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집 우물가에 놓인 젓가락이 매일 같은 각도였다
시골집 우물가에 놓인 젓가락이 매일 같은 각도였다. 처음엔 그냥 내가 예민해서 그랬나 싶었는데, 그날 밤도, 그다음 날 아침도, 심지어 비가 와서 마당이 진창이 된 날에도 우물 옆 낡은 받침대 위에 얹혀 있는 젓가락은 똑같은 모양으로 나를 맞이했다.
나는 방학마다 외갓집에 내려가서 며칠씩 묵곤 했는데, 그 우물은 손잡이도 녹슬고 이끼가 낀 채로 오래되어 보였다. 그래도 집에선 우물을 “옛날 물”이라며 농담처럼 말하곤 했고, 실제로 물은 거의 쓰지 않았다. 대신 우물가에는 가끔 장독대에서 떨어진 물건들이나 쓸모없는 것들이 얹혀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젓가락 하나가 유독 눈에 띄었다.
문제는 각도였다. 젓가락이 놓인 방향이 매번 똑같았다. 우물가 받침대는 평평해 보이는데도, 젓가락 끝이 늘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바람이 불면 종종 다른 잡동사니는 흔들리거나 뒤로 밀리는데, 그 젓가락만은 마치 고정해 둔 것처럼 우물 쪽을 향한 채였다.
처음엔 내가 놓아둔 걸 깜빡했겠지 싶었다. 그래서 다음 날 아침에 일부러 젓가락을 살짝 움직여봤다. 한 10분 정도는 마당을 정리하느라 바빴고, 다시 우물가를 보러 갔을 때 젓가락은 그대로였다. 내가 움직인 흔적이 사라진 것도 아니고, 젓가락이 그대로 그 자리로 돌아온 느낌이었다. 각도만, 딱 그 각도만.
그날은 괜히 웃음이 나왔다. “장난치나” 하고 소리를 내어 부르기도 했는데, 할머니는 부엌에서 대답만 했다. “그거 누가 만질 일 있냐. 너나 손이나 잘 씻고 와.” 말투는 무덤덤했지만, 묘하게 웃음이 섞이지 않았다. 나는 우물가에 다시 시선을 두었고, 젓가락 옆에 희미한 물기 같은 게 맺혀 있는 것도 봤다. 젖어 있다는 것 자체보다, 젖어 있는 모양이 너무 규칙적이라서 더 이상했다.
며칠 뒤부터는 젓가락 옆에 뭔가가 더 붙어 있었다. 실은 아니고, 얇은 섬유 조각 같은 것. 처음엔 먼지겠지 했지만, 조각의 방향도 늘 비슷했다. 바람에 날려 와서 붙었다기엔 위치가 지나치게 정확했다. 나는 그걸 손끝으로 떼려다 말았다. 만지면 뭔가가 “더 정해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한 내가 더 이상했지만, 당시엔 진짜로 그랬다.
그러다 어느 날 밤,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우물 뚜껑은 덮여 있지 않았고, 마당의 물길이 우물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그런데도 다음 날 아침, 젓가락은 젖은 진흙 위에서도 그대로였다. 진창이 되지 않은 받침대 위에, 젓가락은 여전히 같은 각도였다. 나는 물기 묻은 손으로 받침대를 훑어봤다. 마른 자국이 젓가락이 있었던 자리에서만 깔끔하게 이어져 있었고, 그 경계가 마치 누군가가 줄자를 대고 그어놓은 것 같았다.
그 이후로 나는 일부러 우물가를 피했다. 밥 먹고 나서도, 잠깐 마당에 나가야 할 일이 있어도 우물 쪽은 눈길을 주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할머니는 그 젓가락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어느 날 저녁, 내가 설거지를 하다 우물 쪽을 힐끗 보려는 순간, 할머니가 “젓가락 그거 건드리지 마” 하고 말한 것이다. 나는 놀라서 물었다. “왜요? 그냥 젓가락인데요.” 그러자 할머니는 잠깐 멈칫하더니, 아주 낮은 목소리로 “그거 놓는 게 아니야. 가져오려고 두는 거지”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끝까지 이해하지 못했다. 가져오려고 둔다니, 누가 뭘 가져오려는 건지. 하지만 그날 밤부터는 젓가락이 놓여 있는 각도뿐 아니라, 우물 쪽에서 들리는 소리도 비슷한 타이밍에 반복되는 것 같았다.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아니라, 뭔가 가볍게 닿았다가 떨어지는 소리. 시간은 매번 비슷했고, 그 소리가 날 때마다 젓가락의 위치가 “조금씩” 더 정확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마당 문틈으로 비춰진 달빛 아래를 봤는데, 젓가락 끝이 마치 누군가의 손이 닿은 자리처럼 미세하게 정렬되어 있었다.
마지막으로 그 젓가락을 직접 확인한 날은, 내가 외갓집을 떠나기 전날이었다. 짐을 싸느라 바빴지만, 이상하게도 그 받침대는 계속 눈에 들어왔다. 나는 결심하고 젓가락을 들어보려 했고, 손가락이 닿기 직전에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만약 가져오려고 두는 거라면, 내가 들면 가져가게 되는 건가?” 그 생각을 끝내기도 전에 젓가락이 내 손끝에서 아주 살짝 비켜갔다. 바람도 아니고, 누가 발로 밀지도 않았는데 각도가 다시 그 각도로 돌아간 거다. 그리고 나는 그때서야 확신 같은 걸 느꼈다. 우물이 비워 있어도, 누군가는 매일 같은 방향으로 “한 번 더” 확인하러 온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