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서 철수하는데 내 텐트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군대에서 철수하는데 내 텐트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훈련 끝나고 철수한다는 방송이 나오던 날, 나는 짐 정리하면서도 이상하게 마음이 편치 않았다. 대원들끼리 “이번엔 빨리 끝나겠다” “안 보이는 데만 잘 빼자” 이런 말이 오갔는데, 막상 내 쪽 텐트만큼은 끝까지 눈에 밟혔다. 소지품을 다 싸는데 텐트가 유난히 가볍게 느껴졌거든. 그날은 그냥 피곤해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그게 시작이었음.
철수는 늘 그렇듯 순서가 정해져 있다. 텐트는 먼저 걷고, 바닥 매트는 말고 접고, 못 박은 데는 확인하고, 마지막에 주변 정리까지. 나는 내 텐트 앞에서 로프랑 지지대부터 챙겼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미 누군가가 한 번 손댄 것처럼 텐트 끈 매듭이 깔끔하게 풀려 있었다. 내가 어제까지 단단히 묶어둔 방식이랑 똑같았어. 내 손으로 다시 묶어야 하는데, 그걸 굳이 안 해도 되는 상태처럼 딱 되어 있더라.
“야, 너 어제 텐트 정리하고 갔냐?” 옆에 있던 후임한테 물었더니, 후임은 “전 그냥 자고 일어났는데요” 같은 말만 했다. 그 후임은 겉으로는 멀쩡했는데, 목소리가 조금 들뜬 것 같았다. 철수하는 날이면 다들 바쁘니까 이유야 여러 가지겠지 싶었는데, 내가 보던 텐트 상태는 너무 ‘정리 완료’ 느낌이 강했다. 막 걷어서 치우기 직전, 딱 그 타이밍의 모습. 근데 그 타이밍이 내 눈앞에서 계속 유지되는 것처럼 느껴져서, 손끝이 멈칫했다.
나는 괜히 기분 나빠져서 상급자 라인에 “내 텐트는 어제 상태 그대로인데, 혹시 누가 건드렸습니까?”라고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군대에서 그런 말은 결국 “확인 안 하고 싸다니는 사람”으로 남는다. 그래서 그냥 내가 정상대로 다시 확인하기로 했다. 지지대 고정은 다 되어 있었고, 천도 찢어진 데 없이 팽팽했다. 텐트 고리를 쥐었는데 손바닥이 차갑게 식었다. 비닐처럼 차가운 건 아닌데, 땀에 젖었던 피부만 딱 식는 그런 느낌.
철수 시간은 계속 돌아갔다. 누군가 확성기로 “구역 정리 끝났으면 집합!” 하고 외쳤고, 나는 텐트를 완전히 걷어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아서 바닥 쪽부터 들어 올렸다. 그런데, 텐트를 한쪽만 들어 올리자 바닥 매트가 이미 말려 있었다. 내가 어제 밤에 깔아둔 방향과 반대로. 더 웃긴 건, 그 말려 있는 방향이 “접어서 넣는 방향”이 아니라 “빼놓고 그냥 세워두는 방향”이었단 거다. 누가 치우다 만 것처럼 보였고, 그 사이에 누가 다녀간 흔적이 있어야 하는데 주변엔 발자국이 거의 없었다.
대원들 텐트는 하나둘 사라지는데, 내 텐트만 남아 있는 게 눈에 계속 들어왔다. 처음엔 그냥 내 일이 늦어서 그런 줄 알았는데, 집합하라는 구령이 두 번, 세 번 올 때까지도 내 텐트는 그대로였다. 나는 텐트를 걷으려다 말고, 텐트 안쪽을 봤다.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근데 텐트 천이 안쪽으로 살짝 당겨져 있었고, 바닥에 먼지가 얇게 쓸린 라인이 생겨 있었다. 발자국은 아닌데, 누가 앉아 있거나 몸을 기대고 나온 모양새. 그 라인이 생각보다 선명해서, 눈을 깜빡이는 사이에도 계속 또렷했다.
그때 갑자기 누가 뒤에서 “빼라” 하고 말하는데, 소리 방향이 이상했어. 확실히 내 뒤가 아니라, 텐트 옆면에서 들리는 느낌이었다. 나는 돌아봤지만 아무도 없었다. 대신 멀리서 누가 걸을 때 나는 군화 소리가 들렸고, 그 소리는 텐트 주변을 지나가다가 멈췄다. 그리고 바로 다음 순간, 내 텐트 로프가 한 번에 ‘툭’ 하고 풀린 것처럼 느껴졌다. 실제로 풀렸는지 모르겠는데, 손에 쥐고 있던 감각이 갑자기 가벼워졌고, 마음이 확 식었다. 그날 바람도 없었는데 텐트 천이 아주 미세하게 떨렸다.
나는 결국 텐트를 그대로 접어 넣었다. 그런데 집합 장소로 가서 짐을 확인해보니, 어제 챙겨둔 물건 중 몇 개가 그대로 있었다. 분명히 텐트 정리하면서 넣어야 했던 것들인데, 그게 안 들어가 있었어. 즉, 텐트가 남아 있었던 게 아니라, 내 손이 가는 방향을 누군가가 반대로 맞춰 둔 것 같은 느낌. 누가 장난을 친 게 아니라면 설명이 안 되는 상황이었고, 그렇다고 내가 기억을 잃었다고 하기엔 너무 구체적이었다. 내가 만진 로프의 매듭, 바닥 매트가 말려 있던 방향, 텐트 천의 당김. 다 “정리된 흔적”이었거든.
철수 당일 밤, 나는 잠을 설쳤다. 동기들이랑 “그냥 늦게 걷었나 보다” “기억이 헷갈린 거지” 하고 넘기려고 했는데, 나는 자꾸 텐트가 남아 있던 장면을 떠올리게 됐다. 특히 그 텐트를 봤을 때의 공기. 차갑고, 뭔가 말이 안 통하는 공기 같은 게 있었어. 그리고 새벽에 화장실 다녀오려고 밖으로 나왔는데, 아직도 구역 어딘가에서 툭툭 천이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멀리서였지만, 내 귀에는 이상하게 가까웠다. “누가 아직 정리 안 했나?”라고 생각하는 순간, 내 머릿속에서 이미 답이 떠올랐어. 정리 안 한 게 아니라, 정리되는 걸 “막고” 있는 느낌.
다음 날 아침, 나는 폐쇄된 구역을 담당하던 병장한테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제 철수할 때 제 텐트 말입니까… 누가 먼저 확인했습니까?” 병장은 한참 웃지도 않고 보더니, 그냥 “그런 거 기억 안 나는데?” 하고 넘겼다. 근데 표정이 이상했다. ‘기억이 없는 사람’의 표정이 아니라, ‘말하면 안 되는 걸 알고 있는 사람’ 같았어. 나는 더 캐묻지 못했고, 그 텐트는 결국 완전히 치워졌지만, 내 마음속엔 이상하게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 군대에서 철수는 늘 끝을 뜻하는데, 그날은 끝이 아니라 “다음 차례”가 시작되는 것처럼 느껴져서 아직도 가끔 꿈에서 텐트 끈을 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