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주차장에 비친 내 그림자가 뒤따라 오지 않았다
지하주차장에 내려가자마자, 제일 먼저 들린 건 기계음도 엘리베이터 소리도 아니고 ‘찍’ 하고 튀어나오는 내 신발 소리였어요. 그날은 비가 오다 그친 직후라 바닥이 유난히 반질거렸고, 등 뒤로는 형광등이 일렬로 길게 이어져서 그림자가 쭉 늘어졌죠.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그림자 끝이, 제 걸음보다 한 박자 늦게 따라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처음엔 조명 반사나 각도 문제겠거니 했는데… 그게 시작이었어요.
아파트 지하 2층 출입문을 열고 들어서자 공기가 차갑게 내려앉았고, 제 차는 B라인 끝쪽이었습니다. 저는 휴대폰 화면을 켠 채로 걸었는데, 화면을 볼 때마다 바닥에 비친 제 모습이 잠깐씩 어긋나는 것 같았어요. 고개를 들면 정상이고, 다시 휴대폰을 보면 그림자가 먼저 고개를 드는 것처럼 보였거든요. 물론 기분 탓일 수도 있지만, 그때부터 머릿속이 이상하게 단단해지면서 “이상하다”라는 생각만 계속 반복됐습니다.
차에 다가가서 키를 찾으려 주머니를 뒤적였는데, 그 순간 뒤쪽에서 아주 미세한 끌림 소리가 들렸어요. 누가 따라오는 소리라기보단, 바닥이 젖어서 신발 밑창이 당겨지는 소리 같은 느낌이었죠. 돌아보면 아무도 없는데, 반대로 돌아보지 않으면 ‘누가 있는 쪽’의 감각이 더 선명해졌습니다. 저는 괜히 겁먹기 싫어서 일부러 빨리 움직였고, 차 문 손잡이를 잡는 순간에도 바닥의 그림자는 여전히 제 손과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았어요.
그림자는 제 발보다 조금 더 길게 늘어져 있었고, 발을 디딜 때마다 따라오긴 하는데 끝부분이 계속 미끄러지듯 끊어졌다 이어졌습니다. 마치 영상이 프레임 사이에서 멈칫하다가 다시 재생되는 느낌. 저는 무의식적으로 “설마… 조명?”이라고 중얼거렸고, 그 말을 하자마자 제 입김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공기가 더 두꺼워진 것 같았어요. 그때 바닥에 비친 제 그림자가, 제가 입을 다물었는데도 한 번 더 입을 벌리는 것처럼 보였거든요.
저는 문득 예전에 들은 얘기가 떠올랐어요. 지하주차장처럼 조명이 연속된 곳에서는, 어떤 각도에서든 그림자가 “늦게 붙는” 현상이 가끔 생긴다는 이야기요. 하지만 그날의 건 너무 규칙적이었어요. 지하주차장의 램프들이 천장에 일정 간격으로 달려 있는데, 그 간격을 지나갈 때마다 제 그림자도 같은 위치에서 멈칫했고, 그 멈칫하는 타이밍이 제 생각보다 정확했어요. 그래서 저는 일부러 천천히 걸어보기로 했습니다.
차 옆에서 한 발, 두 발 아주 느리게 옮기는데도 그림자는 여전히 따라오다가, 제 앞쪽으로 살짝 “미리” 나가 있는 것처럼 보였어요. 화면 속에서 캐릭터가 지나가는 것처럼요. 저는 그때 처음으로 반사면을 의심했지만, 바닥이 아니라 바닥에 비친 제 ‘모양’ 자체가 문제인 것 같았습니다. 특히 제 팔 길이가 평소보다 길게 늘어지는 구간이 있었는데, 실제로는 팔을 뻗지 않았거든요.
“뒤에 사람이 있어요?”라는 문자를 누군가에게 보낼까 하다가, 방금까지도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한 기억 때문에 손가락이 멈췄습니다. 대신 저는 차 문을 열고 시동을 걸었어요. 그런데 계기판 불빛이 켜지는 순간, 바닥에 찍힌 제 그림자는 차 문 쪽으로 넘어가야 정상인데, 이상하게도 제 옆에서 한 걸음 더 서 있었습니다. 차를 타지도 않았는데요. 마치 제가 차에 타는 것을 끝까지 기다렸다가, 그다음에 따라올 것처럼요.
시동이 걸리고 열쇠를 돌린 손가락이 덜덜 떨렸습니다. 저는 후진을 해서 나가야 했는데, 이상하게도 차 안에서 보이는 유리창 반사로는 그림자가 잘 안 잡혔어요. 밖의 형광등은 켜져 있는데, 제 눈에는 방금 전까지 보이던 바닥의 “그림자”가 사라진 것처럼 보였죠. 그래서 더 무서웠어요. 보이지 않는다는 건, 따라오지 않는다는 뜻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어디에 붙어 있는지’ 알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차를 빼려고 뒤를 확인하는 순간, 유난히 길게 늘어난 그림자가 다시 바닥에 나타났습니다. 이번엔 제 뒤가 아니라, 제 옆에서 생긴 것 같았어요. 제가 고개를 돌리는 만큼 그림자도 고개를 돌리는데, 방향이 딱 맞지 않았습니다. 저는 급하게 기어를 넣으며 바닥을 보지 않으려고 했고, 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그제야 바닥이 흔들리며 그림자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저는 안심해버렸죠.
하지만 차를 빼서 지하 출구 쪽으로 향하는 동안,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이 자꾸만 조금씩 어긋났습니다. 거울 속 저는 분명 운전석에 있는데, 그 옆의 바닥 반사가 이상하게도 ‘어제 같은 각도’로 보였거든요. 출구 계단이 가까워질수록 마음이 놓이려는 찰나, 지하주차장 천장 쪽에서 조명이 한 번 깜빡했습니다. 그 깜빡임에 맞춰, 제 차의 바닥에 비친 그림자가 “한 박자 늦게” 움직였어요. 그게 제가 본 마지막 장면이었습니다. 아직도 생각하면, 그때 제 그림자는 뒤따라 오지 않았다기보다… 제보다 먼저 다른 곳에 붙어 있었던 건 아닐까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