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주차장 방범등이 켜질 때마다 내 차 번호가 바뀌어 보였다
지하주차장 방범등이 켜질 때마다 내 차 번호가 바뀌어 보였다. 정확히는, 주차장 천장에 달린 형광등들이 연달아 점등될 때마다 유리창에 비친 내 번호판이 순간적으로 다른 숫자처럼 보이는 거였다. 처음엔 눈이 피곤해서 그런 줄 알았는데, 그게 하루 이틀이 아니라 매일 반복되니까 어느 순간부터는 엘리베이터 버튼 누르기도 무서워지더라.
사건은 입주한 지 한 달쯤 됐을 때 시작됐다. 퇴근하고 지하로 내려오면 주차장 입구 쪽 방범등이 켜지고, 그 불빛이 바닥을 훑는 동안 공기가 뭔가 달라지는 느낌이 있었다. 나는 201동 지하 2층에 주차했고, 보통 차에 타기 전에 번호판을 한 번 확인하는 버릇이 있다. 보험이나 렌트 관련해서 종종 필요하거든. 근데 그날은 손잡이를 잡기 직전에, 번호판의 마지막 두 자리가 딱 바뀐 것처럼 보였다. 32가 아니라 38처럼.
처음엔 그냥 착시라고 넘겼다. 방범등이 켜지는 타이밍에 맞춰 빛이 반사되면 숫자가 뭉개져 보일 수 있잖아. 그래서 다음날도 똑같이 확인했는데, 이번엔 앞의 두 자리가 다른 것처럼 보였다. 분명 차에 달린 번호를 휴대폰 메모로 저장해뒀는데, 눈앞에서는 그 메모랑 맞지 않는 숫자가 보였다. 메모를 확인하고 다시 번호판을 보면, 이상하게도 내 눈은 매번 같은 방향으로 “다른 번호”를 읽어냈다.
“뭔가 조명이 이상한가?” 싶어서 관리사무소에 말해보려다 말았다. 괜히 민망할까 봐서. 그런데 방범등이 켜질 때마다 같은 현상이 반복되니까, 그때부터는 그냥 내 차만 이상한 게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주차장에서 다른 차들도 잠깐 보이는데, 불이 번쩍 일 때마다 번호판 표면이 아주 짧게 울렁이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다른 차들은 내가 자세히 볼 틈이 없었고, 내 차만 유난히 확실하게 “다르게” 보였다.
가끔은 멀리서 봐도 그랬다. 나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통로 끝 쪽으로 걷는데, 통로가 꺾이는 지점에서 방범등이 자동으로 켜질 때마다 번호판이 ‘한 번’ 바뀐 것처럼 보였다. 한 번이라고 표현해도, 눈 깜박 사이에 바뀌는 게 아니라 빛의 파도가 한 칸씩 지나가는 느낌이었다. 그 찰나에 번호가 달라지고, 바로 다음 프레임에서는 또 원래대로 돌아오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그걸 “바뀐 게 맞는지”보다 “내가 보는 방식이 조정되는지”를 먼저 의심하게 됐다.
어느 날은 정말 확실한 순간이 왔다. 나는 차에 탑승하기 전에 블랙박스 확인 차 잠깐 열어두고, 번호판을 정면으로 바라본 채로 방범등이 켜지는 타이밍을 기다렸다. 딱 조명이 들어오는 순간, 번호판의 마지막 숫자 하나가 완전히 다른 모양으로 찍혀 보였다. 그 숫자를 머릿속에서 따라 읽는 데 성공했는데, 내가 그 숫자를 생각해내는 방식 자체가 이상했다. 마치 내가 “그 숫자를 알고 있는 것처럼” 떠올라서, 순간적으로 확신이 더 커졌다. 그런데 조명이 안정되자마자 그 확신이 끊기며, 원래 숫자가 다시 눈에 들어오더라.
그러고 나서부터는 내 행동이 바뀌었다. 주차장에서 불이 켜지는 구간을 지나갈 때, 일부러 고개를 돌리거나 차를 바로 보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회피할수록 더 선명해졌다. 멀쩡히 보려 하면 흐릿해지고, 피하려고 하면 오히려 숫자가 또렷해졌다. 그리고 어느 날은 내가 차 문을 열려고 손잡이를 당기는 순간, 손바닥에 닿는 차가운 금속 감각이 아니라 등 뒤의 공기가 먼저 차갑게 식었다. 돌아보면 방범등은 정상이고, 주차장은 아무 일도 없었다.
그때부터는 “누가 나를 확인하는 건가?” 같은 생각도 들었다. 방범등이 켜질 때마다 내 번호가 바뀐 것처럼 보인다는 건, 누군가 시스템을 건드리는 게 아니라면 “내가 보는 화면”이 조작된다는 뜻이잖아. 관리사무소에선 “센서가 시간표대로 켜지는 거”라고만 하더라. 혹시 내 번호판이 다른 각도에서 보이도록 붙어있나 했는데, 나는 분명히 주차장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같은 번호판을 봤다. 그런데도 불빛이 들어올 때마다 눈이 잡아채는 숫자는 자꾸 달랐다.
며칠 전엔 마지막으로 확인해보고 싶어서, 차 키를 들고 차 앞으로 섰다가 일부러 가장 어두운 타이밍을 기다렸다. 방범등이 꺼져 있는 순간에는 아무 문제 없어 보였다. 그런데 조명이 다시 켜지자마자, 이번엔 내가 메모해둔 번호가 아니라 전혀 다른 번호가 떠올라서 입으로도 따라 나올 뻔했다. 그래서 나는 급하게 입을 다물었고, 바로 그 찰나에 번호판 숫자가 바뀌는 걸 끝까지 “읽어버린”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조명이 안정되자, 내 머릿속에는 예전 번호가 아니라 방금 떠올랐던 그 다른 숫자가 먼저 남아 있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지하주차장 방범등이 켜지는 시간을 피하려고 엘리베이터를 타이밍 맞춰 내렸다. 하지만 몇 초만 어긋나도, 빛이 켜지는 순간 내 눈은 또다시 ‘다른 번호’를 먼저 찾는다. 그래서 지금도 차에 타기 전엔 한 번 더 확인하는데, 이상하게도 확인할 때마다 마음속에서는 이미 바뀐 숫자를 받아들이고 있는 나 자신이 있다. 불이 켜지면 번호가 바뀌는 게 아니라, 어느 쪽이든 내가 따라가고 있다는 느낌이 남아서… 가끔은 그 번호가 내 것이 맞는지조차 헷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