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거래로 산 전기포트에서 누가 끓인 물때 냄새가 났다
중고거래로 산 전기포트에서 누가 끓인 물때 냄새가 났다. 처음엔 그냥 “관리 안 된 물때 냄새겠지” 싶었는데, 이상하게도 세척을 해도 완전히 안 지워지고,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산 적 없는 것 같은 익숙함이 섞여서 소름이 올라왔다.
일단 상황은 평범했어. 중고로 전기포트 올라온 걸 보고 급하게 샀거든. 상태 좋다고 했고, 사진도 깔끔했는데 막상 받아보니 손잡이 주변에 미세한 스크래치가 있고, 바닥 쪽에 물자국이 아주 얇게 남아있더라. 그래도 전기제품은 원래 그런 경우가 많으니까, 구매 후 바로 베이킹소다+식초로 한 번 돌렸어.
그런데 첫 시도부터 냄새가 이상했어. 식초 끓일 때 나는 신 냄새가 아니라, 마치 오래 끓인 물이 배어든 듯한 비릿하고 텁텁한 “물때가 눌어붙은” 느낌이 먼저 올라왔거든. 게다가 그 냄새가 단순히 오래된 각질 냄새가 아니라, 누군가가 자주 사용하면서도 제대로 닦지 않은 습관 냄새 같았어. 맡으면 괜히 손이 먼저 씻겨야 할 것 같은 그런 타입.
나는 그래서 필터도 확인했어. 전기포트에는 보통 거름망이 있잖아. 분해해서 봤는데, 물때가 끈적하게 남아있는 게 아니라, 희미하게 갈색 기름막 같은 게 살짝 번져 있더라. “이게 뭐지?” 싶어서 거름망을 칫솔로 문질렀는데, 문지르는 순간엔 물때 냄새가 확 올라오다가 바로 다른 냄새로 바뀌었어. 그게 문제였지. 물때 냄새 뒤에 따라오는 어떤 향이, 어딘가에서 맡아본 듯한 느낌이라 계속 신경 쓰였거든.
그래서 이번엔 아예 “센 세척”으로 갔어. 시중에 파는 전기포트 세척제를 사서 설명서대로 2회 돌리고, 끓인 물을 버리는 과정을 몇 번 반복했어. 수증기 올라올 때는 괜찮아지는 듯했는데, 컵에 따르려고 잠깐 멈추는 순간 다시 올라오더라. 신냄새도 아니고, 화학세제 잔여물 같지도 않았어. 그냥… 누가 이미 끓여서 사용하고 있던 상태로, 그대로 내 손에 넘어온 느낌이 남아있다고 해야 하나.
그 다음부터는 실사용이 더 찜찜해졌어. 물 끓여서 컵에 부으면, 첫 한 모금은 괜찮다가 두세 모금째부터 텁텁한 뒷맛이 미세하게 올라왔거든. 맛이라기보다 코로 느껴지는 잔향 같은 거. 나는 무조건 물만 끓였는데도 그랬어. 그래서 혹시 이전 사용자가 물 말고 다른 걸 끓인 건가 싶어졌지. 예를 들면 라면 스프, 국물 같은 걸 조금 데워놓고 바로 버린다든지, 아니면… 너무 상상하기 싫은 방향으로.
그래도 중고니까 그럴 수는 있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판매자에게 메시지를 보냈지. “세척해도 물때 냄새가 남아서 교환 가능할까요?”라고. 답은 의외로 빨랐는데, “정상 제품이고 보통은 깨끗하게 나요. 세척을 잘못하신 것 같아요”라는 식이었어. 약간 퉁명스럽고, 사진 보내라고 하길래 나는 세척 전/후 거름망 사진이랑 냄새 느낌을 최대한 설명했어. 그런데 판매자는 “환불/교환은 어렵다”로 끝냈고, 대화가 더 이어지지 않았어.
그때부터 나는 포트를 더 뜯어보기 시작했어. 전기포트는 내부가 보이지 않으니까 더 불안했거든. 분리 가능한 부품이 있는지 찾아서, 바닥 열판 주변도 최대한 닦아봤는데, 물때가 아니라 얇은 막처럼 눌어있는 게 남아있었어. 휴지로 문지르면 휴지에 갈색이 아주 조금 묻어나는데, 그게 물때치고는 질감이 달랐어.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냄새가 “끓일 때” 더 강하게 올라왔지, 그냥 차가운 상태에서는 거의 없었어. 그러니까 누군가가 그 포트를 사용하던 방식이 있었고, 열이 가해질 때만 특정한 잔향이 살아나는 구조 같았어.
요즘은 다들 정수기 물 쓰고, 물때 관리도 하니까 그 정도까지 가정해버리긴 어렵잖아. 그래서 결국 나는 결론을 하나 못 내리겠더라. 단순히 관리가 덜 됐던 포트였을 수도 있고, 어딘가에서 잠깐 데워진 다른 액체가 미세하게 남아 다시 끓여질 때 냄새가 재현되는 걸 수도 있고. 다만 내가 계속 찝찝했던 건, 냄새의 질감이 “오래된 물때”보다는 “누군가가 꾸준히 사용하다가 대충 넘긴 흔적”에 가까웠다는 점이야.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끓여서 버리기까지 하고 나서, 그날 밤 이상하게도 꿈을 꿨어. 포트 안쪽이 투명하게 보이는 장면이었는데, 물이 아니라 다른 게 반쯤 굳어 있는 것처럼 층이 지더라. 현실에서는 분명히 물만 넣었는데, 다음 날 아침에 보니까 포트 손잡이 쪽에 손자국이 또렷하게 남아있었어. 새 제품처럼 선명한 게 아니라, 내가 사용한 흔적이 아닌 것처럼… 그래서 지금도 가끔 전기포트만 보면, 그날 냄새가 다시 올라오는 것 같아. 중고는 물건만 사는 게 아니라, 남겨진 사용 흔적까지 함께 사는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 뒤로는 어떤 중고든 냄새부터 확인하게 됐어.