수령 옵션을 써놨는데.

그래서 나는 “잠깐만요. 저는 앱에서 요청한 대로 두고 가주시면 됩니다. 주민등록증은 보여드릴 수 없어요.”라고 했어. 그러자 기사님이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면서 “그럼 제가 사진 찍어야 합니다. 신분증 가리고 찍는 거예요. 보여주는 것보다 편해요.”라고 하더라. 사진을 찍는다고? 신분증을? 그 말 듣는 순간, 머릿속에서 딱 한 가지가 떠올랐어. 예전에 인터넷에서 신분증 사진을 받아서 이것저것 하는 사례들 봤던 기억. 근데 그때는 남의 얘기 같았지.

나는 일부러 더 침착하게 굴었어. “기사님, 그건 제 개인정보라서 안 됩니다. 결제도 이미 끝났고요. 앱에 있는 절차대로 처리해 주세요.”라고 하니까, 기사님이 한 박자 쉬더니 “그러면 저도 일 못 합니다. 고객센터로 전화할게요. 지금 안 주시면 제가 처벌받아요.”라고 했어. 그 말이 너무 그럴듯해서 더 무섭더라. 상대가 뭔가를 알고 있는 것처럼 들렸거든. 하지만 나도 앱 화면을 몇 번이고 다시 봤어. 어디에도 주민등록증 확인 절차가 없었어.

나는 결국 문을 열지 않았고, 초인종 옆 작은 인터폰으로만 통화했어. 기사님은 “문 열어주세요. 사진만 찍으면 끝입니다.” “지금 늦으면 시간 지나서 자동 반송됩니다.” 이런 말만 계속 반복했어. 그때 휴대폰 알림이 하나 떠. 배달 앱에서 “수령 확인이 필요합니다” 같은 문구였는데, 시간이 딱 그 통화 타이밍이랑 맞았어. 나는 그제야 찝찝함이 확 올라왔어. 누가 앱을 임의로 조작한 건가, 아니면 기사님이 시스템처럼 말하는 걸 내가 믿게 만들려는 건가. ‘확인 필요’가 갑자기 생긴 타이밍이 너무 불길했어.

잠깐 고민하다가, 나는 바로 앱 고객센터 연결 버튼을 눌렀어. 그리고 기사님에게 “지금 고객센터 연결할 테니 통화 기록 남기고 진행하세요. 저는 신분증 사진 제공 안 합니다.”라고 말했지. 그 순간 기사님 말투가 확 바뀌었어. 방금 전까지는 급하고 확신에 차 있던 사람이, “아, 고객센터요? 네. 고객센터에 말해보세요. 저는 여기서 기다릴 수가 없어서요.” 하고는 한 발짝 물러서는 소리가 들렸어. 현관 앞이 조용해지더니, 진짜로 배달 완료 처리 시간이 보이기 시작했어.

그렇게 반송될 뻔했는데, 다음 날 새로 주문해 달라는 안내가 뜨더라. 어이가 없어서 고객센터에 문의했더니 상담원이 “해당 건은 수령 확인 관련 메시지가 있어 기사님이 요청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라고 하더라. 가능성이라니. 내가 앱을 볼 때 그런 메뉴가 없었는데, 왜 상담원 말이 그렇게 뭉개졌는지 알 것 같았어. 그때부터 더 찝찝해졌어. 주민등록증 사진을 “가리고 찍는다”는 말이 계속 머릿속에 남았거든.

며칠 뒤, 우연히 내 주민등록증 관련해서 카드사나 통신사에서 추가 인증하라는 문자가 온 적이 있어. 바로 결제하려던 건 아니라서 확인만 하고 끝냈는데, 문구가 묘하게 비슷했어. 누군가가 내 정보를 손에 넣으려 했던 것 같다는 느낌. 물론 단정은 못 해. 근데 그날 배달기사님이 “여기 주민등록증 보여주세요”라고 했던 목소리, 그리고 그 말 끝나자마자 앱에 뜬 ‘수령 확인 필요’ 문구… 그 조합이 지금도 가끔 등골이 서늘해. 가끔은 평범한 배달이, 문 앞에서부터 사람을 설득하는 방식으로 시작되는 것 같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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